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T01_마태복음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마태복음 제21장⑤_포도원 농부 비유

by 적아소심 2023. 12. 24.

마태복음 21:33-46

 

포도원 농부 비유(12:1-12; 20:9-19)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마가복음 12:1-12 누가복음 20:9-19
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아드리앵 콜라르트, 한스 볼의 작품을 판화로 제작,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1585년 Engraving by Adriaen Collaert, After Hans Bol, The Parable of the Wicked Husbandmen (Taurus), 158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아벨 그리머(1570-1619), 악한 소작인의 비유 (Abel GRIMMER (1570-1619), The Parable of the Wicked Tenants)

 

예수님은 33a절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까지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처럼 강하게 명령형으로 말씀하신 적이 별로 없었는데, 본문에서는 당시 최고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강하게 명령문으로 "들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찾아와 논쟁을 벌였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권위의 근거(21:23-27)' 및 '두 아들 비유(21:28-32)'를 통해 교훈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신앙과 뉘우침 없는 모습을 보시고, 더 강하게 책망하시며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이러한 어법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24)"라는 반문으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셨고, 반성이 없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28)"라는 책망의 의미를 담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본문에서는 아주 강하게 명령법으로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말씀하심으로 꼭 들어야 함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본문 이하의 비유는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나(12:1-12; 20:9-19) 유독 유대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마태만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죄악을 보다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화법을 사용하여 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비유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33b절을 보면 주인은 포도원을 준비합니다.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There was a householder who planted a vineyard, and set a hedge around it, and dug a wine press in it, and built a tower, and let it out to tenants, and went into another country. RSV)

 

한 문장에 동사가 6개나 나옵니다. 그런 것으로 볼 때 주인은 무척 active하고, 부지런하면서 실행력이 강하고, 성실하고 한편으로 포도원을 포도원답게 만드는 섬세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즉시 소작인들에게 그것을 맡기고 외국에 갈 정도로 자기 사람들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심어 놓은 포도나무가 열매가 맺기까지 세를 일절 받지 않을 정도로 넉넉하고 관대합니다.

 

34절에서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라는 멘트를 통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음을 의미합니다. 어린 포도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3~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한편, 마태는 마가와 누가가 단지 "때가 이르매"로 기록한 것과(12:2; 20:10) 달리 "열매를 거둘 때"가 되었다고 함으로써 포도원 주인이 소작 농부들에게 종을 보낸 시점을 정확하게 적시하였습니다. 또한 "그 열매를 받으려고"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열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열매'라는 단어를 4번이나 사용함으로써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신앙의 실제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인은 수확의 시기에 얼마의 열매()를 받기 위해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 농부들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아래 그림들을 통해 본문 내용을 숙고한 후에 계속 이어갑니다.)

아우구스틴 허쉬보겔,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1549 (Augustin Hirschvogel, The Parable of the Wicked Husbandmen, 1549)
마르텐 반 발켄보르흐 (1535-1612),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1580-1590년 사이 [Marten van Valckenborch(1535-1612), Parable of the wicked husbandmen. between 1580 and 1590, Kunsthistorisches Museum(Vienna)]

 

위 그림은 플랑드르 르네상스 화가인 마르텐 반 발켄보르흐의 작품입니다. 한 지주가 심은 무성한 녹색 포도밭이 시각적으로 소개됩니다.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웠습니다(33a)." 그림의 왼쪽 상단에 묘사된 것처럼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다(33b)"고 합니다. 추수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가을과 함께 풍성한 농산물이 수확되었습니다. 그러나 악한 포도원 농부들(소작인들)은 지주에게 정당한 몫을 주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악한 소작인들을 처벌하기 위해 먼저 무장한 자신의 군대를 보냈어야 했습니다. 이미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알고 있기에 신속하게 사건을 수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비롭게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그는 아들에게 '그들이 자신을 존중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들을 보냅니다.

 

장면이 시각적으로 전경에서 배경으로 내려오면서 이야기는 최악으로 진행됩니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는 얕은 기복과 바위 지형 속에 땅 주인과 아들이 서 있습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옷을 입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행용 신발을 신고 모자를 들고 있는 아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출발을 준비합니다.

