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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15장(下)_사천 명을 먹이시다

by 적아소심 2023. 5. 9.

마태복음 15장 29-39 사천 명을 먹이시다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다(29-31)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사천 명을 먹이시다(32-39) (막 8:1-10)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출처 불명(Source를 찾지 못함)
제임스 티소 (프랑스, 1836-1902). 산에서 소경과 앉은뱅이를 고치시는 예수님, 1886-1896 (James Tissot (French, 1836-1902). Jesus Heals the Blind and Lame on the Mountain, 1886-1896.)

예수님은 다시 두로와 시돈 지방을 떠나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3일 동안 계속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29-31)

이 장면에 대해 몇 구절 없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얼마나 극적인 장면이 많겠습니까? 예수님의 권위와 명성을 이스라엘 전역 뿐만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까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앉으셨다는 말씀의 시제는 미완료입니다. 아직 예수님이 제대로 자리잡고 앉아서 쉬지도 못하는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어디든 가실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거기까지 큰 무리가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리는 병자, 불구자, 소경, 벙어리 등 모든 종류의 질병과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데려온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병자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 발 앞에앉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고치셨습니다. 모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를,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지셨는지, 아니면 그저 말씀으로만 하셨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사람들이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과 권세를 확신하여 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왔다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더 많은 치유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치유가 끝날 때마다 일사불란하게 들어가고 빠지기를 계속 했을 것입니다. 무리들은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거의 죽어가던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는 병자들을 보며 놀랐을 것입니다.

 

30절에서 무리들은 각종 병자들을 예수님의 발 앞에 앉혔다고 했는데, 영어 성경(KJV)에서는 “cast down” 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발 앞에 내동뎅이 치듯 놓았다는 뜻입니다. “And great multitudes came unto him, having with them those that were lame, blind, dumb, maimed, and many others, and cast them down at Jesus' feet; and he healed them(30)“ 헬라어 원어 사본 성경에서도 ρριψαν(에리프산; 기본형 ίπτω, 흐립토), throw, cast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기의 병자들을 먼저 예수님 발 앞에 앉히려고 경쟁하며 애썼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피곤하신지, 배고프신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냥 그들과 병자들의 요구를 주님 앞에 내팽개치듯이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체면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그냥 예수님께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의 그러한 행동에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하나하나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고쳐 주셨습니다여기서 우리는 절박한 문제가 있을 때 이들처럼 예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문제가 불치병이건, 아니면 내적인 상처이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인간 갈등 문제이건, 재정적 문제이건, 진로 문제이건, 건강 문제이건, 자녀 문제이건, 아니면 나의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이건, 이 모든 것을 예수님 발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치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모두 고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3일 동안 식사도 안 하시고 계속해서 모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무리에 대한 긍휼때문이었습니다. (32절 참조)

 

예수님의 이런 행동 장면은 단지 몇 줄로 서술하고 말았지만, 예수님께서 일일이 치유하시는 장면을 사진 찍고 기록하면 아마 복음서의 다른 내용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또한 얼마나 기구하고 사연도 많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계속 고치시고 사람들이 들락날락할 때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들의 기구한 삶을 서로 나누며 위로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모여들어 결국 어린아이와 여자를 제외하고 4천 명이나 모였습니다.

얀 반트 호프(1959~ ,네덜란드), 기적의 식사 (Jan van’t Hoff, The miraculous feeding)
 
Source: Right Rev. Richard Gilmour, D.D. Bible History: Containing the Most Remarkable Event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with a Compendium of Church History (New York, New York: Benziger Brothers, 1904)
 
Source : Martin Luther, translator Volks-Bilderbibel oder die ganze heilige Schrift des alten und neuen Testaments, nach der Ueberseßung Dr. Martin Luther's (Leipzig, Germany: Baumgärtners Buchhandlung, 1853) 26
 

지오반니 란프란코, 떡과 물고기의 기적 (Giovanni Lanfranco, Miracle of the Bread and Fish)

오천 명을 먹이심과 사천 명을 먹이심에 대해

오병이어의 기적은 부활을 제외하고 네 복음서 기자가 모두 기록한 유일한 기적이므로 복음서 기자들에게 분명히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모두 군중을 먹이는 장면을 두 가지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5,000명을 먹이고 그다음은 4,000명을 먹인 것입니다:

 

