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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1_창세기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창세기 32장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하다

by 적아소심 2025. 2. 13.

창세기 32:1-32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하다(1-12)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늘 왕의 주인을 송축하나이다", 1550년대 러시아의 아이콘 Blessed Be the Host of the King of Heaven, a Russian icon from the 1550s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2), 출처: Bible Art

야곱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중재로 삼촌 라반과의 위험한 순간의 위기를 넘기고 이제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집에 가까워지자 그는 수많은 천사들을 만났고, 그는 이를 하나님의 보호의 은혜로 인식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그는 천사를 만난 장소를 "두 진영"을 의미하는 "마하나임"이라고 명명하게 되었으며, 이는 천사들의 진영과 자신의 진영을 의미합니다.

 

2절 말씀은 영적 상징이 풍부하고 오늘날 우리의 삶과 관련된 몇 가지 주제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중심 주제 중 하나는 하나님의 보호와 개입입니다. 야곱이 천사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인식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인식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인식을 의미합니다. 이 주제는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하고 어려움과 불확실한 시기에 그분의 임재를 구하도록 격려합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보호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존재하며 뒤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집으로 가까이 갈수록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두렵겠습니까? 라반과의 문제는 에서와의 문제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하기까지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의 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놀라운 징조를 보내셨습니다.

  • 창세기 32:1-2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은 벧엘에서 꿈에서 천사들이 하늘에 이르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그 곳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28:17-19). 여기서 그는 천사들을 보고 “이곳은 하나님의 진영이로다!”라고 외칩니다. (32:2). 벧엘에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으셨습니다(28:15).

 

아내와 자녀, 종들과 가축으로 이루어진 야곱의 작은 장막은 근처에 있는 하나님의 천사 군대의 장막과 합께 합니다. 야곱이 움직일 때 천사의 군대도 함께 움직이며 그를 따라다니며 어떤 해로부터도 그를 보호합니다. 라반이 야곱을 위협하기 위해 그의 무리를 범위 내로 두었을 때, 하나님은 엄중한 경고를 하셨고(31:24, 29, 42) 라반은 이에 순종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진영이 하나님의 진영에 의해 보호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을 히브리어로 두 진영이라는 뜻의 마하나임이라고 명명한 것입니다.

벧엘(사진)
야곱의 여정과 벧엘의 돌기둥(Jacob's Journey and the Pillar of Bethel), 세바스티앙 부르동(Sébastien Bourdon; 프랑스 화가, 1616-1671), 이전에는 니콜라스 베르헴(Nicolaes Berchem; 네덜란드, 1620-1683)의 작품으로 여겨짐, National Inventory of Continental European Paintings Museum, Bristol City Museum and Art Gallery, 1640년 작품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이 에서를 피해 메소포타미아 하란으로 여행을 가는 동안 천사들이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그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웠습니다. 이제 야곱은 돌아오는 길에 그 자리에 제단을 쌓았고, 그 이름을 '베델(하나님의 집)'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그림은 푸생이 부르동에게 영향의 끼친 중요한 작품으로 봅니다.

제임스 티소(James Tisso), 에서가 오는 것을 보고 있는 야곱 (Jacob Sees Esau Coming to Meet Him, by James Tissot)

3-21절은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보내신 가나안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에서와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꼼꼼하게 준비합니다.

 

먼저, 야곱은 사자들을 앞서 보냅니다. (3-8)

 

야곱은 갑자기 에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도록 미리 사자들을 보냅니다(3).

  • 창세기 32:4-5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사자들은 에서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전달하면서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1) 화평을 원함 - 야곱은 삼촌 라반과 함께 20년 동안 함께 지내다가 이제서야 집으로 돌아갑니다. 야곱은 자신의 과거 행동이 에서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으며, 어떻게든 에서보다 더 많은 이점을 얻기 위해 에서가 모르는 사이에 몰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2) 풍부한 재물 - 야곱은 부자가 되어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에서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으며 에서의 소유물에 위협을 가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에서가 받을 상속의 두 배인 장자권 상속을 행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야곱은 이미 장자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부유합니다. 그리고 그는 비겁하게 몰래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형 에서와 나눌 수 있는 충분한 재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3) 겸손함 - 야곱은 겸손하게 옵니다. 그는 종들에게 형 에서를 그의 주, 그의 상관으로 부르라고 지시합니다. 야곱은 평생 에서보다 더 높은 주인이 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는 에서를 속여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고,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속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에서를 자신의 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는 형식적인 예의와 존중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존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치유 - 야곱은 에서의 호의를 구하고 그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의 무장단(武裝團)의 위협보다도 훨씬 더 걱정스러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형 에서에게 보냈던 사자들은 보고서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 창세기 32: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와 복수로부터 잠시 떠나기 위해 하란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잠시“20이라는 세월이 되었고, 야곱은 라반 밑에서 그 세월을 온전히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4명의 아내와, 많은 자식과 재산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손해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20년 동안 에서는 야곱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에서는 오히려 야곱에 대한 원한을 키워왔을 것입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였습니다(32:7). 야곱은 에서의 공격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신의 진영을 두 떼로 나눕니다(32:8).