마르텐 반 발켄보르흐 (1535-1612),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1580-1590년 (위 그림의 상세 그림)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구불구불한 길이 포도밭 즙짜는 틀이 있는 공장으로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경사면을 두르고 있습니다 빈티지한 풍경이 대지를 가득 채웁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여인들과 경사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도를 따고 있고, 포도를 등에 지고 길을 따라 내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크게 보입니다. 오른쪽 하단에서는 농부들이 압착하고, 와인 통에 와인을 채우고 밀봉하는 모습이 조그맣게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오른쪽 하단 작업장에 들어가는 문 앞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포도원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알아보고 그를 죽이는 장면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이 사람이 후계자다. 우리가 그를 죽이면 유산은 우리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서 보듯이 그들은 아들을 붙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입니다(39절). 마가복음 12:8에서는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다"고 말합니다.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농부들의 죄만큼이나 죽임 당한 주인의 아들, 의로운 아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포도원 '밖'에서 살해당한 주인의 아들은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비유(우화)입니다.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신성함과 세속적인 두 가지 현실을 제시합니다. 이 평행적인 현실은 우리가 언뜻 발견하기 어렵게 상호 작용하지만 묘사 방식이 다릅니다. 그로테스크한 복장을 한 플랑드르 농부들과 비교하여 '성스러운' 주인과 아들의 몸짓, 자세, 양식화된 이탈리아식 태도가 그렇습니다. 작가는 청중이 그림을 전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작은 Part들을 잘 관찰하도록 안내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그림에서 빨강, 파랑, 초록의 세 가지 중요한 색을 사용합니다. 빨간색은 피를, 파란색은 물, 녹색은 희망을 의미합니다. 희망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로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오직 모퉁이돌인 그리스도 안에서만 세워졌습니다. 포도나무를 적신 피를 통해 구원의 수확을 맺게 되었습니다.

도메니코 페티,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1620년, 영국 맨체스터 큐리어 미술관 (Domenico Fetti, Parable of the Wicked Husbandmen, 1620, Currier Museum of Art in Manchester)
얀 루이켄(1703-1762), 바우어 성경에서의 악한 농부들 [Jan Luyken(1703-1762), The Wicked Husbandmen from the Bowyer Bible, 19th century]
얀 루이켄(1703-1762),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Jan Luyken(1703-1762), Gelijkenis van de pachters van de wijngaard]
존 에버렛 밀레이 경의 그림을 달지엘 형제가 판화로 제작(영국), 악한 포도원 농부들(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 1864년 [After Sir John Everett Millais British, Engraver Dalziel Brothers British, The Wicked Husbandmen (The Parables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1864]

 

존 에버렛 밀레이 경이 그린 그림으로 포도원 소작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포도원 밖에 내던져진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적 반항아들의 모임인 Pre-Raphaelite Brotherhood(프리-라파엘라이트 브라더후드;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의 유파인데 우리말로 ’라파엘 전파(前派)‘라고 번역함 - 누가 번역했는지...-.-;)의 이상(理想)은 세밀한 자연주의와 현실적인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당시 대부분의 종교 예술과는 다른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Pre-Raphaelite Brotherhood‘는 1848년에 존 에버렛 밀레이, 윌리엄 홀먼 헌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 영국의 화가들이 결성한 개혁적인 문예 유파로,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은 매너리즘의 화가들이 수용했던 기계적인 예술 접근을 거부하고,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화풍을 되살리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습니다. 초창기 창립 멤버인 존 에버렛 밀레이를 위시한 Pre-Raphaelites는 1400년대 이탈리아 예술의 강렬한 색감, 복합적인 구성과 풍부한 디테일로의 회귀를 추구했으며 영국 비평가 존 러스킨의 종교적인 바탕의 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임스 티소,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James Tissot, The Parable of the Wicked Tenants, Matthew 21:33-46)

 

