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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제20장②_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의 요구

by 적아소심 2023. 8. 17.

마태복음 20:20-28

 

한 어머니의 요구(막 10:35-45)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A Mother's Request (Mark 10:35-45)

20 Then came to him the mother of Zebedee's children with her sons, worshipping him, and desiring a certain thing of him. 21 And he said unto her, What wilt thou? She saith unto him, Grant that these my two sons may sit, the one on thy right hand, and the other on the left, in thy kingdom. 22 But Jesus answered and said, Ye know not what ye ask. Are ye able to drink of the cup that I shall drink of, and to be baptized with the baptism that I am baptized with? They say unto him, We are able. 23 And he saith unto them, Ye shall drink indeed of my cup, and be baptized with the baptism that I am baptized with: but to sit on my right hand, and on my left, is not mine to give, but it shall be given to them for whom it is prepared of my Father.

24 And when the ten heard it, they were moved with indignation against the two brethren. 25 But Jesus called them unto him, and said, Ye know that the princes of the Gentiles exercise dominion over them, and they that are great exercise authority upon them. 26 But it shall not be so among you: but whosoever will be great among you, let him be your minister; 27 And whosoever will be chief among you, let him be your servant: 28 Even as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ministered unto, but to minister, and to give his life a ransom for many.

파올로 베로네세(1528-1588), 1565년경 세베대의 아내와 아들들을 만나는 그리스도, 1565년경 (Paolo Veronese(1528–1588), Christ meeting the wife and the sons of Zebedee, circa 1565)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아마도 다른 구절에서 그녀의 이름을 "살로메"라고 말합니다)가 예수님께 다가와 두 아들을 하늘에서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불 같은" 두 형제가 이런 대담한 요청을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께 그런 요청을 할 만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살로메는 정경 복음서와 외경에 잠깐 등장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follower)이었습니다. 마가는 살로메를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함께 있었고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한 여인 중 한 명인 몰약을 가진 자로 지목합니다. 중세 전통에서 살로메(마리아 살로메)는 안네의 딸인 세 마리아 중 한 명으로 간주되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자매 또는 이복 누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담대하게 천국에서 아들들을 위해 명예로운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명예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다음, 겸손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위대해지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높은 지위나 명성이나 누구를 얼마나 잘 대접하는지, 얼마나 선행을 베풀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겸손하게 섬기는가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세 번씩이나 가르침을 받고서도, 예루살렘에 들어서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단순한 정보로만 기억하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의 영광스러운 모습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입성 후에 누가 먼저 될 것인지, 누가 하늘에서 가장 큰 상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계속 다투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고 선행을 하였지만, 그들은 그들이 행한 역사(役事, works)에 대한 서로 평가를 하면서 서열을 다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찌든지 자기를 드러내어 인정을 받아 한 직급이라도 오르기 위해 핏대를 올리며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을 모든 사람의 종으로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모든 사람의 온유하고 겸손한 종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에게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기대하시는 바를 가르치시고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베대의 아들들인 제자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겪을 것과 같은 고통을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바로 눈앞의 명예와 지위를 생각하며 당연히 함께하겠다고 호기롭게 대답합니다. 그들은 미래의 고난은 알지 못하고 고난과 죽음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실재(實在)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야고보와 요한은 결국 예수님처럼 순교합니다. 가장 먼저 순교한 제자 야고보는 주후 40년에 헤롯 아그립바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의 동생 요한은 섬에 갇힌 채 홀로 마지막으로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숨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하여 "대속물"로 주어졌다는 말씀과 설교는 아마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은 우리 신앙의 주된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일만 달랄트 비유를 들어서까지 말씀하셧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우리는 실제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귀로 듣고 입술로는 그러한 사실을 말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지식화되고 신념화되어 마음에 감동이 없고, 삶의 원동력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신앙의 지식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복음의 실재인 예수님께서 바로 옆에 계시는데도 서로 서열과 자리다툼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동일하지 않을까요?

