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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제24장_말세의 징조②

by 적아소심 2025. 6. 24.

마태복음 24:15-31

 

가장 큰 환난(15-28; 13:14-23; 21:20-24)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9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1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로마 타이투스 장군
예루살렘 성전에서 돼지로 제사 드리는 로마 군인들

15절의 멸망의 가증한 것은 구약과 신약성경 모두에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신성한 공간,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는 중요한 사건이나 사물을 가리킵니다. 이 용어는 다니엘서에서 처음 등장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큰 고난의 시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미래의 환난과 관련하여 이 표현을 언급하셨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Abomination of desolation)"이라는 표현은 다니엘서, 특히 9, 11, 12장에서 유래합니다. 이 구절들은 예언자 다니엘이 외세의 지배 아래 있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받은 환상을 묘사합니다. 9:27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말씀을 배반한 후 발생할 멸망하게 하는 신성모독에 대해 언급합니다.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마찬가지로 단11:31은 성소를 더럽히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세력에 대해 언급합니다. (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가증한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을 말하고, "멸망"은 그 결과로 발생하는 공허함이나 파멸을 의미합니다. 이 두 단어는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고 예배를 방해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역사적으로 다니엘서에 나오는 멸망의 가증한 것은 기원전 2세기에 통치했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행위와 종종 연관됩니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B.C.215년경~B.C.164)B.C.175년부터 B.C.164년 사망할 때까지 셀레우코스 제국(the Seleucid Empire)의 왕이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예루살렘을 침략하고 유대교의 종교 관습을 금지했으며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그는 성소에 제우스 제단을 세우고 돼지를 제물로 바쳤는데, 이는 유대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마카베오상 1:54에 기록된 이 사건은 매일 드리는 제사를 중단시킨 신성모독에 대한 다니엘서의 묘사와 일치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다니엘 예언의 부분적인 성취로 봅니다. 이 신성모독은 엄청난 고통을 초래했고, 결국 성전을 복구한 마카베오 반란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은 이 단일 사건을 넘어서는 궁극적 종말의 사건을 시사합니다. 안티오쿠스의 행위는 가증스러운 행위의 구체적인 사례가 될 뿐입니다.

 

한편 A.D.1세기에 복음서 저자들은, A.D.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사건을 배경으로 이 구절을 다루었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담화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abomination of desolation)"을 포함시켰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저자들은 마가복음을 주요 자료로 사용하여 서로 평행되는 구절들을 기록했습니다. 24:15~16은 다니엘서에 대한 언급을 추가했고, 21:20~21은 로마 군대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21:21a)“ 모든 복음서에서 저자들은 미래의 종말론적(종말) 사건과 적그리스도의 활동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24:15와 막13:14에서 예수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을 언급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다니엘이 말한 이 표징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고 경고하십니다(16). 예루살렘 주변의 지형, 특히 북쪽의 산들은 이스라엘 역사 전반에 걸쳐 피난하는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산으로 도망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경고의 말씀을 얼마나 절실하게 하셨는지를 보면, 이 순간의 위험성이 더욱 부각됩니다. 당시 지붕은 평평했고 야외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낮은 지붕에서 쉽게 뛰어내리거나, 지붕에서 지붕으로 달려 도시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집에 내려가 소지품을 챙기는 대신 말입니다(17). 이제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먼저 성으로 달려가지 말라고 덧붙이십니다(18).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이 비유의 목적은 예고된 환란의 위험 정도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 당시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여성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 특히 임신 중이거나 아기를 돌보고 있을 때 산속으로 재빨리 달려가 숨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쟁, 포위, 박해, 기근과 같은 사건으로 식량 공급이 끊길 때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여성들은 특히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19절의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에서 화가 있으리로다는 헬라어(그리스어)우아이(οαί)’인데, 우아이(οαί)’는 독수리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고, 섬뜩하고 불길한 예감의 소리와 같은 의성어로써, 극심한 고통, 불쾌감, 또는 공포의 울부짖음을 표현하는 감탄사로 사용됩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영어로는 Alas! 우리 말로는 슬픔의 감탄사 아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우아이(οαί)는 대부분 피할 수 없는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종종 종말론적 맥락에서 화가 있으리로다, ‘우아이(οαί)’를 사용하셨습니다(24:19; 13:17).