주인의 아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후 포도원 밖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모습입니다. 얼마나 참혹하게 당했는지 얼굴은 피투성이고, 온 몸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고, 왼쪽 손목은 부러져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받아야 할 형벌인데, 그것을 아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

 

위 그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도원 농부들은 주인과의 계약을 팽개치고 오히려 주인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심하게 때리고 죽이거나 돌로 쳤습니다. 누가는 죽였다는 말은 사용하지 않고 심히 때리고 능욕한 후에 돌려보냈다고 기록합니다. 주인이 종들을 보내고 소작 농민들이 이에 대적한 상황을 복음서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행 순서 마태복음 21:34-39 마가복음 12:2-8 누가복음 20:10-15
1차 파송과
결과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34b) 한 종을 보내니 (2b)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10c)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5)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3)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0d)
2차 파송과
결과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36a)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4a)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11a)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6b)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4b)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11b)
3차 파송과
결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7) 또 다른 종을 보내니 (5a)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12a)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39) 그들이 그를 죽이고(5b)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12b)
4차 파송과
결과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5c)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 하리라 하였더니 (13)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15a)
5차 파송과
결과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6)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8)

 

마태는 종들을 두 번 보내고 세 번째에 자기 아들을 보냈다고 하였고, 마가는 종들을 네 번째 또는 그 이상을 보낸 후에 아들을 보냈다고 하였으며, 누가는 세 번째까지 종들을 보내고 네 번째에 아들을 보냈다고 기록합니다. 결과적으로 주인은 계속 종들을 보내고, 마지막에는 아들까지 보내었지만 결국은 소작 농민들의 반역으로 아들까지 죽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끝나게 됩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작 농부들이 왜 그렇게 주인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그토록 세를 주는 것을 거부하였을까요? 그리고 왜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을까요?

 

우리는 본문만을 가지고는 소작 농부들이 주인에게 저항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인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 모의하는 장면을 통해서 그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반란을 통해 주인의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포도원
농부들의 악한 의도
마태복음 21:38 마가복음 12:7 누가복음 20:14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그들은 주인이 없는 동안 포도원을 경작하면서 극상품의 포도나무로 가득 차고, 최신식 설비를 갖춘 포도원이 탐났을 것입니다. 그들은 당시 로마의 민법상 주인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사망할 경우, 그 토지의 소유는 소작농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를 받으러 온 종을 때리거나 죽이고, 나머지는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반란 또는 반역의 모습을 보였는데, 다음에도 종들만 오고 주인은 오지 않는 상황을 통해 주인에게 무슨 심각한 변고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나중에는 주인이 아닌 아들이 온 것을 보고 주인에게 변고가 생겼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속자인 아들마저 죽인다면 그 포도원은 자기들의 소유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탐욕과 반역은 결국 아들을 무참하게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욕심은 무서운 죄를 잉태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1:15).

 

여기서 사실 비유는 끝납니다. 너무나 비극적이고 허망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렇게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된 것을 다분히 주인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분명 주인은 소작 농부들의 저항과 반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조기에 수습하였다면 비극적인 결말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은 사실 아들을 보내기까지 계속 인내하며 심사숙고했습니다. 37절의 '후에'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스테리온 데(ὕστερον δὲ)'인데 이는 '좀 더 늦게(more lately)', '그 이후에(afterward)' 또는 '마침내(at the last of all)'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무튼 아들을 보내기까지는 이전보다 시간이 더 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은 왜 포도원 농부(소작농)들의 만행을 지켜보기만 했을까요? 결단력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우물쭈물하다가 시간이 놓쳐서? 아니면 포도원이 망쳐질까봐? 바로 이어지는 40절 예수님의 질문에 의하면 결국 주인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이 죽기까지 인내하며 참고 기다렸다는 것은 주인에게 뭔가 절박하고도 특별한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은 비유의 내용 자체 내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비유에 대한 설명에서 비로소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우리는 주인이 그렇게 인내하며 기다린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비유를 마치신 후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특히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아래 표와 같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 비유가 자신들을 묘사한 것도 모르고 정곡을 찌르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래 예수님의 질문과 청중들의 답변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 설명을 살펴보면,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주인의 종들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그리고 포도원 농부는 바로 종교 지도자들을 묘사한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비유 설명 마태복음 21:40-46 마가복음 12:9-12 누가복음 20:15-19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과 대답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0)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9a)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5b)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1)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9b, 예수님이 대답하심)
(예수님 대답)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백성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6)
예수님의 비유 해석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2-44)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0-11)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17-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반응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45-46)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12)  