 

지위가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소유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자기 손발을 놀리기를 귀찮아합니다. 남들이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지요. Datcher Keltner, Debrah H. Gruenfeld, Cameron Anderson는 지위중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리더는 자기중심적이 되어 아랫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말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잊어버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데, 아랫사람들은 자기만 아는 리더의 말과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므로 이 문제는 훨씬 복합적이다.”

 

이들은 쿠키 실험을 했는데 3명의 학생에게 역할을 분담해서 짧은 정책보고서를 검토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중에 두 사람을 임의로 선정하여 보고서를 담당하도록 하였고, 한 사람은 그 보고서에 따라 지급비용을 검토하도록 하였습니다. 30분 후에 실험 진행자가 쿠기 5개를 담긴 접시를 그들에게 주었는데, 그 중에 보고서 검토 담당의 리더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 거리낌 없이 쿠키 2개를 먹었습니다. 단지 짧은 역할에 관한 실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리더라고 생각하고 바로 쿠기 2개를 먹고, 나머지 3개는 자기를 포함하여 재분배하려는 생각이겠지요? 이처럼 단순히 짧은 역할에도 지위(완장)에 대한 중독 현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완장효과”라는 실험 결과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을 것입니다. 역할극에서 완장을 채우면 권력을 휘두르는 현상이지요. 하물며 교회 공동체 내에서 목사가 처음에는 직분으로 생각하고 겸손하게 지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계급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고, 결국은 제왕적 권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이러한 지위중독에 대해 철저히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은 교회 내에서 결코 배울 수 없게 됩니다. 섬기는 종으로서 내려가려면 끊임없이 주변의 환경에 경각심을 가지고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남의 인정과 칭찬을 불편하게 여기고 자신을 낮은 자리에 가게 하려면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을 생각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지위는 달콤합니다. 남의 칭찬과 아부가 처음에는 불편해도 자꾸 들으면 익숙해지고, 그 말을 기다립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개인의 영성은 무너지고, 서로 섬기는 공동체의 정신도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 목사에게 아부와 섬김을 경쟁하게 되고, 시기와 질투가 범람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이미 교회 내부에 깊숙이 뿌리내려서 예수님께서 지금 교회에 오신다면 목회자와 장로들이 교회 밖으로 예수님을 쫓아낼 형편입니다.

루카스 크라나흐(형) (1472-1553), 거룩한 친족관계, 1509, 슈테델 박물관Lucas Cranach the Elder(1472–1553), The Holy Kinship, 1509, Städel Museum
 

중앙의 파란색 옷을 입은 동정녀 마리아가 있고, 양쪽 패널에는 마리아의 이복 자매들이 있습니다. 왼쪽은 마리아 클레오파스(Mary Cleophas)와 오른쪽에는 마리아 살로메의 가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왼쪽 그림은 마리아 클레오바스가 야고보를 가슴에 안고 있고, 바나바라고 불리우는 요셉 유다(Joseph Justus)가 책을 읽고 있습니다(마태복음의 선포자).

 

가운데 그림에서는 파란 옷의 동정녀 마리아가 있고, 옆에는 머리를 받치고 조는 듯한 남편 요셉이 보입니다. 마리아가 주는 사과를 받으려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 살로메가 있습니다. 뒤쪽 줄의 사람들은 전통에 의하면 안네의 세 남편입니다. 왼쪽은 요아킴(Joachim-안네의 남편이자 마리아의 아버지)이 평화로이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에는 마리아 살로메와 그의 남편과 함께 있는데, 황금색 옷을 입고 있는 마리아 살로메가 아들 야고보의 머리를 빗질하고 있고, 아이 요한은 그녀의 옷자락으로 몸을 두르고 있습니다.

 

살로매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처음부터 예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전승이 맞다면 살로메는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예수님을 돌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부터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제자들을 여러모로 섬겼을 것입니다. 따라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이모로서 예수님께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야고보와 요한을 위해 예수님께 부탁을 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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