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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 하는 묵상_Visio Divina

오늘의 묵상_예레미야 39:15-18_에벳멜렉

by 적아소심 2024. 3. 7.

예레미야 39:15-18

  • 15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6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 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18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개역개정)
  • 15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Jeremiah while he was shut up in the court of the guard: 16 “Go, and say to E′bed-mel′ech the Ethiopian, ‘Thus says the Lord of hosts, the God of Israel: Behold, I will fulfil my words against this city for evil and not for good, and they shall be accomplished before you on that day. 17 But I will deliver you on that day, says the Lord, and you shall not be given into the hand of the men of whom you are afraid. 18 For I will surely save you, and you shall not fall by the sword; but you shall have your life as a prize of war(for a prey unto thee-KJV), because you have put your trust in me, says the Lord.’” (RSV)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에벳멜렉(Ebed Melech)에 주신 말씀입니다.

에벳멜렉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단어인 종과 왕을 결합한 것이지만 학자들은 이 결합이 칭호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개인의 이름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포위 공격(기원전 597) 동안 유다 왕 시드기야의 궁전에서 봉사했습니다. 본문에는 그가 구스 사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Emmanuel Tov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길이가 다른 히브리어 버전과 그리스어 버전으로 존재합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Tov가 원본으로 간주하는 LXX 텍스트는 Ebed-Melech를 내시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벳멜렉의 이야기와 사도행전 8:26-40에 나오는 또 다른 에티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를 유사점으로 봅니다.

에벳멜렉은 에베드(Ebed)’멜레크(Melech)’라는 두 글자로 된 단어로 단순히 문자적으로 왕의 신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고유명사로서 사람 이름을 가리킬 수도 있고, 단순히 왕을 가까이에서 섬기는 시중을 나타내는 직분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에벳멜렉은 유다 사람이 아닌 구스(에디오피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시드기야 왕의 측근까지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유대인들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고관들이 예레미야를 우물에 던져 빠뜨렸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시드기에 왕에게 달려가 예레미야를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38). 시드기야 왕은 고관들의 눈치를 보는 줏대 없고 연약한 왕이었습니다. 에벳 에돔이 왕에게 예레미야를 구해달라고 하는 것이 고관들에게 알려지면 그 자신조차도 위험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신을 돌보지 않고 지체없이 담대하게 왕에게 나아가 예레미야를 위해 탄원하였습니다. 동족인 이스라엘 왕과 고관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지만, 이방인이었던 에벳멜렉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때로 이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의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예루살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군대에 의하여 불타고 많은 고관대작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한지(B.C.722), 136년만에 다시 남유다마저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죽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B.C.586).

 

하나님은 바벨론의 칼을 허용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타락을 심판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지속적으로 바벨론에 의한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회개하고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당시로 보면 매국노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나 심판으로부터 백성들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설교에 빠져 회개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바벨론의 잔혹한 칼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날은 공포와 두려움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한 날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기억하셨습니다. 바로 에벳멜렉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레이야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19b에서 하나님은 에벳멜렉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에벳멜렉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악의 길을 갈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결정적으로 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이나 방법을 뛰어넘어 신묘막측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벳멜렉이라는 히든 카드를 가지고 계실 줄을 예레미야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울지라도 믿음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한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전쟁의 칼날 아래에서도 에벳멜렉의 목숨을 노략물처럼 구해주시는 그 은혜를 지금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어떤 유명한 신학자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돌고 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문제가 해결된 후 한 달만 지나면 힘들었던 바로 얼마 전에 하나님께 부르짖던 일들을 잊기 쉽습니다. 배고픈 광야에서 절박하게 기도하고 얻은 맛나를 한 달간 먹고는 고기 먹고 싶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같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신실하심입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주님은 늘 한결같으신 분이십니다. 날마다 이 주님을 기억하고, 내 안에 있는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오늘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에벳멜렉을 믿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어려운 때에 주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힘들 때마다 주님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 주님과 함께 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과 신약을 포함한 그림 성경 - 많은 삽화가 포함됨(1896) <The art Bible, comprising the Old and new Testaments - with numerous illustrations (1896)>

하나님의 심판의 멧시지를 듣기 싫어하던 고관들은 당시 물이 마르고 진흙덩어리만 남아있던 우물에 예레미야를 던져 넣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죽음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됩니다. 바닥에 사람의 뼈들이 보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레미야는 물론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을 전했지만 막상 죽음을 눈 앞에서 보고 있을 때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요? 요즘 세대에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는 사역자들이 과연 이런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위정자들을 꾸짖고 돌이키도록 선포하고 있을까요? 모두들 하나님의 말씀보다 진영의 논리에 의해 자기편 사람은 무조건 변호하고 상대방은 죽일 듯이 덤벼드는 세상이 아닌가요?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우물에서 나온 예레미야 <동판화-아드리앙 콜라에르(Adriaen Collaert), 원작품-마르텐 드 보스(Maarten de Vos), 출판- Gerard de Jode, 1585년 작품>
우물에서 예레미야를 구해내는 에벳멜렉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의해 불타는 예루살렘, circle of Juan de la Corte, 1630-1660년
제임스 티소,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 1896년

위 그림들과 글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당시 상황을 모두 말해주지 못합니다. 실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가벼울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전쟁의 처참한 실상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날은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런 위기의 날에도 우리 주님을 기억하고, 그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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