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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제20장③_맹인 두 사람을 고치시다

by 적아소심 2023. 8. 17.

마태복음 20:29-34

 

맹인 두 사람을 고치시다 (10:46-52; 18:35-43)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Two Blind Men Receive Sight (Mark 10:46-52; Luke 18:35-43)

29 And as they departed from Jericho, a great multitude followed him. 30 And, behold, two blind men sitting by the way side, when they heard that Jesus passed by, cried out, saying, Have mercy on us, O Lord, thou Son of David. 31 And the multitude rebuked them, because they should hold their peace: but they cried the more, saying, Have mercy on us, O Lord, thou Son of David. 32 And Jesus stood still, and called them, and said, What will ye that I shall do unto you? 33 They say unto him, Lord, that our eyes may be opened. 34 So Jesus had compassion on them, and touched their eyes: and immediately their eyes received sight, and they followed him.

제임스 티소(1836-1902), 여리고에서의 두 맹인, 1886-1896년 (James Tissot (1836–1902), The Two Blind Men at Jericho, between 1886 and 1896)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크냐?” 하며 서로 다투는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하며, 형제 용서하기를 70번을 7번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갈릴리에서의 마지막 마지막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태19:1절에서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셨다가 19장에서 바리새인들과의 이혼과 결혼에 대한 논쟁을 하시고, 이어서 어린 아이들에게 안수하셨습니다. 그 후에 부자 청년 관원과의 대화에 이어 20장에서 포도원 품꾼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세 번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말씀하셧습니다.

이제 마태20:28절에서 예수님 일행은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때였습니다. 이때 맹인 두 사람이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가는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디매오의 아들 맹인 거지인 바디매오라고 하였습니다(10:46).

 

30절에서 그들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Have mercy on us, O Lord, thou Son of David!)”라고 외쳤습니다.

 

두 맹인 거지는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에 일어나서 큰 소리로 주님께 간청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만류를 해도 오히려 더 큰 소리로 같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고 그 고통이 마음에 차서 목까지 올라올 것만 같은 간절함으로 이들처럼 간결하고 큰 소리로 주님을 부르며 그분의 자비를 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오 주님, 다윗의 자손이여!” 이 처절한 외침은 짧지만 그 안에 커다란 삶의 고통이 담겨져 있습니다. 긴 세월 눈멀고 가난하여 길가에서 구걸하는 슬프고 운명적인 삶이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들은 처절하게 주님께 외쳤습니다. 사람들의 시전과 책망은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의 애끓는 외침에 발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시며 물으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32)”

 

간절한 기도는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주님께서 들어주시고 안 들어주시고를 떠나 일단 주님께서 들으십니다. 참으로 우리는 주님께 들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 시간이 길고 짧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간절함의 문제입니다. 또한 그분께서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눈을 뜨게 해 주실 수도 있지만, 그들의 눈을 직접 만져주심으로 그들의 모든 삶과 그들의 아픈 마음과 그들의 눈물을 모두 만져주셨습니다.

 

맹인 거지는 전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겉옷을 내버리고 벌떡 일어나 주님 앞에 왔습니다. 그리고 나은 후에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좀더 생생하게 그 장면을 묘사합니다.

 

마가복음 10:49-5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두 맹인은 기도할 때 겸손했고, 중보자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을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드린 칭호로 기도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분명히 성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에 인내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자비를 구할 때 소심하거나 망설일 때가 아니라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격려하셨습니다. 우리는 두 맹인 거지의 육체의 고통과 무거운 짐과 간절함에 대해 공감할 수 있습니다. , 우리도 영적 질병, 특히 영적 실명에 대해 얼마나 절실하게 간구하였는지요! 우리는 사실 영적으로 눈이 멀었지만 본다고 말하였습니다. 내면은 황폐하고 고통스러운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자신을 속이며 살았습니다. 이중적인 자신의 모습에 우리는 얼마나 절망하고 자신을 자책하며 살았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맹인들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시고 고치셨습니다.

 

맹인들은 보게되자마자 주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분의 은혜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이끄십니다. 이러한 기적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이 기적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 앞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겸손함으로 주님 안에, 주님 말씀에, 그리고 성령님의 임재하심에 잠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한 마디만 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원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살아계셔서 나를 사랑하시는가를 더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은혜로운 주님, 제가 주님이시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은혜 안에서 날마다 잠겨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매일의 간절함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급하지 않게 하시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주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먼저 나서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니콜라스 푸생, 여리고에서 두 맹인을 고치시는 예수님 (Nicolas Poussin (French, 1594-1665), The Healing of the Two Blind Men at Jericho)
 

니콜라스 푸생, 여리고의 두 맹인 또는 맹인들을 고치시는 예수님, 1650 (Nicolas Poussin, The Blind of Jericho, or Christ Healing the Blind,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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