 

20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도피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먼저, 겨울에는 유대 지역에 비가 많이 내려 도로와 계곡이 범람하여 산으로의 도피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께서 감람산 담화에서 유대인(제자들)을 대상으로 하셨고 이방인을 대상으로 하신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여행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 사도행전 1:12은 "안식일 여행"에 대해 다음과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약 800미터 떨어진 곳으로, 동쪽에 위치하며 기드론 골짜기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랍비들의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 여행은 약 2,000 규빗 (약 0.5마일, 거의 1km) 내에서 제한됩니다. 이는 랍비들이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에 여행하도록 허용한 "법적 거리"였습니다. 이 제한은 민수기 35:5에서 해석되고 적용된 출애굽기 16:29에 근거하여 도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 민수기 35:5 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쪽으로 이천 규빗, 남쪽으로 이천 규빗, 서쪽으로 이천 규빗, 북쪽으로 이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
  • 출애굽기 16:29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예수님은 정통 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라 안식일에 여행할 수 있는 거리에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만약 안식일에 가증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의 처소에서 떠나기를 꺼릴 것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구하기보다는 율법을 지키는 데 더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본질적으로 안식일에 멸망의 가증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데이비드 로버츠, 예루살렘의 포위와 멸망, 1850 [The Siege and Destruction of Jerusalem, by David Roberts (1850)]

15-20절에서 예수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도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겨울이나 안식일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21절부터 설명을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γρ)’, 왜냐하면(for)”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도망하라는 이 경고의 말씀이 왜 그토록 긴박한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하십니다. ‘왜냐하면’, 다가올 환난은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크고 많은 생명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21-22).

2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때는 언제를 가리킬까요? ‘그때에(τότε 토테; then)’는 시간을 표현하는 부사입니다. ‘그때는 그 시점 또는 그 시점 이후의 시점을 의미합니다. 예언서에서 "그때에"는 종종 사건의 순서를 묘사합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then)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어떤 시점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큰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요? 문맥상 독자가 경계해야 할 사건("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24:15 참조)은 분명히 거룩한 곳에 선 멸망의 가증한 것(24:15)입니다. 그 후에 역사상 가장 큰 고난과 환난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큰 환난(θλψις μεγάλη; great tribulation)’은 마24:21, 2:22, 7:14에 단 세 번만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7:14에서 헬라어로 "큰 환난(τς θλίψεως τς μεγάλης; great tribulation)"으로 묘사합니다. 덧붙여, 많은 주석가들은 다니엘의 70번째 이레의 7년 기간 전체를 "환난"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성경에는 이 7년 기간을 구체적으로 환난이라고 언급한 구절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역사적 문헌에 깊이 박혀 있어서 우리는 큰 환난이라는 용어를 7년 기간, 다니엘의 70번째 주간으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환난(θλψις; thlipsis; 틀립시스)‘는 동사 'θλίβω(thlibo)'에서 유래했으며, '으깨다, 누르다, 으깨다, 가두다, 압축하다, 다시 쥐어짜다'는 뜻으로, 원래 누군가에게 가해지는 순전한 물리적 압력을 의미했습니다. 틀립시스((θλψις; thlipsis)는 사소한 불편함이 아니라 진정한 고난을 가리키는 강력한 말입니다. 의학적으로 틀립시스(θλψις; thlipsis)는 맥박(압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틀립시스((θλψις; thlipsis)는 포도가 무게에 짓눌려 으깨지는 것처럼 서로 눌리는 것을 묘사합니다. 영국의 고대 법에 따르면, 고의로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가슴에 무거운 추를 얹어 압사시켜 죽였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의 '틀립시스'((θλψις; thlipsis)를 보여주는 섬뜩한 장면이었습니다. 따라서 '틀립시스(θλψις; thlipsis)'는 큰 환난(고난)을 의미하며, 예수님은 환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을 뜻하는 형용사 '메갈레(μεγάλη)'를 덧붙이셨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눅21:23("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을 근거로 마24:21A.D.70년에 성취되었다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누가복음의 구절(21:20-24)A.D.70년 예루살렘 멸망으로 분명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눅21:23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큰 환난(ἀνάγκη μεγάλη; great distress)은 마24:21의 헬라어 단어와 다르고, 예수님께서 묘사하신 환난의 모습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묘사와 다릅니다. 24:21과 막13:19은 모두 헬라어 '환난'(θλψις; thlipsis)을 사용하며, 두 구절 모두 전례 없는, 유례없는 환난의 시기를 묘사합니다. 이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마24:21과 막13:19에서 예수님께서 환난을 묘사하신 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24:15, 13:14)을 로마 군대로, 큰 환난을 전례 없는 환난의 시기로 해석하는 주석가들에게는 큰 걸림돌이 됩니다.