 

그는 마하나임의 하나님의 진영을 보았지만, 두려움 앞에서 모든 사고가 마비되어 담대하게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두렵고 괴로운 인생의 실존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야곱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믿음과 소망을 외치지만, 정작 인생의 위기 앞에서는 이론적인 믿음(믿음이라기 보다는 자꾸 들어서 신념화된 것으로 믿음으로 혼돈한 것들)의 실체는 여지없이 박살이 나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옹색한 삶의 모습, 그것은 나이가 들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한없이 연약한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산을 옮기는 믿음이 내 마음에 충만하게 될까요?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백부장의 믿음과 같이 될 수 있을까요?

구스타브 도레, 야곱의 기도 (Gustave Dore, The Prayer Of Jacob)

둘째로, 야곱은 기도합니다(32:9-12).

 

두려움과 공포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야곱은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그는 에서를 통해 내면에 파고드는 두려움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야곱을 기도하였습니다. 아니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모든 방법을 다한 후,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 가운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 창세기 32:9-12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돌아가는 것임을 하나님께 상기시킵니다. 그는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에 대해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난 이후 20년 동안 그의 내면에서 겸손과 감사가 자라나는 것을 봅니다.

 

그는 이제 형 에서에게서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를 구합니다. 그는 자신과 아내, 그리고 어린 자녀들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도는 야곱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또 다른 표시일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 곧 하나님이 그를 형통하게 하시고, 그로 번성하게 하시리라는 약속을 상기시키며 결론을 내립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들어 설득력 있게 하나님께 그 약속을 상기시켰을까요? 아마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약속의 말씀을 떠올려서 하나님께 구한 것은 야곱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남아 있던 믿음의 토대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고향집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그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확증해 주셨고, 야곱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단순히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야곱이 믿음의 진술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두려움이 들 때, 야곱을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그는 자신의 두려움과 믿음을 하나님께 기도로 토로한 것으로 보아 그의 기도는 진실하고 믿음이 가득한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기도

 

야곱이 에서에게 550마리의 가축을 선물로 보내다(13-21)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 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6 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야곱이 에서에게 선물을 보내다, 얼티메이트 성경 사진 (Jacob sends gifts to Esau, High Res Picture available from the Ultimate Bible Picture Collection)

 

셋째로, 야곱은 에서를 달래기 위해 선물을 준비합니다(32:13-21).

 

야곱이 에서에게 준 가축의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1. 암염소가 200마리, 숫염소가 20마리 - 220마리
  2. 암양 200마리와 숫양 20마리 - 220마리
  3. 암낙타 30마리와 새끼 - 30마리
  4. 소 40마리, 황소 10마리 - 50마리
  5. 암나귀 20마리와 숫나귀 10마리 – 30마리
  • 총 550마리

가축이 550마리인데 그중 490마리는 암컷입니다. 에서에게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재산입니다. 암컷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조금 후에는 재산이 급속히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가축들을 개별 그룹으로 보내며 각 그룹 사이에 공백을 두어 누적 효과가 차례로 선물이 되도록 지시합니다. 가축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 차례대로 보내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자기의 아내와 자식들을 나누어 따라가도록 하였습니다. 아마도 에서가 첫 번째 떼를 만났을 때 화를 냈다면, 자신이 마지막으로 가는 다섯 번째 떼가 그에게 다가올 때쯤에는 그의 분노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각 목동은 에서의 군대를 만날 때 똑같은 겸손한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 창세기 32: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야곱의 목적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 창세기 32: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은 자신의 과오 때문에 분노하는 형에게 많은 선물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몇 세기가 지난 후, (다윗을 모욕한) 완고한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은 400명과 군사와 함께 오는 다윗에게 선물과 은혜로운 말로 다윗을 달래는 장면이 나오는데(사무엘상 25:18-31), 오늘 본문의 사건과 어딘지 비슷하게 보입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

야곱은 요단강 동쪽, 남쪽으로 에돔에 있는 에서의 땅인 세일 방향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방금 동쪽에서 요단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강인 얍복 시내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전날 오후에 짐승 떼를 자기보다 앞서 보냈으나 밤에는 얍복 강가에서 묵습니다.

