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제22장➂_부활 논쟁, 가장 큰 계명,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

by 적아소심 2024. 9. 13.

마태복음 22:23-46

 

부활 논쟁(마 22:23-33; 12:18-27; 20:27-40)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가장 큰 계명(마 22:34-40; 12:28-34; 10:25-28)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마 22:41-46; 12:35-37; 20:41-44)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제임스 티소(1836-1902, 프랑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다 [James Tissot (1836–1902, France), The Pharisees Question Jesus, 1886-1894]

 

제임스 티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인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오다 [James Tissot (1836–1902, France), The Pharisees and the Saduccees Come to Tempt Jesus, 1886-1894]

 

부활 논쟁(마 22:23-33;  12:18-27;  20:27-40)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율법에 정통한 자들이고, 또한 그에 대한 자체적인 해답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독의 후예로서 율법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집행권까지 관여할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꼬투리를 잡아서 고소하고자 하였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그들의 질문 자체에 몰입하여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대답하시면, 그 꼬투리를 잡아 혼탁한 율법 논쟁에 끌어들여 예수님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예수님을 고소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지만, 그 마음은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고 권무술수가 가득찬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질문 자체에는 일곱 형제가 한 여인을 두고 계속 아내로 삼았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전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율법의 정신은 내팽개치고, 다만 잘못된 전제의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잘못된 대답을 유도하는 사악한 검사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백성을 다스리고, 또한 율법에 따라 정당하게 재판해야 했지만, 율법을 단지 눈엣가시 같은 정적(政敵)을 제거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에게서 자비와 사랑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형이 후손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자녀를 낳게 하여 상속자로 세우는 제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의 핵심인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복과 은혜를 담은 기업을 무르는 제도입니다(신명기 25:5-10). 그리고 한편으로는 과부가 된 여인에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사두개인들이 이러한 제도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이러한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 조문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사악한 질문의 함정을 바로 아시고, 오히려 그들이 질문의 전제로 내세운 부활이라는 말을 통해서 그들 내면의 신앙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 주셨습니다.

 

29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오해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오해하다'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서 'Πλανσθε(플라낫쎄/기본형 πλανάω 플라나오)'인데, '플라나오(πλανάω)'는 '길을 잃다', '진로를 이탈하다'; '올바른 길(회로, 코스)에서 벗어나다', '오류에 빠져 헤매다', '방황하다'; '(수동태) 잘못 인도되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헛다리 짚었다는 것이고, 똥볼을 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이 제시한 사례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그들 내면의 불신앙(부활을 알지 못함)과 또 한편으로 율법에 흐르는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율법의 정신을 모름) 그들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먼저 드러내셨습니다. 부활 후의 삶이 천사와 같다는 말씀(이 말씀에 대한 narrative는 생략합니다)과 더불어 출애굽기 3:6a"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는 말씀을 인용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이 한마디 말씀으로 그들의 불신앙, 그리고 율법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완전히 KO패 당했습니다.

 

회남자(淮南子)의 설산훈(說山訓)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욕멸적이주설중(欲滅迹而走雪中)" 즉 "자취를 없애려고 눈 속을 달린다"라는 말입니다. , 목적을 숨기기 위해 딴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악한 의도를 숨기고 예수님에게 율법에 관한 질문을 하였지만, 모든 인생의 깊은 속마음까지 아시는 우리 주님께 그들의 불신앙과 위선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보다 더 위선적이었습니다.

 

잠언 20:27절에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원래는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사람의 호흡(니쉬마트)라는 뜻이 더 강한데, 여호와의 등불은 사람의 호흡처럼 사람의 깊은 속을 모두 살피신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속을 다 들여다보시는 분이십니다. 이 주님 앞에서 아무도 속일 수 없습니다.

 

가장 큰 계명(22:34-40; 12:28-34; 10:25-28)

 

사두개인들이 완전히 KO되어 퇴장하자 다음 선수들이 등장합니다. 당시 그나마 경건한 종교생활(?)의 명맥을 이어간다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의 역공에 당황하여 물러가자 이번에 바리새인들이 다시 한번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시도를 합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36)" 이 질문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또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입니까?"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서기관들은 긍정적인 계명이 인체의 지체 수만큼 248, 부정적인 계명이 일 년의 날짜 수만큼 365개 있다고 말했습니다. 613, 십계명의 글자 수입니다. 그들은 이 중 일부는 가볍고 일부는 무겁다고 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더 큰 계명과 더 작은 계명(greater and smaller)"으로 나누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옷의 술에 대한 법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탁을 하지 않는 것이 살인만큼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 번째 계명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질문을 한 것은 이런 종류의 구별을 염두에 두고 한 것입니다. 그들의 질문은 어느 계명이 가장 큰가에 대한 선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명을 위대한 계명으로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을 알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진정한 목적이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삶을 살도록 율법을 주신 것인데, 그들은 율법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삶을 살기보다 율법 조문을 윤리적 지식으로 격하시켜 치열하게 논쟁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논쟁의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하여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이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거침이 없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37, 38a)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strength)’을 추가하였습니다. 신명기 6:5절에서는 이 단어가 마음‘, ’‘, ’입니다. 마음(heart)은 감정, 의지, 목적을 포함합니다. 목숨(soul)은 생명이나 영적 능력을, (mind)은 지성, 사고 능력을 포함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전인격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래 비교표 참조)