 

21:23큰 환난(ἀνάγκη μεγάλη; great distress)에서 anágkē"긴급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구부리거나 들어올린 팔"을 의미하는 angkos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의미는 필요성(necessity)으로서,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절실한 필요, 즉 절박한 상황을 말합니다. 누가복음에서의 anágkē(distess)는 시기적절한 도움, 즉 의무적인(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힘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일반적으로 극심한 고통이나 괴로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칠십인역에서 눅21:23의 헬라어 '환난(ἀνάγκη, 아낙케)주님의 날(1:15 참조)”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지만, 이스라엘의 유례없는, 전례 없는 환난을 묘사하는 데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물론 "주님의 날"이 큰 환난의 시기를 포함하지만, 요점은 칠십인역에서 헬라어 '틀립시스'가 다니엘 12:1-주석에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막13:19과 마24:21에서 묘사하신 것과 매우 유사한 묘사입니다. 따라서 선지자 다니엘은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Lxx, thlipsis, 12:1)"를 묘사합니다. 결론적으로, '틀립시스'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유례없는, 전례 없는 고난의 시기를 묘사하는 데 분명히 사용되었습니다. 7년 전체가 지상에서 엄청난 환난의 시기가 되겠지만, 대환난은 마지막 3년 반 동안이며, "멸망의 가증한 것"(24:15)이 놓이면서 시작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요한계시록, 특히 요한계시록 11:1-19:21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22절의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에서 그날들은 무슨 날들일까요?

 

바로 앞 마24:21, 24:19"그날들" 참조)을 볼 때, 큰 환난의 때, 즉 재림으로 끝나게 될 현시대, 즉 의의 시대(일명 천년왕국)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3.5(1,260= 42개월 = 한 때, 두 때, 반 때)의 날들입니다. 그날들은 구약과 신약의 여러 구절에 묘사된 것처럼 이스라엘(그리고 당시 살아 있던 모든 신자들)에게 3년 반 동안 전례 없는 고난과 환난이 가해지는 날들이 될 것입니다(7:21,25; 11:2, 12:6,14; 13:5,15 참조).

 

어떤 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이 A.D.70년의 성취와 양립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로마가 5개월 만에 그 도시를 점령함으로써 그 공포는 '단축'되었고, 그 도시의 기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ESV 스터디 바이블은 "24:21에 묘사된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환난은 A.D.70년에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이 구절이 A,D.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언급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라고 지적합니다.

 

22절의그날들이 감하지 아니하면(단축되지 아니하면)”한편으로는 이 표현은 큰 환난의 전례 없는 "소멸하는 맹렬함(consuming ferocity)"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묘사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분은 크신 자비로 큰 환난이 단 3년 반(1,260) 동안만 지속될 것이라고 선포하셨고, 단 하루도 더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날들이 단축되는 것에 대해서는 "만약"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날들은 단축될 것입니다. "그날들을 감하시리라(those days shall be shortened)“ , ”그날들이 단축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대환난이 3년 반보다 짧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갑자기 끝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후에 불법의 사람(또는 멸망의 아들 = 적그리스도/Antichrist; lawless one)이 나타날 것입니다(24:15, 살후2:3~4). 그러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실 것입니다(살후2:8). 하나님께서 자비롭지 않으셨다면 그 기간은 더 길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그 기간을 단축하실 것입니다.

루카 시뇨렐리(1450–1523), 적그리스도에게 속삭이는 악마, 1501년경 [Luca Signorelli(1450–1523), Antichrist with the devil, from the Deeds of the Antichrist, circa 1501]
12세기 Hortus deliciarum에서 발췌한 Herrad of Landsberg(1180년경)의 적그리스도(왕의 속성을 지닌 왼쪽 인물) [The Antichrist (the figure on the left, with the attributes of a king) by Herrad of Landsberg (about 1180), from the 12th-century Hortus deliciarum]

 

23-26절까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주요 요점이 제기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유일무이한 메시아, 곧 그리스도임을 확신시켜 주고 계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든 명백히 거짓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하고 틀림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거짓말에 속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스튜어트 베버는 "메시아가 지상의 한 장소에만 나타날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해준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분이 오시면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자연적으로 태어나 33년 동안 인간으로 살다가 오셨던 첫 번째 강림과는 달리, 인자의 강림(예수님은 이 칭호를 메시아적 의미를 온전히 담아 사용하셨습니다)은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에서도 볼 수 있는 번개와 같을 것입니다. 번개가 하늘을 가로질러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 순식간에 번쩍이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하고자 하셨지만(24:29-31), 이것만이 마지막 시대에 그분을 모든 사기꾼과 구별해 줄 것입니다. 그들은 한정된 장소에만 머물러 있는 단순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갑자기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게 오실 것이었으며, 한곳에 국한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sourced from “Bible Art”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빠르고, 갑작스럽고, 공개적으로(24:26"골방"과는 대조적으로 공개적으로) 눈에 보이고, 보편적이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날 숨어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인간, 심지어 그분의 가장 완강한 원수들에게도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께 속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놀라운 구원이 될 것이지만, 그분을 대적하고 저항했던 자들에게는 최후의 비극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예언되고 의심할 여지 없이 나타나실 때까지, 숨어 있는 자들은 그대로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후에는, 그분의 백성과 그분의 원수들은 마치 자리를 바꾸듯이 서로 자리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산과 동굴에 숨어 있던 자들은 자유와 축복으로 풀려날 것이며, 그들을 잡아두려던 자들과 살인자들은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가 인간과 사탄의 악한 진노를 대신하고 벌함에 따라 스스로 피난처를 찾을 것입니다.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ESV 스터디 바이블의 해석과 같이, 아마도 멀리 있는 사람들이 독수리들이 하늘 높이 맴도는 것을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심판의 재림도 눈에 보일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유사한 관점으로, 독수리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그분의 왕국을 거부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수많은 죽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고 알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자가 오는 것을 보리라(29-31; 13:24-27; 21:25-28)