 

넷째로, 야곱은 자신의 일행을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32:7-8; 33:1-2)

 

에서에게 보내는 선물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 보내고, 7절에서 야곱은 대대적인 학살을 피하기 위해 그의 일행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앞 세 그룹에는 목동들과 가축 떼를, 마지막 넷째 그룹과 마지막 다섯째 그룹은 아내와 자식들을 나누어 따라가도록 하였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에서 씨름을 하다(22-32)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유진 들라크루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49-61, 생 쉴피스 성당, 거룩한 천사 예배당, 파리 (Eugène Delacroix,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 1849-61, Church of Saint-Sulpice, Chapel of the Holy Angels, Paris
구스타브 도레(1832-1883), 천사와 씨름하는 야콥, 1855년 [Gustave Doré(1832-1883),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1855]
알렉상드르 루이 를루아르(Alexandre-Louis Leloir), 천사와의 싸움, Jacob (1865), 클레르몽페랑, Roger-Quillot 미술관 (Alexandre-Louis Leloir, Jacob's struggle with the angel (1865), Clermont-Ferrand, Musée d'art Roger-Quillot)
렘브란트,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659년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Rembrandt Harmensz. Van Rijn c.1659)

밤이 되자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모든 소유물과 함께 아침 일찍 출발할 준비를 갖추고 얍복강 여울 건너편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뒤에 남아 있습니다.

  • 창세기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And Jacob was left alone; and there wrestled a man with him until the breaking of the day.)

야곱과 씨름한 사람(a man wrestled with him)은 누구일까요? 이 씨름(wrestling)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사건은 신비로 둘러싸여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야곱과 씨름한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표현임을 발견합니다. 호세아는 그를 천사이자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 호세아 12:3-4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씨름꾼으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하고 평화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불의한 자들에게는 정의와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영적 싸움을 씨름이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어둠의 세력과의 싸움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씨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에베소서 6:12; 골로새서 1:29; 2:1; 4:12).

  •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πάλη; wrestling)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에서는 씨름이라는 말을 πάλη(팔레; wrestling)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신약에서 딱 한 번 쓰였습니다. "팔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없지만, 싸움이나 씨름의 개념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창세기 32:24에서와 같이 히브리어 단어 "אבק"(abaq)에서 볼 수 있습니다. “πάλη(palé; 팔레)"라는 용어는 은유적인 의미로 투쟁이나 갈등을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레슬링 경기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며 투쟁의 강도와 개인적 성격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맥락에서 그것은 종종 악의 세력에 맞서는 영적인 싸움을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레슬링은 인기 스포츠였으며 올림픽 게임의 핵심 행사였습니다. 그것은 종종 긴밀한 신체 접촉과 전략적 기동을 포함하는 힘, 기술 및 지구력의 시험이었습니다. 레슬링의 이미지는 신약성서의 원래 독자들에게 친숙했을 것이며, 영적, 도덕적 투쟁에 대한 생생한 은유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9:25 이기기를 다투는(ἀγωνιζόμενος; strives)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 골로새서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ἀγωνιζόμενος; which worketh in me mightily)
  • 골로새서 2: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ἀγῶνα; what great conflict I have for you)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골로새서 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ἀγωνιζόμενος; always labouring fervently)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참고로, 신약에서 또 다른 의미의 싸움은 ἀγωνίζομαι(아고니조마이), ἀγών(아곤)이란 말로 표현되는데, ἀγών(아곤)이라는 말이 뿌리가 됩니다. ἀγών(아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없지만, 투쟁이나 경쟁의 개념은 "싸우다" 또는 "전투하다"를 의미하는 לָחַם(lacham, 마캄)과 같은 히브리어 단어에서 볼 수 있습니다. ἀγών(아곤)은 종종 강렬한 노력이나 결단력을 가지고 투쟁이나 경쟁에 참여한다는 개념을 전달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요구되는 영적, 도덕적 노력을 묘사하기 위해 은유적으로 사용됩니다. 이는 경주에서 경쟁하는 운동선수나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과 마찬가지로 도전에 맞서는 인내와 헌신을 의미합니다. 또한 ἀγών(아곤)은 도전에 맞서는 노력, 노력, 인내의 아이디어를 내포합니다. 이 용어는 신자의 신앙 여정의 훈련되고 단호한 성격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ἀγών(아곤)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경쟁자들이 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게임과 같은 운동 경기와 연관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생생한 은유를 제공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종종 훈련, 인내, 집중이 필요한 경주나 전투로 묘사됩니다. 종종 자신의 신앙에 반대되는 사회에 살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하고 애쓰는 이미지에 공감했을 것입니다. 운동 경기의 비유는 경쟁하는 데 필요한 엄격한 훈련과 헌신을 이해하는 사도 바울의 청중에게 무척 친숙한 단어였을 것입니다.

