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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15장(中)_가나안 여인의 믿음

by 적아소심 2023. 5. 7.

마태복음 15장 21-31

 

가나안 여자의 믿음(21-28) (막 7:24-30)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The Faith of the Canaanite Woman (Mark 7:24-30)

21 Then Jesus went thence, and departed into the coasts of Tyre and Sidon. 22 And, behold, a woman of Canaan came out of the same coasts, and cried unto him, saying, Have mercy on me, O Lord, thou Son of David; my daughter is grievously vexed with a devil. 23 But he answered her not a word. And his disciples came and besought him, saying, Send her away; for she crieth after us. 24 But he answered and said, I am not sent but unto the lost sheep of the house of Israel. 25 Then came she and worshipped him, saying, Lord, help me. 26 But he answered and said, It is not meet to take the children's bread, and to castitto dogs. 27 And she said, Truth, Lord: yet the dogs eat of the crumbs which fall from their masters' table. 28 Then Jesus answered and said unto her, O woman, greatisthy faith: be it unto thee even as thou wilt. And her daughter was made whole from that very hour.

Jean-Germain Drouais, Miracle of the Canaanite Woman, French, 1784, Paris, Musée du Louvre (장 제르맹 드루아, 가나안 여인의 기적, 프랑스, 1784,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 작품은 렌 미술관에 소장된 드루아의 두 번째 버전으로, 같은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요청을 들어주시고 제자들의 항의로부터 가나안 여인을 보호하시는 극적인 순간을 보여줍니다. 또한 두 작품 모두 고전적인 건물 옆에 피라미드를 배치하여 초기 고고학 탐사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피터 라스트만, 가나안 여인의 기적, 네덜란드, 1617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Pieter Pieterszoon Lastman, Miracle of the Canaanite Woman, Dutch, 1617, Amsterdam, Rijksmuseum)

피터 라스트만(1583-1633)은 네덜란드의 역사 작품 화가로서 렘브란트, 얀 리벤스 등의 제자들을 키워낸 중요한 인물로 여겨집니다. 라스트만은 그의 그림에서 얼굴, 손, 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위 그림에서는 주변에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있고,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게 부르짖으며 탄원하고 있습니다. 왼쪽에서는 아이들이 빵을 먹고 있고(빵 부르러기가 생각납니다), 개들이 예수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입니다. 그림에서 개는 여인의 신앙고백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소품이 되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개의 모습이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귀여운 반려견의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제자들은 여인이 계속 따라다니며 부르짖자 너무 시끄럽고 귀찮아서 예수님께 내쫓아달라고 요청합니다. 

세바스티아노 리치(1659-1734),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박물관 (Sebastiano Ricci(1659–1734), Cristo e la cananea(Jesus and the woman of Canaan), National Museum of Capodimonte)
 
제임스 티소, 예수와 가나안 여인, 프랑스, 1888-1894,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 (James Tissot, Jesus and the Canaanite Woman, French, 1888-1894, New York, Brooklyn Museum)
 

제임스 티소가 그린 19세기 후반의 이미지는 고고학적으로 더 정확한 배경과 의상을 덧입고 예수님과 가나안(수로보니게) 여인의 역사적인 만남 그 순간을 보여줍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

