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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3장_세례요한의 천국복음과 세례

by 적아소심 2023. 1. 25.

1-12 세례 요한이 천국을 전파하다( 1:1-8; 3:1-18; 1:19-28) (The Proclamation of John the Baptist)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The Voice in the Desert, James Tissot (French, 1836-1902), 1886-1894 (광야의 소리, 제임스 티소)

제임스 티소는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정결케 하는 세례식을 행한 세례요한을 소개하며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부분을 시작합니다. 광활하고 험준한 유대 사막에서 부르짖는 세례 요한은 여기에서 그의 팔을 공중으로 내뻗습니다.

티소는 그의 논평에서 세례 요한이 거주했던 바위 계곡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효과에 주목하여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는 그의 단호한 외침을 고조시킵니다. 때로는 여행기처럼 읽혀지는 작가의 해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디테일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살면서 설교하는 세례 요한은 가난의 흔적이 역역합니다. 또한 그는 참회의 증거인 거친 낙타 털 망토를 입고 광야길을 위한 지팡이를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Saint John the Baptist and the Pharisees, James Tissot (French, 1836-1902), 1886-1894 (세례 요한과 바리새인들, 제임스 티소)

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에서 회개하라는 헬라어로 “Μετανοεῖτε(μετανοέω) 2인칭 복수, 명령형, 현재미완료형으로 계속 회개를 해야 함을 말하며, μετα(메타) 함께 후에 바꾸다(changed after being with)” 의미이고 νοέω(노에오) 생각하다(think)” 의미입니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것은 헬라어적 의미로생각을 바꾸다입니다.

에스겔18:30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Therefore I will judge you, O house of Israel, every one according to his ways, saith the Lord GOD. Repent, and turn yourselves from all your transgressions; so iniquity shall not be your ruin. KJV)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회개하라는 히브리어로 שׁ֤וּבוּ(שׁוּב)shubu(shub)인데, 이는 행동을 바꾸다는 의미입니다. 위 에스겔서에도 shubu는 명령형에 미완료형으로 "지속적으로 돌이켜 회개하고 행동을 바꾸라"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미 천국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으며, 이제 후로는 마음을 바꾸고 살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사변적인 헬라적 표현으로는 함께 한 후에 생각을 바꾸는 것이고, 동적인 히브리적 표현으로는 돌이켜 행동을 바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생각과 행동 모두를 바꾸어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10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도끼는 헬라어로 ἀξίνη(axine)입니다. 그런데 8절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말에서 합당한ἄξιον(axion)으로 가치있는, 공정한, 합당한 저울을 달아내는의미로 서로 발음이 묘하게 동일하게 대치되는 부분입니다. 8절의 합당한 열매, 10절의 좋은 열매가 나오며 열매를 강조하였는데, 그 만큼 행위로 즉 삶으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John the Baptist preaching, Gustave Dore (구스타브 도레의 "말씀을 선포하는 세례 요한")
The Preaching of St. John the Baptist by Pieter Bruegel the Elder, 1566 (브루헬의 "세례요한의 설교")
The Preaching of St. John the Baptist by Pieter Bruegel the Elder(in detail), 1566, in the Museum of Fine Arts in Budapest, Hungary (브루헬의 작품의 디테일 묘사)

피터 브루헬의 그림에서는 평범한 농부들의 모습도 보이고 귀족들도 보입니다. 세례 요한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은 절망적인 표정입니다. 실신할 정도로 절망적인 표정도 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도 보이고(오른 쪽 팔짱 낀 모습의 사람은 꼭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나무에 올라가서 청종하는 사람, 뒤쪽에는 군중들을 감시하는 듯한 사람도 보입니다. 특히 왼쪽 나무 옆으로 저자로 보이는 사람의 얼굴이(아마 작가 본인을 표현) 빼꼼하게 나와 독자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피에테르 브루헬(Pieter Bruegel, 1525, 1530 – 1569)은 네덜란드와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가이며, 풍경화가로서 대형 그림에 초점을 맞춘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종교적인 주제에 대한 혁신적인 화풍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St. John the Baptist Preaching, Mattia Preti, 1665 (마티아 프레티의 작품)

마티아 프레티의 '세례 요한의 설교'는 요한을 예수님의 오심을 알리는 예수님의 선구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예언하고 준비하는 모습을 지팡이로 상징하는 것처럼 보여주는데, 지팡이 위에 메시지가 적힌 십자가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설교하고 하늘을 가리키며 청중들에게 그들의 상급이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고, 그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촉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은 갈대 십자가, 낙타 가죽 옷, 어린 양을 포함한 기독교 성화에 자주 등장합니다.

