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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 하는 묵상_Visio Divina

오늘의 묵상_빌1:5_첫날부터 이제까지

by 적아소심 2024. 3. 4.

빌립보서1:4-5

  •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개역개정)
  •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항상 여러분 모두를 마음에 두고 기쁨으로 간구합니다.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준새번역)
  • 항상 나의 모든 간구(asking)에서 너희 모두를 위하여(in behalf of, for the sake of), 기쁨으로 간구(entreaty, supplication)를 하고 있으며,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위하여 너희(가) 교제(fellowship)하였음이라. (맛싸 성경)
  • 4 always in every prayer of mine for you all making my prayer with joy, 5 thankful for your partnership in the gospel from the first day until now. (RSV)
  • 4 Always in every prayer of mine for you all making request with joy, 5 For your fellowship in the gospel from the first day until now; (KJV)
  • 4 πάντοτε ἐν πάσῃ δεήσει μου ὑπὲρ πάντων ὑμῶν μετὰ χαρᾶς τὴν δέησιν ποιούμενος 5 ἐπὶ τῇ κοινωνίᾳ ὑμῶν εἰς τὸ εὐαγγέλιον ἀπὸ τῆς πρώτης ἡμέρας ἄχρι τοῦ νῦν (항상 나의 모든 간구 안에서 당신들 모든 이들을 위하여, 기쁨과 함께 간구를 행하고 있으면서, 첫째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 안으로(into) 있는 당신들의 교제로 인하여 (직역)

4절에서 '간구'라는 말이 2번이나 반복되었는데, 간구 즉, '데에시스(δέησις)'는 "개인적인 깊은 필요에서 비롯되는 진심 어린 청원" 또는 "부족감에서 오는 요청"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을 여기고 절실하게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의 필요를 자신의 긴급한 필요로 여기고 기도하였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빌립보교회 성도들과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깊은 교제를 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5절에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였다"는 말을 직역하면 "복음 안으로 있는 교제 또는 연합(코이노니아)"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 안으로 들어가 깊은 교제와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멀리 떨어진 빌립보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이후에도 유럽 각지를 돌며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잊지 않고 그를 좇아가며 계속 연락을 취하고 함께 기도하며, 또한 어려운 살림에서 십시일반 헌금을 하여 바울을 도왔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서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중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16:9)라는 환상을 보고 비두니아로 가는 계획을 취소하고 드로아로 가서 바로 배편으로 네압볼리를 지나 빌립보 성에 도착하여,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참조)

 

빌립보 교회는 유럽으로 가는 관문으로 바울이 실라와 함께 개척한 첫 번째 유럽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필두로 이후에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등 그리스 전 지역을 돌며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떠난 이후에도 빌립보 교회의 사랑과 선교지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이 넘게 세월이 흘러 이제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마지막 여정을 마치는 시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그동안 개척한 교회를 생각하면서 서신을 썼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빌립보서입니다. 그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면 늘 마음에는 따스함과 사랑으로 넘쳐났습니다. 바울이 어디를 가든 빌립보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있는 곳을 찾아 선교 지원(연보)을 하였습니다. 빌립보는 작은 도시이고, 또한 성도들의 삶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속적으로 사도 바울을 위해 기도하며 그의 선교를 지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하늘나라로 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내면 그들의 사랑과 섬김에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는 본절에서 "첫날부터 이제까지" 변함없이 사랑의 교제를 감당해 온 그들의 수고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그들은 삶이 힘겹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에바브로 디도와 같은 대표자를 보내어 선교 헌금을 보내고 적극적으로 바울을 위로하고 힘을 보탰습니다. 그 와중에 에바브로 디도는 병이 나서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이제까지"... 아마 그들에게 이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지가 A.D.51경이니 바울이 감옥에 있는 지금까지 하면 10~12년 이상을 그들은 사랑의 수고를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서문을 보면 바울의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그리움이 남다릅니다. 비록 감옥에 있지만 그들을 생각하고 기도하며 써내려가는 글에 기쁨과 사랑과 그리움이 흠뻑 묻어 있습니다.