예수님은 바리새인 및 서기관들과 전통의 문제로 충돌 후 바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21). 예수님의 활발했던 갈릴리 전도사역은(4:12-15:20) 이제 끝나고, 한적한 곳 또는 베레아 사역이 이때부터 시작하여 20:34까지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수로부터 50-60km 정도 떨어진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나가셨습니다. 21절과 막 7:31에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이방지역으로 돌아가셨음이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신 예수께서는 복음을 거절하는 유대인들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이교도 우상숭배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이 여인을 단순히 이방인이 아니라 불신자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그 여인과 그녀가 대표하는 모든 사람들은 불신자이자 죄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녀는 거부당하고 영원한 정죄를 받아 마땅한 존재였습니다. 더욱이 신실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구원 계획에 포함시키지 않으셨기 때문에 경멸을 받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확신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여인을 보내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귀찮은 그 여자를 빨리 쫓아버리고 싶었했을 것입니다. 침묵하는 예수님 앞에 그들이 중재자로 나선 것은 그 여자에 대한 진정한 동정심(同情心)에서가 아니라 단순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절망에 빠진 여인의 외침에 짜증을 내며 보내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종교적, 신학적인 용어로 '이교도 세계''악마가 지배하는 세계'를 의미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이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미 그 세상을 정죄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관점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외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으셨고, 국가적, 인종적, 종교적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실 가나안 여인에게서 당시 믿음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놀라운 믿음을 발견하셨습니다. 이 믿음은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드러나고 알려져야 했을 것입니다(이방인 고넬료의 믿음처럼).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평소의 온화하고 친근한 말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친 말을 사용하면서 여인을 경멸하는 다소 이상한 과정을 취하셨습니다. 죄가 있지만 괴로워하는 이 여인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는 제자들조차 놀라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자녀'은 이스라엘 백성이고 '개들'은 이방인(이교도)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크게 오해를 할 만한 차별입니다. 이 적나라한 차별은 주님 당신의 판단보다는 그 시대 종교인들의 기준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크 무어(Mark Moore)<그리스도의 연대기적 생애(The Chronological Life Of Christ)>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인이 '이방인(outsider)'으로서 구하는 것은 유대인 메시아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하나님의 계획의 '자녀(insider)'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은 유대인의 메시아이시지만 곧 전 우주적 주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방인을 경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그녀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기 전까지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십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에게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가르치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종종 이방인(ousider)이 자녀(insider)가 되는 것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녀와 제자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왕국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녀는 아직 하나님 나라의 소속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탁에 앉을 자리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마가는 흥미로운 관찰을 합니다. 그는 그 여인이 헬라(그리스) 출신으로 수로보니게아 지역에 살았다고 언급합니다(7:26). 당시 두로와 시돈 지역뿐만 아니라 더 넓은 가나안과 수로보니게아 지역에는 주로 상업에 종사하는 헬라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헬라인 공동체에서 큰 기적을 행하시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미래의 사역에 좋은 밑거름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수로보니게) 여인은 끈질기게 인내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번에도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치유를 간청합니다(마태복음 15:25). 이 문화권에서 여성으로서는 대담한 행동입니다. 여인은 절실한 필요 때문에 문화-종교적 경계를 뛰어넘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대담한 행동에 다음과 같이 응답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경멸적으로 들립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 여인을 발로 차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의 죄악된 상태에 대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수치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녀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죄와 타락한 상태를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반응에서 그녀가 그것을 이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예수님이 왜 그녀를 개라고 불렀는지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개를 κυναρίοις (키나리오이스, 기본형 κυνάριον, 퀴나리온)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κύων(퀴온)라고 하였는데, 이때의 (dogs)”는 모두 악한 것을 상징하고 그것을 야유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입니다(11:7; 7:5; 7:6; 3:2).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멸의 대상인 이방인이나 이단자를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59:6). 그러나 예수께서 사용하신 ''라고 하는 말인 헬라어 'κυνάριον(퀴나리온)‘은 경멸적 의미에서의 '들개'나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사납고 악한 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기르는 '애완용 개''강아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라는 표현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부를 때 사용하던 경멸적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이방인들이 '자녀' 곧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 아니라고 하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 우리처럼 개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개는 모두 더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종종 이방인을 ""라고 부르며 그들을 경멸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개를 사랑했고 개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을 개(키나리오이스)라고 부르신 것은 유대인이 아닌 그리스인의 개에 대한 시각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녀는 겸손하고 재치 있게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마태복음 15:27)

 

마크 무어(Mark Moore)<그리스도의 연대기(The Chronological Life Of Christ)>에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박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겸손은 인상적입니다. 그녀의 재치와 끈기 또한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이제 (1) 예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과 (2)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었고, 그분은 기꺼이 축복을 주셨습니다."

 

, (이방인)가 아닌 자녀(이스라엘)에게 빵을 주어야 하는 부모의 의무에 대해 말씀하신 후, 개도 부자의 부스러기를 먹는다는 여인의 주장에 예수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원문에는 γύναι(O woman!, 오 여자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 여자여, 너의 믿음이 μεγάλη(메가-ㄹ레; great) 하도다우리 성경에는 !”라는 감탄사가 빠져 있는데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에 감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소원대로 딸이 치유되는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새로운 기준

예수님이 이방인 세계와 만난 구체적인 사례는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적 기준을 대체하는 믿음에 관한 또 다른 기준을 보여줍니다. 이 접근 방식은 놀랍게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 역사가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는 옛 유대인처럼 순전히 율법적인 측면에서 믿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헬라인 가나안 여인은 이교도 배경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영성에 대한 놀라운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유대인처럼 자신을 내세우거나 요구하지 않고 정숙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거룩함과 완전함 앞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임을 발견하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녀는 유대교의 선택받은 자들에게 거부당하고 경멸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하고 깊은 사랑과 겸손을 간직하고 이를 끝까지 인내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은혜로 드디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도 경건한 유대인들에게서조차 발견하지 못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이방인 여인의 믿음은 이제 각 사람의 믿음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기준에서 깊이와 진실성 같은 내적 기준을 평가하는 과정으로 넘어갔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믿음은 헌신적인 신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사람들도 의심할 여지 없이 감동적인 믿음을 가질 때가 있으며, 대개 놀라운 삶의 모습을 동반합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영적, 정신적으로 전통이나 직업에 따라 신앙을 가진 많은 사람들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더 가깝게 다가갑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전도자가 이방인 여인의 이야기를 보존하면서 드러낸 영적 교휸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의 묘사는 매우 흥미롭고 사실적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 유대인들이 이 여인과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을 경멸하는 내용이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믿음과 기적과 구원에 대한 그녀의 권리(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리)에 대한 주장도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단지 랍비이자 스승으로 여겼지만 가나안 여인은 그를 구속자이자 구세주로 여겼습니다. 이 여인은 주님이 역사에 나타나신 단순한 외적 현현(顯現)을 뛰어넘어 주님이 이 세상에 구원자로 임재하신 신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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