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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제22장②_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

by 적아소심 2024. 2. 13.

마태복음 22:15-22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의 共謀 (Council of the Pharisees and Herodians), after 알버트 로비다(Albert Robida)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자 협의체(council)를 만들어 상의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자와 매국노가 함께 공동의 적(敵인) 예수님을 죽이고자 협의체까지 구성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백성들의 존경과 지지를 빼앗길까 봐 두려웠을 것입니다.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대제사장들이 함께 상의하다 (1886-1894)
위 제임스 티소의 그림에서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의 상세 모습(in Detail)

15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말의 실수를 유발시켜서 함정에 빠뜨릴까 상의하였습니다. 여기서 상의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심불리온(συμβούλιον)'인데 이는 '결정, 의논, 상담, 계획'의 의미입니다. 이 '실불리온'이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8번이 나오는데 마태, 마가복음에서만 7번이 나오고 모두 바리새인 및 종교지도자들에 관해서만 사용되었습니다. 즉 복음서의 기자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돌이키기 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꼬투리 삼아 어찌든지 고소할 궁리만 하였고, 모여서 그러한 계획만을 꾸몄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사용된 이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극명하게 드러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마태 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심불리온; συμβούλιον)
  • 마태 22: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심불리온; συμβούλιον)
  • 마태 27: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심불리온; συμβούλιον)
  • 마태 27:7 의논한(심불리온; συμβούλιον)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 마태 28: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심불리온; συμβούλιον)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 마가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심불리온; συμβούλιον)
  • 마가 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심불리온; συμβούλιον)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 행 25: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심불리온; συμβούλιον)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논어(論語)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허물이라고 한다"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 자왈 과이불개 시위과의 / 논어 위령공편/論語 衛靈公篇)
  • "잘못하였거든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過則勿憚改 - 과즉물탄개 / 논어 학이편/論語 學而篇)
  • "소인은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일을) 꾸민다" (子夏曰, 小人之過也, 必文 - 자하왈 소인지과야는 필문이니라 / 論語 子張篇). 이는 곧 본문의 바리새인들을 꼭 집어 하는 말 같습니다.

채근담(菜根譚) 018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 "세상을 뒤덮는 공로도 '뽐낼 긍(矜)'자 하나를 당하지 못하고 하늘에 가득 찬 허물도 '뉘우칠 회(悔)'자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蓋世功勞, 當不得一箇矜字, 彌天罪過, 當不得一箇悔字 - 개세공로, 당부득일개긍자, 미천죄과, 당부득일개회자) 이는 곧 세상에 큰 공로를 세웠어도 자랑함으로 그 공로가 무색해지고, 하늘을 가득 채운 허물도 뉘우침으로 용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제임스 티소(1836-1902),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에 대해 음모를 꾸미다, 부루클린 박물관(뉴욕)

오른쪽에 검은 겉옷에 어두운 두건을 쓴 사람 3명이 헤롯 당원으로 보이고, 나머지는 바리새인들로 보입니다. 이들은 공원의 한쪽 구석에 보여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할까 심도있게 의논하고 있습니다.

 

15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비겁하게도 자신들이 직접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조사단을 구성하여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헤롯 당원들은 당시 유대를 다스리는 로마의 대리 통치자인 헤롯 왕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세리의 임무를 담당하여 세금을 징수했고, 로마 정책을 홍보하는 친로마적 성향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일제 강점기 때에 친일(親日)과 부일(扶日)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매국노로 인식되기까지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말로는 로마의 통치와 세금 징수를 반대하던 민족주의자라고 하면서 그의 제자들은 로마의 통치를 옹호하고 거기에 빌붙어서 세금을 징수하는 헤롯 당원과 함께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이렇게 전혀 반대 성향의 두 집단을 한 팀을 이루어 보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꼬투리를 잡기 위해 치밀한 올무를 던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세금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답하면 헤롯 당원들에게 빌미를 주게 되고, 긍정적으로 답변하면 바리새인들에게 빌미를 주기 때문에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그런 형세였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지도자들로서 백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통해 백성들에게 위로와 방향을 제시하기는커녕 민족의 배신자라고 치부하던 헤롯 당원들과 함께 정적(政敵)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지금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께 와서 "선생님이여!(Διδάσκαλε; 디다스칼레 Teacher)"라고 부릅니다. 바로 얼마 전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공격적으로 물었습니다.