 

바울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위험을 수없이 겪으면서 배고프고 힘든 여정 가운데 빌립보교회의 연보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고린도 교회의 지원은 거절하였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빌립보교회는 작고 가난했지만,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십시일반 헌금하여 지원한 것이었고, 고린도 교회는 재력가가 한턱내는 것과 같은 그런 연보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기도와 정성을 담고 뒷말이 없는 빌립보교회의 사랑과 연보는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생을 마감하는 때를 기다리며,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감사함을 표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기초하여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와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따뜻함과 그리움이 매우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니, 지금의 한국 사회에 이런 따뜻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에서조차 이미 임기를 마치고 떠난 사역자나, 또는 동료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의 영성을 보이면 현재의 사역자가 시샘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늘 바쁘고 새로운 사람과 하는 사역에 집중해야 하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우리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떠난 사람에 대한 무관심은 둘째치고 악평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지나간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나에게 주님을 소개하고 가르쳐 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은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요?

 

새로운 사역자는 이전 사역자의 그림자를 지우기에 바쁘지 않은지요?. 아니면 내가 올라간 후에는 사다리를 치워버려 다른 사람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나만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의 많은 리더가 안전망 없이 추락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지요? 이미 가버린 사람에 대한 감사나 추억은 고사하고 이름 지우기 등을 하는 모습은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그리움과 사랑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성품입니다. 우리 주님은 늘 우리를 그리워하시고, 우리가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기를 기다리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의 허랑방탕한 둘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곧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예전 성경 말씀대로 "아직도 상거가 먼데" 까치발을 들고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이 곧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좌정하실 때, 우리의 마음도 아버지의 마음으로 지배를 받습니다. 주님의 자녀에 대한 같은 마음을 품게 되고, 같은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같은 마음으로 돕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 자체로 우리의 마음은 따뜻해지고 중보기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성령님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따뜻함이 없다면 그것은 자기확신이나 자기암시에 불과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내 마음의 성령님을 늘 그리워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하시고, 또한 많은 사람을 품고 기도하고 돕고, 격려할 수 있게 하실 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의리가 있고, 정이 있고,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합니다.

 

그리움의 영성... 사도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이 서로 오랫동안 이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할 때에 주님께서는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태백의 "야사(夜思-깊은 밤의 그리움)"라는 짧은 시를 소개합니다.

 

床前明月光 (송전명월광) 침상 앞의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 (의시지상상) 땅 위에 서리 내린 듯

擧頭望明月 (거두망명월) 고개 들어 밝은 달 보고

低頭思故鄕 (저두사고향) 머리 숙여 고향 그리네

 

(3행과 4행의 첫 두글자 '거두'와 '저두'라는 말로 대비를 절묘하게 대비를 시켜 그리움으로 인한 애끓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본향을 향하여 이런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지요. 어릴 때에는 이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더니 이제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장자(莊子) 5편 제5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 "세상 사람들은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다." (人不忘其所忘 而忘其所不忘 - 인불망기소망, 이망기소불망)

, 잊어버려야 할 외형(外形)에 얽매어 그것을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내면의 덕은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소망(其所忘)은 마땅히 잊어버려야 할 것, 곧 외형(外形)이고, 불기소망(其所不忘)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곧 내면의 덕()을 말합니다.

 

지난 번 묵상에서는 "잊어버림의 축복"에 대해 언급을 하였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제 마음에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 간의 아름다운 교제를 수시로 기억나게 하셔서, 항상 주님의 마음으로 따스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지나간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갖게 하시고, 주님께로 가기 전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함께 누릴 기회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브란트(1606-1669),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

위 그림은 렘브란트가 21세가 되던 해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초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줍니다. 감옥의 가혹한 환경도 자신의 사명을 달성하려는 바울의 믿음과 소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왼손에 있는 펜은 그가 많은 편지 중 하나를 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전승에 따라 묘사됩니다. 긴 수염, 대머리.... 그리고 바울의 속성을 검(劍)으로 표현했는데, 검 즉 칼의 속성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바울의 순교에 대한 언급: 로마인들은 그를 칼로 죽였습니다.

   - 그가 회심하기 전에는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에베소서(6:17)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불렀습니다.

니콜라 드 플라트몽타뉴(프랑스, 1631-1706) 빌립보 감옥을 떠나는 바울과 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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