사건 오천명을 먹이심 4천 명을 먹이심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관련 구절 마14:13-21, 막6:30-44; 눅9:10-17; 요6:1-14 마15:32-39; 막 8:1-10
마태복음 오천 명(마14:13-21) - ”저녁 무렵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이르되,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사천 명(마15:32-39) -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마태와 마가는 왜 같은 종류의 기적을 두 가지나 포함시켰을까? 예수님이 이미 5,000명을 먹이셨다면, 더 적은 인원을 먹이신 두 번째 기적을 포함시킴으로써 복음서 이야기에 실제로 추가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상해 보입니다. 그 귀한 잉크와 양피지를 사용해 다른 기적을 기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4,000명을 먹인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일이 일어난 장소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은 갈릴리 바다와 가까운 벳새다 근처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4,000명을 먹이신 기적은 데카폴리스 주변 지역인 거라사 지역(Gergesa, Gergasa 또는 Gergesenes - Gadara와 Gerasa의 고대 Decapolis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갈릴리 바다의 동쪽에 있는 장소)에서 일어났습니다.

 

두 기적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첫 번째 지역은 유대인(5,000명)이었고 두 번째 지역은 이방인(4,000명)이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본문에는 이 구분을 가리키는 몇 가지 숫자 단서가 있습니다(성경에서 숫자는 우연이 아닙니다).

 

❶ 5,000명을 먹이심 - 이 기적에서 예수님은 다섯(5) 개의 떡을 받아 오천 명(5,000)을 먹이셨는데, 이는 유대 율법의 모세 오경(5)을 연상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식사를 마쳤을 때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모였는데, 이는 아마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암시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❷ 4,000명 먹이심 - 이 두 번째 기적에서는 일곱 개의 떡이 사용되었고 일곱 바구니가 모였습니다. 숫자 7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한다는 완전성을 상징하며, 숫자 7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창조하신 창조의 7일을 연상시킵니다.

 

또한 "바구니"에 대한 다른 그리스어 단어. 5,000명과 관련된 "바구니""코피노스"(손 바구니)이고 4,000명과 관련된 "바구니""스푸리다"(큰 바구니)입니다. 후자 또는 "스푸리다" 바구니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을 담을 수 있을 만큼 컸습니다(사도행전 9:25). 이러한 정확한 단어는 성령께서 우리가 그것들을 별개의 사건으로 보도록 하셨음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시입니다.

 

두 사건은 명백하게 서로 다른 별개의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서도 그것들을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마태복음16:9~10절은 5,000명을 먹이신 사건과 4,000명을 먹이신 사건이 두 각도에서 바라본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별개의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마태복음16:9-10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코피노스)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스푸리다)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우리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이 기록들 사이에 기적적인 사건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대주의적으로 이해한다면 이 사건들은 분명 별개의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5,000명은 유대인의 맥락(14)을 가지고 있는 반면 4,000명은 이방인의 맥락(15)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열방 모두 차별없이 천년왕국-하나님의 구원의 통로에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중을 두 번 먹이신 기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두 기적 모두 주님의 공급하심과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기적들에서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의 몸과 피를 모든 인류에게 먹이실 날을 준비하기 위해 기적의 떡으로 그들을 먹이십니다.

 

고린도전서10:16-17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그렇다면 본문에서 나타난 배고픈 무리를 먹이시고자 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응은 어떻게 달랐을까요?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33)” - 제자들의 이 물음이 필요한 양의 떡을 공급하는 일은 자신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예수께 달린 것임을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요6:7)라는 오천 명을 먹일 때와 같은 계산식을 하지 않고 오히려 무리의 배부름을 예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오천 명의 급식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제자들의 이 물음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들이 여전히 무지하고 믿음이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중 후자의 견해가 더욱 맞는 것 같기는 합니다. 즉 제자들은 고질적인 불신앙으로 예수님의 무한하신 권능과 과거의 기적들을 믿음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34)”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것을 책망치 않으시고 대신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권능을 기대하도록 하시려는 의도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물음은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❶ 현재 너희가 가지고 있는 물질, 재능, 소질에 대한 참된 가치는 믿음의 힘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현재 가진 것을 믿음의 능력을 위한 놀라운 가능성으로 바라보셨는데 이는 말씀만으로도 친지를 창조하실 수 있었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❷ 영적인 의미에서, 인간 영혼의 떡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가 지금 어느 정도인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비록 겨자씨만 한 것 혹은 보리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정도로,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믿음을 기초로 하여 더 큰 믿음을 이루시겠다고 하는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5천 명을 먹이심과 4천 명을 먹이심의 차이점과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4천 명을 먹이시는 장소와 장면을 기록한 것을 통해 예수님의 복음에는 차별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4천 명을 먹이시기 바로 직전에 가나안(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또한 3일 동안 많은 이방인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또한 모여든 4천 명을 모두 배부르게 먹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을 이방인이라고 무시하신 것은 그녀의 믿음을 테스트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나아가면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아멘. 성부성자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로마서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골로새서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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