29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리스도의 재림

29~31절과 병행하여 마13:24-27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 24 그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감람산 담화(강론)의 서두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던진 최초의 질문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3b)"였습니다. 예수님은 마24:23부터 이 질문에 답해 오셨습니다. 24:27에서 그분의 재림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제 당신께서 은밀하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일어나는 분명하고 공개적인 사건으로 오실 것이라는 이전 말씀(27)을 더욱 확장하십니다. 바로 그러한 영광스러운 재림이 마24:29-30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징조가 나타나면 사이비 과학자들, 천문학자들과 점성술사들은 그 징조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징조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 이사야 13:9~10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 스바냐 1:14~15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메시아, 즉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천체들의 초자연적인 움직임, 혹은 적어도 그 모습, 혹은 빛을 내는 능력의 움직임을 동반할 것입니다. 하늘의 이러한 징조들은 지상의 모든 사람이 보고, 메시아가 오심을 알 수 있도록 나타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징조 중 하나만 나타난다면, 일식이나 유성우로 변명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징조는 오직 하나님의 손으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것은 여러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장엄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땅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 군대가 감람산 근처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스가랴 14:4).

  • 스가랴 14: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 때에(And then)”그리고 나서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을 마24:29에 묘사된 대격변적인 우주적 징조들과 연결시키십니다. '그 때에(And then)'의 사용은 진행 과정을 나타냅니다. 먼저 우주적 징조, 그다음 오실 메시아! 우리 주님의 초림 때는 세례 요한이 그분의 오심를 알렸습니다. 재림 때는 우주적 징조들이 궁극의 징조인 메시아의 재림을 알릴 것입니다.

 

인자의 징조(the sign of the Son of man)”는 무슨 징조일까요? 예수님의 뒤 이은 말씀에 의하면 답은 명확합니다. 그 징조는 주님께서 친히 구름을 타고 권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징조 중의 징조는 하늘에 나타나실 인자, 즉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크리소스톰, 예루살렘의 키릴, 오리게네스와 같은 초기 교부들은 이 징조가 온 세상에 보이는 거대한 불타는 십자가로, 당시 세상을 뒤덮고 있던 완전한 어둠을 뚫고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학자들은 이것이 주님의 재림의 영광, 셰키나(Shekhinah; שְׁכִינָה)’라고 주장합니다. 베일을 벗으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실 때, 셰키나(dwelling or settling)의 영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징조는 단순히 그분의 영광만이 아닙니다. 하늘에 나타나실 인자는 바로 그리스도, 인자 자신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분의 재림의 최고이자 마지막 징조가 되실 것입니다. 세상의 불안한 가운데서 검은 어둠, 즉 육체적, 정서적, 영적인 어둠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하고 변함없는 영광과 의로움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대환난의 파괴적인 재앙이 비할 데 없듯이(21),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능의 이러한 나타남 또한 비할 데 없을 것입니다(맥아더 주석 참조).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12:10) 이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을 직접 목격하는 유대인들의 회심을 분명하게 예언한 것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 오셨을 때 그 "세대"에게 보여주셨던 표적과 유사합니다(8:12). 바리새인들이 당신의 권위에 대한 증거를 요구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세대, 그리고 표적을 구하는 모든 세대를 악하고 간음한 자로 규정하시고, 요나가 큰 물고기의 몸에서 초자연적으로 구출된 것(12:39, 40; 1:17 참조)으로 상징된 당신의 부활 외에는 다른 표적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아가 돌아오시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마치 우리가 그분을 믿었던 순간 그분이 우리 각자의 마음에 오셨을 때처럼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분을 위해 애통할 것입니다(12:10, 24:30, 1:7). 그분께서 오실 때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멸망될 것입니다(13:8). 회개하는 이스라엘, 곧 믿는 남은 자들은 자신들이 찔렀던 그분을 믿을 것이며,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입니다(11:26~27). 메시아께서 그들에게 "맑은 물을 뿌려" 그들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모든 더러움과 모든 우상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36:25, 9:24 참조). 그리고 새 마음을 주시고 속에 새 영을 넣으시며,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31:31~3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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