  • 마태 21:23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네가 무슨 권위로...?"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던 그들이 지금은 백성들의 눈치도 보이고 해서 좀 더 지능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디다스칼로스(선생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랍비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높여주면서 자기들의 질문에 대해 가르쳐주기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라고 예수님을 엄청나게 띄웁니다. 이 말은 곧 참되시고 가르치시고 거리낌 없이 말씀하시는 랍비로서 우리의 질문에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눈치보지 말고 거리낌 없이답변하라고 사전에 복선을 깔아 놓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거나 존경해서가 아니라 단지 논쟁을 위한 수사학적 기법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일단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이런 말을 미리 함으로써 예수님이 대화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전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로서 참으로 악하고 못된 사람들입니다.

세금(인두세) 논쟁, 프랭크 짐머만(Frank Zimmerman)의 자료집에서, 공유 링크: flickr.com
세금(인두세) 논쟁, 프랭크 짐머만(Frank Zimmerman)의 자료집에서, 공유 링크: flickr.com
제임스 티소, “세금 낼 돈”의 상세 그림, (1886-94), 브루클린 뮤지엄(뉴욕)

18절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악함을 아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아셨다"는 말과 16절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에서 그들이 아는 것은 헬라어로 서로 다른 단어입니다. 그들이 말할 때 "우리가 아노니"에서 '안다'는 말은 '오이다멘(οδαμεν)'으로 '눈으로 보고 안다'는 말로 '정신적인 지각으로 연결되는 과정으로서의 안다'는 말입니다. 즉 영적이고 정신적인 앎으로 가기 위한 다리(bridge)가 되는 신체적 눈을 통해 보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 눈을 통해 아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적이고 정신적인 앎으로 넘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즉 물리적이고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비록 종교 지도자들이었지만 글을 통해 정보는 알았지만, 그 본질은 몰랐습니다. 그들은 다만 겉멋만 들어 아는체하고 사람들 앞에서 그럴 듯하게 말하며 행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본질에 맞게 살지도 못하고 또한 사람들도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한 악한 삯꾼들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셨다고 할 때 아신 것은 '그누스/γνος(기노스코/γινώσκω)'로써 '본질을 꿰뚫어 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그들이 안다는 말은 know로 번역했고, 예수님의 안다는 말은 perceive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헬라어식으로 말하면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외식하는 자들아!"입니다. 여기서 '외식하는 자'는 '휘포크리타이(ὑποκριταί; 기본형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 '마스크 아래의 연극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두 얼굴의 사람'의 뜻도 되고, '말을 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한자어로 '외식(外飾)'은 '바깥쪽을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연극 배우와 같이 권모술수의 사악한 얼굴에 두터운 가면을 쓰고 예수님 앞에 나왔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본심을 바로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깊은 속까지 다 보시고 아십니다.

  • 역대상 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 시편 33:13-15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 시편 44:20-21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 시편 139:2-3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 잠언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 잠언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 잠언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 예레미야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 예레미야 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 에스겔 11:5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 고린도전서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요한1서 3:19-20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19a)" 그러자 그들이 로마 동전인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습니다(19b).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20a)?"

서기 15-37년에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발행된 금화 동전

동전 앞면(왼쪽 사진)에는 황제의 얼굴과 그 주위에 “TI CAESAR DIVI AVG F AVGVTVS(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초기 로마 제국에서 권력의 변천사를 나타내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그 칭호는 티베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이자 첫 로마 황제를 신격화하면서 물려받은 통치권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전의 뒷면(오른쪽 사진)의 여성 인물은 티베리우스의 어머니이자 53년 동안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였던 리비아(Livia)로 추정됩니다. 리비아는 평화(PAX)를 위한 로마의 신(神)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녀 주변에 쓰여진 “PONTIF MAXIM(폰티프 맥심)”은 로마 황제들이 각각 가지고 있던 종교적인 최고의 권력을 나타내는 칭호입니다.

