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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 하는 묵상_Visio Divina

오늘의 묵상_전도서5:20_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by 적아소심 2024. 3. 4.

전도서 5:20

  •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개역개정)
  •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니, 덧없는 인생살이에 크게 마음 쓸 일이 없다. (표준새번역)
  • 사람이 그의 날들을 많이 기억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쁨으로 응대하시기 때문이다. (맛사 성경)
  • For he will not much remember the days of his life because God keeps him occupied with joy in his heart. 사람이 그 생명의 날을 별로 기억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시기 때문이다. (RSV)
  • For he shall not much remember the days of his life; because God answereth him in the joy of his heart. 사람이 자기 생애의 날을 많이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이는 하나님이 그 마음의 기쁨으로 그에게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KJV)

히브리어 성경에서 20절의 이즈코르(יִזְכֹּ֖ר)‘로 쓰인 동사가 우리말 성경 개역개정에서는 깊이 생각하다로 번역하였지만, 영어성경에서는 주로 ’remember(기억하다)‘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어느 단어를 쓰든지 최종 결론은 대동소이합니다. , 우리의 과거나 미래의 삶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기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앞의 18, 19절과 연결되어 결론을 맺어줍니다. 앞 절에서 전도자는 헛되고 헛된 인생 가운데 수고하면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18). 그리고 하나님이 일정한 재물과 부()를 주셔서 누리게 하시고 각자의 몫을 받아 수고하고 애쓰는 가운데 즐거워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19). 이처럼 인생이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께서는 때로 즐겁고 웃을 일을 주셔서 그 고통을 잠시나마 잊도록 하십니다. 따라서 전도서 기자는 우리가 허무한 인생일지라도 그것을 극복하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몫(분깃)- 많든지 적든지 - 누리며 인생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또는 인생의 날들을 기억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도록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계속 고통이나 슬픔을 잊지 못하면 제대로 삶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기쁨을 우리 마음에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은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하고, 시기도 하고, 맵기도 하고, 떫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합니다. 우리는 편안하면 인생은 살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는 인생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것들도 세월이 지나면 다 잊혀지고, 세월의 내공에 의해 인생을 담담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인생의 과정을 모두 기억하고 산다면 우리의 가슴과 머리는 터져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적당한 시기에 잊어버리도록 하십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가면 그 슬픔과 허전함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렵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차분하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삶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이미 지옥입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처럼 삶의 날들에 대해 미래 또는 과거 많이 기억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아무리 힘든 시간을 보내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미래에 있을 인생의 불확실함이나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많은 관심을 두지 않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생의 날들 미래 또는 과거 -에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날그날 주신 일과 은혜를 즐겨야 할 것입니다.

 

장자(莊子, 응제왕편(應帝王篇)에 사문부산(使蚊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게 한다는 의미이지요. 이를 사자성어로 만든 것이 문예부산(山蚊蚋負山), 즉 모기와 파리가 산을 짊어진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능력에 맞지 않게 턱없이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을 빗대어 쓰는 말입니다. 이 말을 통해 짧은 인생을 사는 우리 사람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 그리고 오지도 않은 미래까지 더하여 삶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려주는 말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중에 다음과 같은 통찰력 있는 말이 있습니다.

  • "매사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 심각해진다는 것이 진실에 접근하는 길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습니다. 유한한 우리가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 또한 무한한 미래의 세계까지 알 수 없습니다. 히브리적 사고(思考)에 의하면 영원은 거꾸로 과거로 올라갑니다. 계속 가다보면 거기엔 영원하신 하나님의 세계가 있습니다. 서구적 사고로 영원은 미래에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세계가 미래이고 거기에 영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적 사고로 나이를 먹으면 지혜가 있는 것이고, 서구적 사고로는 구닥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 인생은 영원을 알 수 없습니다. 미래도 모르고, 하물며 과거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오늘 하루 있는 일과를 충실하게 살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누리며 사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반걸음, 한걸음을 쌓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일과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지나온 삶에 너무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김칫국 마시며 상상하지 않게 하시고, 대신 오늘 주어진 일에,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절벽의 끝자락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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