마태복음 22:37 신명기 6:5
마음 카르디아(καρδίᾳ) - 마음, 심장의 뜻으로 영어 성경에서는 heart로 번역 마음 레바베카(לְבָבְךָ֥) / 기본형 레바브(לֵבָב)’ - inner man, mind, heart - 구약에서 252번 사용되어, 215heart로 번역하고, 8회는 mind로 그 외 courage, desire, thought 등으로 번역됨
목숨 푸쉬케(ψυχῇ) - 생명, 영혼의 뜻으로 영어 성경에서는 soul로 번역 니프쉐카(נַפְשְׁךָ֖) / 기본형 네페쉬(נֶפֶשׁ)’ - 구약성경에서 754회 사용되었고, 그중에서 soul(s)251, life의 뜻으로 184, person(s)88회 번역됨
개역개정 창세기2:7네페쉬라는 단어를 생령이라는 말로 번역한 것은 적절치 않음. ‘생령은 육체가 없는 영적인 존재로 오해하기 쉬움. ‘네페쉬는 다른 짐승에게도 똑같이 쓰인 단어로, 살아있는 존재, 생명체, 몸과 혼을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생명체를 말함
디아노이아(διανοίᾳ) - 철저히 "마음(mind)을 사용하다"는 의미. 헬라어 (누스noús, "마음, 이성")에서 유래 -> 균형 잡힌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문제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이는 것; 완전한 이성(=비판적 사고), 변증적 사고를 의미함 메오데카(מְאֹדֶֽךָ) / 기본형 메오드(מְאֹד)’ - muchness, force, abundance; 구약성경에서 300회 사용되었는데, very의 의미로 142, great(ly)의 의미로 70, exceeding(ly)의 의미로 18, highly 4, utterly 4회 등으로 번역됨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39-40)"

 

이 말씀은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말씀과 같습니다. 또한 마태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말씀과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말씀과 모두 비슷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율법에 대한 대답은 율법 학자가 묻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전체 율법의 본질을 알려주고자 추가적으로 답변하신 것입니다. 마가는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12:31b)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40)" - 마태복음 5:17, 7:12에서처럼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계시 전체를 나타내기 위해 상호 결합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위대한 계명은 모든 계명의 근원이 됩니다. 나머지 율법은 이 근원적 율법을 확장하고 적용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바리새인들의 열렬한 동의와 우리 주님께서 그들을 칭찬하신 것은 마가복음 12:32-34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22:41-46; 12:35-37; 20:41-44)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역으로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42a)" 그러자 그들도 즉시 대답합니다. "다윗의 자손이니이다(42b)"

 

예수님의 질문과 바리새인의 답변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바로 직전 군중들이 호산나를 외치는 가운데서 언급되었던 것입니다(21:9, 15). "다윗의 자손"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충분히 계시가 되어 그들은 언제든지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통렬한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43-44절)"

 

예수님께서 인용하시는 시편의 말씀은 110편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우리가 시편 110편을 읽어봐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시의 주제는 다윗 가문의 지상의 왕이 아니라 나중에 오실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이 말씀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사도행전 2:34, 골로새서 3:1절에서 강조하여 인정합니다.

  • 사도행전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 골로새서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리고 히브리서의 논증에서 이 구절은 모든 구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다윗은 그를 자신의 초월자(Superior), (Lord), 주인(Master), 율법수여자(Lawgiver)라고 부르며 그에게 순종할 의지를 표현합니다. 메시아가 다른 사람들이 부모에게서 내려온 것처럼 혈통적으로 다윗의 후손일 뿐이라면, 다윗이 글을 쓸 때 그를 어떻게 자신의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태초부터 계셨던 분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그리스도요 메시야로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단순히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그리스도시요 메시야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예수님을 얽어매려 하였으나 도리어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그 밑바닥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부여하신 분입니다. 율법의 의미와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이 율법이 얽매임이 아니라 도리어 함께 살아감의 증거입니다. 율법은 남을 판단하고 시험하기 위함이 아닌,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하는 규범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은 부활의 주인이십니다. 또한 율법의 주인이시오. 율법의 수여자가 되십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메시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 갈라디아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