 

위 비유를 우화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은 종교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게 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행자지(自行自止)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어 돌이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도록 하였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을 때리고 쫓아 보내고, 심지어 잔인하게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짧은 비유 하나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42절에서 시편 118:22-23을 인용하심으로써 자신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비록 버림을 받지만 우리 인생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되실 것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42)" (Jesus said to them, "Have you never read in the scriptures: ‘The very stone which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head of the corner; this was the Lord’s doing, and it is marvelous in our eyes?")

 

여기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란 말씀에서 '버린'은 '아페도키마산(ἀπεδοκίμασαν)'으로 '아포도키마조(ἀποδοκιμάζω)'라는 말에서 왔는데, 문자적 의미로는 '자세히 검사하여 탈락시키다' 즉 '거부하다'란 뜻을 나타냅니다. (KJVRSV 등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는 'rejected'로 번역하였습니다) 특히 이 단어는 예수님의 수난 예언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데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8:31; 9:22; 17:25).

 

한편, '건축자'는 '집을 짓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본문에서는 스스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자들이라 자부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약의 시편을 인용하여 건축자들이 집을 세울 때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에 합당하지 않은 돌들을 버리듯이 악한 농부들로 비유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거부하며 배척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로 이러한 지적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로부터 철저하게 거부되어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게 됩니다.

 

그러나 43절에서 예수님은 결국에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들이 그것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건축자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빼앗기고(ἀρθήσεται)'는 '들어 올리다(lift up)'라는 뜻을 가진 '아이로(αρω)'의 미래 수동태입니다. 즉 그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 나라 또는 선민으로서의 특권이 장차 하늘로 다시 들어 올려지며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수동태이므로 주체는 하나님으로서 그들의 모든 특권을 다시 하늘로 들어 올려 가져가신다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말 성경에서는 그것을 열매 맺는 백성들이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받는다'라는 말은 '주다'라는 뜻의 '디도미(δίδωμι)'의 미래 수동태인 '도쎄세타이(δοθήσεται)'로써, 하나님이 그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배척한 유대 종교 지도자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박탈당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하나님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맞은 이방인들에게로 그 권리가 넘어갈 것을 나타냅니다.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종교 지도자들을 겨냥한 세 가지 비유 중 두 번째 비유인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음을 예시하는 예언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이스라엘의 심판이라는 주제와 하나님의 나라가 다른 백성에게 옮겨진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급진적이고 충격적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메시지를 거부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든 특권이 박탈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즉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이루어지는 교회로 향하게 됩니다.

 

45, 46절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였으나 무리를 무서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쫄보같은 삶인가요?

 

마태복음 전체적으로 중요한 key word 중의 하나는 '열매'입니다. 또한 예수님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본문에서의 비유도 열매 맺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열매 맺는 사람에게 넘겨진다는 결론으로 맺어집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열매 맺는 삶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자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통치에 맡길 때, 우리는 진정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헛생각, 욕심, 정욕, 자랑, 열등감, 시기와 질투, 분노, 우울증 등으로 인하여 고통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영원히 우리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녀로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기에 결국에는 승리하게 될 것이며, 그 나라 안에서 잠시의 평강과 안식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이기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통치는 강력한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조명탄같이 효력이 오래지 못할지라도, 그 조명탄이 우리의 길을 밝히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조금씩 맛보며 가다가 결국은 영원히 해같이 빛나는 주님의 나라에 도달할 것입니다.

 

, 주님! 제가 잠시의 고난이나 환난이나 장애물에 낙심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아니 낙심하더라도 다시 곧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내밀어 잡아주신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따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