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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제18장②_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by 적아소심 2023. 7. 28.

마태복음 18:15-20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눅17:3) (참조; 신19:15-21)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5 Moreover if thy brother shall trespass against thee, go and tell him his fault between thee and him alone: if he shall hear thee, thou hast gained thy brother. 16 But if he will not hear thee, then take with thee one or two more, that in the mouth of two or three witnesses every word may be established. 17 And if he shall neglect to hear them, tell it unto the church: but if he neglect to hear the church, let him be unto thee as an heathen man and a publican. 18 Verily I say unto you, Whatsoever ye shall bind on earth sha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soever ye shall loose on earth shall be loosed in heaven.

19 Again I say unto you, That if two of you shall agree on earth as touching any thing that they shall ask, it shall be done for them of my Father which is in heaven. 20 For where two or three are gathered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소피야, 용서, 2013년 (Forgiveness, Posted on February 13, 2013 By Sofiya)

15절에서 주님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형제는 혈육을 나눈 형제보다는 같은 신앙 공동체에 있는 동료를 의미합니다. 현재 제자들에게 형제는 멀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는 동료 제자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제자들간에는 ‘누가 크냐’ 하는 서열 문제로 관계성이 많이 깨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한 달 후에는 십자가에서 죽으히고 부활하셔서 더 이상 육신적으로는 제자들과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 간에 먼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권고하다“는 의미는 헬라어 ἔλεγξον(elenxon; 기본형 ἐλέγχω elégxō)인데, 이는 '잘못을 드러내다', '증거를 가지고 책망하다'는 의미로 단순히 우리가 말하는 좋은 말로 타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즉,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도록 '무엇이 죄악인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 또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 형제의 잘못을 정당하게 꾸짖고 그가 가야 할 길을 열어주는 것을 말합니다(요8:46, 딤전5:20). 즉 그 권고의 목적은 형제를 판단, 질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형제를 다시 참 형제로 얻기 위함입니다(고전9:19-22; 벧전 3:1). 이것이 바로 죄를 지은 형제와의 첫 화해 작업에 해당합니다(레19:17).

 

하나님께서 우리가 범죄할 때에도 애끊는 마음으로 권면하십니다. 책망받는 것보다 책망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의미는, 연하자가 연장자를 책망할 때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연장자가 연하자를 책망할 때에는 더 성숙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형제를 책망하려고 한다면 많은 기도와 마음 준비가 필요하고, 실제 책망할 때에도 처음 마음을 다잡아 가며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야 책망하고 나서도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은 책망의 말뿐 아니라 그러한 마음을 함께 전달받게 됩니다.

 

예레미야 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범죄한 형제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즉, 그가 오히려 권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비방하거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는, 2차적으로 두세 증인을 데리고 갑니다. 증인들은 영향력이나 권위를 가진 사람, 즉 그의 개인적인 친구이거나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교회 앞에서 그의 행실에 대한 증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마18:17). 모세의 율법에는 두세 명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신명기 19:15, 고린도후서13:1, 요한복음 8:17).

 

신명기 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결국 범죄한 형제에 대해서 책망이 필요한데, 그 방법에 사랑과 절제와 절차가 필요한 것입니다.

 

거룩하고 복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책망하실 때에는 사랑으로 은밀히 책망하시되 그가 받으면 좋고, 받지 아니하면 친구들 가운데서 책망하시고, 그가 받으면 좋고, 받지 아니하면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책망하시되, 그가 받으면 좋고, 받지 아니하면 그를 떠나서 다시는 책망하지 아니하십니다.

 

친구가 선하지 아니한 길로 행하는 것을 보는 자는 그가 비록 예수님의 제자요, 직분자라도 그를 책망할 수밖에 없으니, 이는 그의 유익을 위함이요, 그를 내세의 생명 곧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입니다. 만일 그가 받아들이면 잘한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절차를 밟아 다시 책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범죄한 친구를 여러 번, 혹은 그가 들을 때까지 책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인격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8절에서 제자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부여하신 권한을 전체 사도직에 엄숙히 부여하십니다(마태복음16:19). ”매는 것“과 ”푸는 것”은 제한된 의미에서, 그리고 앞의 내용과 논리적 연관성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사도들이 승인하기 전까지는 하늘 법정에서 승인하지 않는다는 의미합니다. 사도들의 결정(판결)이 범죄한 자의 구속(binding; 인신구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이든 그의 죄에 대한 풀림(loose)이든, 사도들의 비준이 필요하며, 그 비준에 따라 하늘에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범죄한 그리스도인을 대하는 자세는 이 말씀에 대한 실제적인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회중이 그 사람의 죄를 결정하지만, 바울(사도)은 그를 "매어서(binding)“ 죄를 간직하고 사탄에게 넘겨주게 됩니다(고린도전서 5:1-5). 그러나 그가 회개하여 용서받을 때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그를 "풀어주는(용서해주는)" 것을 사도가 한다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2:10).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독교에서의 교회의 치리와 권징은 이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 구절은 일찍부터 안수식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각 교파마다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을 달리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는 제자(사도)들에게 이런 큰 권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함께 하며 말씀을 받았던 사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말씀은 또 다른 말씀과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해석하여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19-20절에서 주님은 본문 말씀에 대한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한다 것은 원어로 συμφωνήσωσιν(symphōnēsōsin; 기본형-συμφωνέω 쉼포네오)인데, '어떤 일을 의논하여 합의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합심'이란 헬라어 '심포네오'가 '교향악'(Symphony)이란 말의 어원이란 점에서도 추측해 볼 수 있듯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연출해 내다'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단순히 '마음의 일치, 조화'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일치는 친한 친구사이에서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완전한 일치를 이룬 자들에게 각 개인에게 임제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이 땅에서 겸손한 두 영혼의 일치된 기도는 하늘 아버시께서 그것들을 교회의 간구로 받아들이시고 교회가 지닌 특권(마18:18, 16:19)에 합당하게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에는 암묵적인 조건에 달려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마18:20). 그분의 중보에 의지하고, 자연적인 세상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영적인 사람의 말의 기도를 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응답은 물론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의할 것입니다. 그것이 즉각적인 시행이든, 보류이든 거절이든.... 이것 모두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렘브란트 반 라인 하멘츠(1606 - 1669), 제자들 사이에 계신 예수님 (Rembrandt van Rijn Harmensz(1606 – 1669), Jesus among his Students)

예수님이 제자들들과 겟세마네 동산 감람산에 계십니다. 십자가를 바로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은혜로우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시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애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애타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니, 지금이라도 더 잘 알 수 있다면 주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마음에 새기며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을텐데...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내어 주님과의 교제를 할 수 있을텐데... 하나님과 나의 영은 늘 눈비가 되어 있으나 나의 육신은 연약하고 악합니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은 생각에 잠겨 있거나 그냥 듣고 있는 요한으로 보입니다. 오른쪽 상단에는 렘브란트의 서명이 있습니다: "렘브란트가 1634년에 만든 작품"이라는 뜻의 "렘브란트 f[acit] 1634"라는 서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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