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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제19장②_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시다

by 적아소심 2023. 8. 10.

마태복음 18:13-15

 

어린 아이들에게 안수하시다 (10:13-16; 18:15-17)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Jesus Blesses the Children (Mark 10:13-16; Luke 18:15-17)

13 Then were there brought unto him little children, that he should put his hands on them, and pray: and the disciples rebuked them. 14 But Jesus said, Suffer little children, and forbid them not, to come unto me: for of such is the kingdom of heaven. 15 And he laid his hands on them, and departed thence.

니콜라스 마에스(1634-1693), 어린이를 축복하시는 그리스도, 1652, 내셔널 갤러리(영국), (Nicolaes Maes(1634–1693), Christ blessing the Children, 1652, National Gallery, UK)
 

벤자민 웨스트(1738-1820),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는 그리스도, 1781년 (Benjamin West PRA(1738-1820), Christ blessing Little Children, 1781)

얀 반트 호프(1959~, 네덜란드)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님 (Jan van 't Hoff(1959~, 네덜란드), Jesus blesses the little children)
 

구스타브 도레,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님, 1866 (Gustave Dore, Jesus Blessing the Children, 1866)

13절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말씀에서 “그 때에”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씀하실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던 부모들에 대해 제자들은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고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어른들 얘기하는데 아이들이 끼어드는 것에 대해 당시 도덕적으로 그리고 관습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어른들 얘기인 결혼과 이혼에 관한 별로 덕이 안 되는 주제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때에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는 한시라도 같이 있기 싫은데, 부모들이 눈치 없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성품상 아이들을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시더라도 아이들을 축복하실 것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애들은 가라”고 한 것입니다.

 

어린 자녀들이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은 모든 지역,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소망입니다. 이스라엘 전통으로도 그것은 때를 따라 당연히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입장에서는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 대해 마태는 “파이디아(παιδία)” 즉, 7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에 반해서 누가는 눅18:15에서 신생아 또는 젖먹이 아이, 즉 유아를 가리키는 말인 “브레페(βρέφη)”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그때 많은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중에서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아이도 있었고 품에 안거나 어머니 등에 업혀 온 아이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18:1-10의 말씀에서 유추해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어린이들을 중시하지 않던 당시 사람들, 더 놀랍게도 제자들조차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아이들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14)”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아이들과 부모들 모두를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그 마음과 믿음에 있어서 어린아이같이 순결하고 순수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은 세속적인 어른의 마음으로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마태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의 인습, 관습, 전통, 도덕을 넘어서 천국 시민으로서의 믿음과 마음가짐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피카소는 그가 동심을 이루는데 4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동심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초심(初心), 순수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 마음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늘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 밭을 돌아보고 돌이키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자신의 마음에서 돌덩이를 비롯해 자글자글한 자갈까지 골라내는 끊임없는 작업을 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처음의 것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세상과 사람은 이익에 따라 변하고, 욕심에 따라 변합니다. 축복을 받게 되면 처음에는 기쁘하며 감사하지만, 나중에는 당연한 것이 되고 덤덤하게 됩니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익숙함이 경멸함을 낳는다)"는 말은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동심을 지킨다는 것, 초심을 지킨다는 것, 이것은 좁은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좁은 길을 기쁨으로, 어린아이가 소풍 가는 마음으로 가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끝까지 인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한 말씀과 기도가 좁은 길을 가는데 우리의 발 앞에서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에게 일일이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베레아, 요단강 건너편)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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