 

마티아 프레티(1613–1699)는 이탈리아와 몰타에서 활동한 바로크 예술가였습니다. 그의 초기 견습 기간은 카라바조 양식에 대한 그의 평생의 관심을 설명하는 "카라바조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카라촐로와 함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프레티는 운 좋게도 오랜 경력과 상당한 예술적 성과를 누렸는데, 그는 성 요한 기사단의 회원으로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Saint John Baptising the People, Nicolas Poussin(1594-1665), circa 1635 (니콜라스 푸생의 작품)
세례(침례)의 의미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3: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로마서 6 4절의 앞부분을 보시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성도들이 그의 죽으심에 세례 받아 연합되었다는 것은, 성도들 역시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더불어 성도들은 죄에 종노릇하던 옛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듯 세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교훈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갈라디아서에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3:27).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우리 주님과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세례라는 예식 자체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이것은 성도의 신령한 체험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세상 가운데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따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세상의 정욕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구원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세례는 주님과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롬6:4절에서 세례를 받을 때 물속에 몸을 잠그는 일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골로새서에도 나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2:12)

 

세례는 단순한 의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을 동반한 것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사실을 확신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갖고 있었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게 되며 죄의 종노릇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세례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세례는 이전의 나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생명을 얻어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시면 베드로가 했던 얘기가 나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2:38)

 

베드로가 말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일 뿐 아니라 성령을 받는 일과 관련된 세례였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됩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세례의 참 뜻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고 함께 살림을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사랑 선물 입니다. 세례는 한 신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바를 외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그를 따르겠다는 다짐을,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그리고 부활에 참여한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일입니다. 세례가 물세례만 받는 것이 되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을 함께 받아야 이를 통해 진정으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태3:10)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3:12)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도끼로 찍히게 되고 쭉정이는 불태워 버리듯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합당한 열매는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열매를 말합니다마태복음에서는 특히 열매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말보다 삶의 행위를 더 중요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3-17 세례를 받으시다( 1:9-11; 3:21-22) (The Baptism of Jesus)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4절에서세례 요한이 말려 이르되 원래 원어적으로전적으로 방해하다”, “소리치며 분리하다”, “방해하다 뜻으로 미완료시제로서 세례 요한이 계속 완강하게 말렸다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는 어려서부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부모로부터 얼마나 많이 태어날 때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교육을 받았을까요?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는 말에서 그의 난감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15절에서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여기에서허락하라 말은 헬라어로Ἄφες(ἀφίημι)인데, ἀπό(away from) + hiemi(send)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to send away, leave alone, permit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예수님께 맡기고 그냥 순종하여 그대로 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대로 따르라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dikaiosynen) 법적 용어(legal term)인데사법적 판결, 법적 승인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적 의미로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점검(조사, 검사) 하나님의 평결에 의해 인정(승인)”한다는 뜻입니다. 실질 문제가 어떠하든지 법적으로옳다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대해 이상 왈가불가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법적으로 선포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과거나 현재가 어떻든 간에 의롭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인간적인 질서나 서열 등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에게도 기꺼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또한 예수님의 그러한 요청에 기꺼이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모두가아니오 없고 오직 있을 뿐입니다.

The Baptism of Jesus Painting by Michael Torevell (왼쪽), BAPTISM OF CHRIST, 2003, Vladimir Zagitov (오른쪽)

원래 세례는 명확하게 "침례(baptism)"를 말합니다. 완전히 물속에 잠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세례"라는 말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물에 완전히 잠기도록 침례를 베푸는 성화를 찾기가 어려워 가장 성경 말씀에 근접하게 묘사한 현대적인 그림을 올려 보았습니다.

The Baptism of Christ by Jacopo Bassano, 1590,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틴토레토, 티치아노, 베로네세와 함께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화가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 야코포 바사노는 그의 종교적인 그림에 일상의 풍경을 접목시킨 르네상스의 거장이었습니다. 1530년대에 그는 전통적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관객들이 인식할 수 있는 소박한 가정 환경의 성경 장면들을 묘사했고, 이것은 그의 작품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1540년대와 50년대에, 바사노는 풍부한 색채의 매너리즘 스타일로 작업했고, 이는 빛의 조건과 함께 나타나는 표현적인 작품으로 발전습니다. 특히 그의 어두운 밤의 장면들은 엘 그레코에게 영향을 주었고 바로크 시대를 예견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의 후기 작품은 자연 풍경과 동물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데, 그는 까다로운 자연주의적 세부사항을 잘 묘사했습니다.

Baptism of Jesus, James Tissot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기 위해 갈릴리에서 유대로 여행합니다. 비록 세례 요한이 겸손하게 항의하며 대신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고 제안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에 그대로 따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비둘기 한 마리가 예수가 물에서 나올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시에, 위에서 예수님을 "나의 사랑하는 아들" 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강둑의 갈대숲 사이로, 복음서의 초기 말씀에 근거한 세례 요한의 광야에서의 사역에 대해 호기심과 의심을 가지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몰래 세례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티소의 본문은 예술적 전통에서 종종 어린 시절의 동반자로 제시된 사촌인 세례자 요한과 예수가 어른이 되어 12개의 돌로 표시된 장소(구약과 신약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사건의 합류점)에서 다시 만났다고 언급하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요단 강을 건너 사막에서 방황한 후 이스라엘에 다시 들어온 장소를 나타냅니다. 그의 수채화에서,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의식을 거행할 때 이 돌들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The Baptism of Jesus, by Rembrandt van Rijn (렘브란트 작품)

우리는 지금 지구 표면의 가장 낮은 지점, 즉 아득히 높은 보좌에 계셨던 하나님 자신의 아들이 구원 사역을 시작하려는 그 엄숙한 순간에 와 있습니다.

 

주변의 둑을 따라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강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우리 주님의 머리 위에 물이 가득 찬 조개껍데기를 붓는 것처럼, 예수님은 머리를 숙이고 물 속으로 몸을 웅크리고 계십니다. 요한의 얼굴은 사랑에 찬 감탄을 발산하는 반면, 예수님의 얼굴은 완전한 겸손의 얼굴입니다.

 

The Baptism of Christ, Giotto di Bondone, c.1305, (Giotto 작품 및 디테일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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