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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 하는 묵상_Visio Divina

오늘의 묵상_벧전2:9a_왕 같은 제사장

by 적아소심 2024. 2. 28.

베드로전서 2:9a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개역개정)
  • 그러나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표준새번역)
  • But you are a chosen race, a royal priesthood, a holy nation, God’s own people, (RSV)
  • But ye are a chosen generation, a royal priesthood, an holy nation, a peculiar people; (KJV)
  • Ὑμεῖς δὲ γένος ἐκλεκτόν βασίλειον ἱεράτευμα ἔθνος ἅγιον λαὸς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 그러나 너희는 선택된(ἐκλεκτόν) 종족(γένος/race, generation, kind), 왕적인(βασίλειον/royal) 성직자(ἱεράτευμα/priest; 제사장), 거룩한(ἅγιον) 나라(ἔθνος/nation, people), 소유된(περιποίησιν/ possession) 백성(λαὸς/people)이니, (맛싸 성경)
  • 그러나 당신들은 선택받은 종족으로, 왕적인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으로, 소유됨 안으로 있는 백성입니다. (직역)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고, 남을 평가합니다. 의상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옷부터 봅니다. 성형외과 의사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볼 때 견적(?)부터 생각합니다. 율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남의 부족한 점을 금방 발견하고 마음으로 지적합니다(물론 대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자는 남의 단점도 담담하고 쉽게 포용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가로 남을 헤아립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내 안의 말씀들이 생동감있게 살아 나를 지배하고 나의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늘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여도 안 될 것으로 생각하고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생각하고 그것을 준비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최악의 상황이 되면 잘 헤쳐가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무엇을 해도 부정적입니다. 실패하면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며 무기력하게 말합니다. 이것을 "사후 예견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합니다. 편견이라는 말이지요! 부정적인 사고에 한번 빠지면 쉽게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우리는 왜 해변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많은 생각들 중에서 하필이면 가장 악질 중의 악질인 생각을 고르는 것일까요? 이것은 내 생각이라기보다는 마귀(사탄, 어둠)의 속임수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분명 불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불신앙의 마음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는데 성령님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나 자신을 선택받은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민족, 하나님의 소유 안으로 소속되어 있는 백성으로 믿고 있다면 나는 엄청난 존재가 됩니다. 이 말씀은 나의 외적 내적 상황과는 전혀 관계 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런 존재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처지나 상황을 보고(의상 디자이너로서, 성형외과 의사로서, 율법주의자로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걷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고전 5:7).

 

나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믿는다면 현실에서의 나의 삶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이러한 정체성은 나의 삶에 명령할 수 있는 놀라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왕의 아들이다! (I’m a child of the King!)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에 얼마나 자주 왕같이, 제사장처럼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는지요?

 

이율곡 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 보면, “書自書 我自我 何益之有(서자서 아자아 하익지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책은 책, 나는 나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책을 읽지만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 생각하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책을 통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고 나의 삶으로 적용시켜야 그것이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이지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서 그 말씀이 나의 삶에 명령하고, 그 말씀대로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기도)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 그 말씀은 살아있게 됩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히 정보나 지식으로만 알고, 나의 현재 상태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비전과 소망을 보지 못할 때 말씀은 살아있지 못하고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또는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데, 있는 하고 실제 내면엔 기쁨이 전혀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말씀이 내 마음에서 살아 있으면 세상이 나를 부러워하지 않을지라도 나도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가짜 금은 도금하여 순금인 체 쓰고 있지만, 순금은 이처럼 도금할 필요가 없습니다. (假金方用眞金鍍, 若是眞金不鍍金 가금방용진금도, 약시진금부도금 이신(李紳)의 답장효표(答章孝標) 중에서)

 

허리 한 번 펴는 것으로 세상에서 일만 명을 제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허리나 어깨를 펴는 것만으로 우리는 세상 사람 일만 명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토대로 자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어떠한 조건 없이 자신에게 명령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민족처럼 미간과 소매와 문지방에 말씀을 써서 붙여놓지는 않을지라도 말씀이 나의 무의식까지 지배하도록 깊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어려울 때마다 말씀으로 자신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계속 언급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설득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설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그러한 설득은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은 자기 암시나 신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진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이성과 지성으로 충분히 설득되면, 마음 깊이 그리고 영으로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의 결단과 더불어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말씀에 대해서 기도가 필요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나 자신에게 선포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유대인, 벨라루스 태생 - 노년에 미국과 프랑스에서 활동), "아론(대제사장)과 일곱 촛대"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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