 

그들은 즉시 대답했습니다. “가이사의 것이니이다(21a). 위 사진의 로마 동전에서 보듯이 당시 로마 황제의 초상과 글이 박혀 있고, 뒷면에는 로마 황제가 최고의 종교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로마의 화폐 때문에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반발하였고, 그 세금을 징수하는 헤롯 당원들과도 반목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하실 때 그들은 대답을 하면서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인 자신들이 지금 헤롯 당원들과 함께 있다는 불길한 사실이 언뜻 뇌리에 스쳤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결정적인 대답이 그들의 귀에 울렸습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1b)" 마태 21, 22장의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지혜와 수사학적 논쟁 방식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답변으로 그들의 멘탈을 붕괴시켜 버렸습니다. 21b절의 말씀("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의 구조는 아주 정확하게 대구법의 형식으로 양쪽 무게중심이 똑같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적 무리들이 기대했던 대답과는 전혀 다른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은 답변으로 그들의 계략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은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지만(13:1-7), 예수님은 그들의 세상권력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함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헤롯 당원이나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22).

마에르텐 드 보스(Maerten de Vos; 1532-1603, 벨기에), "가이사(시이저)의 것은 가이사에게", 1602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세금 논쟁, 1612년 작품, 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로마의 동전을 잡고 "가이사(시이저)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English School 제작
작가 모름, "가이사(시이저)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18세기 작품, washed Pen Drawing

 

<묵상하기 1>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득권이 상실될 위기에 처합니다. 21장부터 대제사장들까지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위기의식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눈엣가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약 예언의 성취인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접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펼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잠식하는 정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보다 이 땅의 나라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런 마음가짐(mindsets)을 가지고 있을 때 예수님이 무엇을 하시든지 그 자체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들의 죄악된 삶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빛을 싫어하듯이 세상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싫어합니다. (물론 세상은 무늬만 수박인 그리스도인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여기서 '뱀같이 지혜롭고'에서 '프로니모이(φρόνιμοι; 프로니모스 φρόνιμος)'는 지혜롭다는 말도 있지만, '아주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어는 '모로스(μωρός; 어리석은, 둔한)', 또는 '아프론(ἄφρων; unwise, inconsiderate, simple, foolish)'이 있습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게'에서 순결하다는 말은 '아케라이오스(ἀκέραιος)'에서 온 말인데, '섞이지 않은(not mixed)', ' 없는(blameless)', '() 없는(harmless)', '단순한(simple, unsophisticated)', '순수한(pure)'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영리하고 똑똑하게 살면서, 세상과 섞이지 않고 순수하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뜻과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이는 온전히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능히 성령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5:25).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께서 능히 우리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심을 담대하게 말합니다.

  •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 에베소서 5:15-1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묵상하기 2>

본문 말씀에서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세금 논쟁이 벌어졌지만, 사실 핵심은 세금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나라나 세금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분의 메시지 핵심은 하나님 나라(천국)였습니다. 예수님의 핵심 사역은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나라에 소속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들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진정한 소망은 이 땅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돌아간 본향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통치하시며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에도 있으며, 우리 가정에도 있으며, 우리 직장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은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의 소속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의 통치를 받고 있는지 습관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거기에 속해 있으면서 그 소속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날마다 쌓여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여정이 하루 이틀 쌓이면서 우리의 나그네 인생의 연수는 그렇게 채워져 갈 것입니다. 그러할 때 내가 주 안에, 주가 내 안에 거하시면서 신비로운 삶의 모습과 열매들이 내 삶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샬롬의 삶은 차마 입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이 잔잔하고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 요한1서 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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