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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14장(中)_오병이어, 오천 명을 먹이시다

by 적아소심 2023. 3. 23.

마태복음 14장 13-21

 

오천 명을 먹이시다(막 6:30-44눅 9:10-17요 6:1-14)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The Feeding of the Five Thousand (copy after Bartolome Esteban Murillo), 오천 명을 먹이심,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릴로의 작품을 모방한 그림
Feeding the Five Thousand, Marten van Valckenborch, 오천 명을 먹이심, 마르텐 반 발켄보흐 작품

예수님께서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셨을 때 무리들은 걸어서 끝까지 따라왔습니다. 위 그림에서 오른쪽에는 농부들이 한창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는 부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쫒는 무리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사정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나 마가는 이들을 ὄχλος(오클로스, 무리 또는 군중)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들은 안정된 주거가 없는 떠돌이들과도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복음 사역은 이런 무리("민중"이라고도 하지요)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곳곳에 다니며 예수님에 대해 전파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어찌든지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시고, 또한 그들의 배도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Jesus Feeding 5000, Giovanni Lanfranc, 예수님 5천명을 먹이시다, 지오반니 란프란크 작품
오병이어의 기적(예수님 오천명을 먹이시다), 1593, 아브라함 블뢰메르트 작품
Feeding the Five Thousand (The Miracle of the Loaves and Fishes), by James Tissot

부활사건을 제외하고 예수님이 5,000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유일한 기적의 사건입니다. 분명 복음서 저자들은 이 사건을 중요한 기적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날 무리들을 먹이실 때 한 소년의 점심 도시락에서 빌려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시작하셨습니다(요6:9). 떡(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인 것은 참으로 기적적인 일이지만, 마태복음14:21절에 사용된 헬라어 용어는 남성을 지칭하며, 마태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라고 덧붙여 이 점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경 학자들은 그날 실제로 먹인 인원이 15,000~20,000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저녁이 다가오고 있고 외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보내려고 했습니다(마14:15). 그들은 사람들이 음식을 사고, 숙소를 찾기 위해 주변 마을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막6:3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14:16)는 더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 중 일부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안드레는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요6:9). 그러자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6:7절). 1데나리온은 당시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당시 인건비가 아주 열악했기 때문에 1데나리온으로 한 식구가 먹을 하루 끼니 정도의 값어치 정도였을 것입니다. 200 데나리온은 거의 노동자 한 사람의 7-8개월치의 월급에 해당됩니다. 

예수님은 떡과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마14:18). 그런 다음 예수님은 식사에 대해 감사하고 떡을 떼어 제자들로 하여금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무리 전체가 축사하신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요6:11) 주셨고, "다 배불리 먹게"(마14:20)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필요를 채우신 것이 아니라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둘 정도로 많은 음식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막6:43).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미 주어진 것을 주님께 가져오는 법을 배운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작은 기대치를 깨뜨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작은 것이 곧 큰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시간, 돈, 재능 등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고 기꺼이 희생적으로 삶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평범한 것들을 사용하여 특별한 것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자원이 하나님을 섬기기에는 너무 적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겸손한 사람을 데려다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1:27 참조).

빌립의 머릿속은 즉시 전체 프로젝트 비용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이 필요할지 재빨리 계산했고,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처럼 접근했기 때문에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접근 방식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노력을 우회하여 불가능한 일을 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스가랴 4:6)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해 백성들을 먹이신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능력을 이용하여 참석자 모두에게 식사를 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14:16)고 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제자들은 그들이 분배하는 모든 것에 대해 주님을 신뢰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받은 만큼만 줄 수 있었습니다. 빌립과 안드레,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은 음식을 나누어 주기 위해 주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자신의 문제가 하나님이 해결하시기에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요6:9의 "많은")을 상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는 우주만한 크기의 문제인 것 같지만 하나님에게는 먼지 만큼도 안되는 크기에 불과합니다. 분명 안드레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신자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쉽게 원하는 만큼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발생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원하실지 의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엘리사의 삶에는 그리스도의 기적에 대한 예표가 있습니다. 엘리사는 종에게 백 명이 먹을 양식이 충분하지 않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먹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왕4:42-43)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충분히 먹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먹고 남았"습니다(왕하4:44). 하나님과 똑같지 않나요?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부양하는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시132:15).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은사나 재능이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단순한 순종과 헌신의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롬12:1).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여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엡3:20).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영적인 축복을 넘치도록 아낌없이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시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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