 

깊은 밤에 야곱은 누구와 씨름하고 있을까요? 달밤에 얍복강의 유령과 함께 있는 걸까요? 성경에서는 야곱의 싸움에서의 씨름꾼을 다름 아닌 하나님으로 분명히 밝힙니다(32:28, 30).

 

야곱은 이제 아무도 남지 않은 얍복강 나루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마주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과거 형에게 했던 속임수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회한, 다시 형을 마주하게 된다는 두려움, 그리고 20년 동안 일궈놓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와 허무 등 온갖 사념들이 그의 영혼을 뒤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영혼의 압박과 고통으로 인하여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아마 그는 혼자 남은 그 적막 가운데서 절규하며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오셔서 씨름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몸부림치며 무엇이라고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마주한 절망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씨름하실 이유는 하등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야곱을 위하여 씨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자신과 씨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대사 또는 하나님으로 인식합니다. 밤새 씨름하였으니 야곱의 두려움과 절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은혜받지 못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천사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대퇴부가 부러져도 상관치 않았습니다. 야곱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불안과 두려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많은 아내와 자식들이 있어도 그것이 자신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만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그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 창세기 32:26-29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약탈자)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다)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새 이름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장소, 즉 믿음의 새로운 단계, 즉 삶의 위대한 전환점(great turning point)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보게 됩니다.

 

창세기 17:5에서 아브람(한 가정의 아버지)이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사래는(한 가정의 어머니)는 사라(열국의 어머니)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시몬은 베드로(반석)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마태 16:16-18). 요한계시록에서 이기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 중 하나는 받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새 이름(2:17)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에는 하나님의 비전과 소원이 가득합니다. 우리의 이름과 존재의 변화는 하나님 안에서만 언제나 가능합니다.

 

야곱과 씨름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에게 새 이름을 주시어 그가 하나님과 사람과 함께 겨루어 이겼다(32:28)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제 야곱의 새 이름에는 하나님의 이름(El; )이 포함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만나 삶이 변하여 위대한 사람으로 알려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유산입니까! 우리 이름에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우리 자신의 삼의 여정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 또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지만, 대신 질문(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과 그 응답으로 복을 받습니다. 몇 세기 후에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천사에게 이름을 묻고 비슷한 대답을 듣습니다.

  • 사사기 13:17-18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그곳 이름을 브니엘(Peniel; 하나님의 얼굴)이라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그의 생명이 보전되었기 때문입니다(32:30).

 

이제 새벽이 되자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형을 대면하기 위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상황 속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갑니다. 그러나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그 위에서 돋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빛이 났고, 절뚝거리는 걸음걸이였지만 힘이 있었고, 더 이상의 두려움과 움츠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창세기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20년 전, 야곱이 하란으로 향하면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새사람이 되어 벧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0년 후, 오늘도 마찬가지로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어 떠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너무나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긴 세월 함께 하여주시면서 단 한 번도 야곱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가 새사람 되어 변화될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기르신 아버지가 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감격스럽게 선포합니다.

  • 고린도후서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야곱의 절뚝거림은 징계의 표시라기보다는 만남의 기억입니다. 이는 그가 그의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겼음을 그에게 일깨워주는 흔적이며, 그가 무덤까지 가지고 간 믿음의 표시입니다. 그의 믿음의 흔적은 사도 바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과 똑같을 것입니다.

  • 갈라디아서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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