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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1_창세기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창세기 제29장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봉사하다

by 적아소심 2024. 6. 26.

창세기 29:1-35

 

야곱이 라반의 집에 이르다 (1-20)

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1절은 야곱이 길을 떠나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와이잇싸 야코브 라그라우 (וַיִּשָּׂ֥א יַעֲקֹ֖ב רַגְלָ֑יו), 그리고 야곱은 발을 들어 올려라는 생동감 있는 문학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들어 올리다(lift up), 또는 옮기다로 쓰인 와이잇싸(וַיִּשָּׂ֥א)“나사(נָשָׂא)“의 미완료시제입니다. , 지금 야곱은 꿈속에서 하나님의 사다리를 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은 후에 불안하고 두렵고 착잡한 마음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의 마음에 큰 힘을 입고 희망으로 가득 차서, 하란을 향하여 발을 힘차게 들어 올려 길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0여년을 살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는데, 이 힘든 시기에 하나님의 비전까지 보았으니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그 여행이 얼마나 설레었을까요? 하란에 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준비해 두셨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 마음은 바쁘고, 발은 힘이 넘쳤을 것입니다. ”발을 들어 올려“,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의 거리가 900km, 집을 떠난 후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거기서부터는 그 발걸음이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줍니다. 아마 야곱은 집을 떠난 지 한 달 정도 걸려서 하란에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2a절은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문장입니다. 우리말 성경(개역개정)에서는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라고 평이하게 표현되어 있으나, 원문에는 그리고 그가 본즉, 보라, 들에 우물이 있었고, 또 보라, 세 양떼가 거기에 누워 있었다(וַיַּ֞רְא וְהִנֵּ֧ה בְאֵ֣ר בַּשָּׂדֶ֗ה וְהִנֵּה־ שָׁ֞ם שְׁלֹשָׁ֤ה עֶדְרֵי־ צֹאן֙ רֹבְצִ֣ים עָלֶ֔יהָ)”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우물은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만났던 그 우물이 아닙니다. 리브가의 우물은 성 밖에 있는 반면에 우물에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서 물을 얻었습니다(24:11,16). 이 우물은 사람이 먹는 우물이라기 보다는 양들을 먹이기 위한 우물입니다. 야곱은 이 우물을 발견하여 마음에 생동감이 돌았습니다. ,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 세 때의 양이 누워있는 것을 보니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길을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그들이 하란에서 온 목자들임을 알고, 그들에게 라반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들은 라반을 잘 알고 있었으며, 평안히 잘 지내고 있다고 답합니다.

 

2b-8절에는 그 당시 목자와 목동들이 양들을 먹이는 풍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은 양들을 위해 우물 위에 있는 큰 돌을 옮겨놓고 양들을 먹이고, 다시 그 돌을 우물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우물을 덮는 돌은 크고 무거워 혼자 할 수 없어 여러 명이 돌을 굴려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을 정하고 모여서 함께 우물을 열고 양떼들을 먹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눈으로 볼 때, 하란에서 온 목자들은 해가 아직 중천에 떠 있는데, 벌써 양떼들을 모아놓고 쉬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것 같습니다. 빨이 먹이고 다시 들로 가서 양떼들을 풀을 먹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다른 목자들과 모두 모이는 시간을 정하여 공동으로 먹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야곱과 목자들이 말하고 있을 때, 9절에서 라헬이 등장합니다.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이 문장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그의 기도를 마치자마자 리브가가 나타난 것처럼, 야곱이 목자들과 말하고 있는 도중에 라헬이 극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해 줍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야곱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시고 그를 섬세하게 인도하고 계심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서 외삼촌이라는 말을 유독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야곱의 하란으로의 여행 목적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서 그의 딸고 결혼하는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고 정확하게 인도하시는가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파엘로(1483-1520, 이탈리아), 야곱과 라헬의 만남, 1519년 [Encuentro de Jacob con Raquel, 1519 de Raphael (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 Italy)]

 

제임스 티소, 우물가에서의 야곱과 라헬 [James Jacques Joseph Tissot (French, 1836-1902), Jacob and Rachel at the Well, c. 1896-1902]

 

율리우스 쉬뇌르 폰 카롤스펠드, 야곱이 라헬에게 달려가 자신이 아버지 라반의 친척임을 말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하다. 19세기 작품 [Jacob cries all over Rachel, causing her to run tell her father about the odd relative in town. Painting by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19th Century]

 

프리드리히 빌헬름, 우물가에서의 야곱과 라엘, 1829년 [Friedrich Wilhelm, Jacob and Rachel at the Well, 1829]

 

윌리엄 다이스, 야곱은 라헬을 만났을 때 그녀에게 입맞추고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창 29:11). 19세기 중반 [When Jacob met Rachel he kissed her and “lifted up his voice, and wept” (Genesis 29:11). Artist William Dyce captures this fateful moment in his mid-19th-century painting “The Meeting of Jacob and Rachel.”]

 

야곱은 라헬을 만나자 마자 우물가의 돌을 옮겨 양떼들에게 마시우게 하고, 라헬에게 가서 입맞추고 크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라반의 조카요, 라반의 동생인 리브가의 아들임을 밝혔습니다. 이에 라헬은 집으로 달려가 라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라반도 곧바로 라헬을 따라와 드디어 야곱은 라반과 상봉을 합니다.

 

그들은 한 달을 같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무척 열심히 일한 것 같습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일하는 삯을 정하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첫째는 레아였고, 둘째는 라헬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아는 시력이 약하여(tender, weak) 야곱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는 못했습니다. KJV에서는 tender라는 말을 사용하여 시력이 부드럽고 총기가 없는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당연히 시력이 좋지 않으면 눈을 똑바로 뜨지 못하기 때문에 총기가 없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둘째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17b), 원문을 직절적으로 표현하면 아름다운 몸매와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야곱이 보았을 때 라헬의 용모가 뛰어나고, 또한 처음 만난 대상이어서 그런지 그녀에게 마음이 더 갔을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과의 결혼을 대가로 7년간의 봉사를 제안합니다.

 

하란에 도착하자마자 야곱은 그의 사촌 라반의 딸인 어여쁘고 사랑스러운라헬과 사랑에 빠졌습니다(17). 라반은 그를 그의 가족으로 따뜻하게 환영했지만 라헬의 결혼에 대해 엄청난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야곱은 먼저 라반의 양떼를 돌보며 7년 동안 목자로 일해야 했습니다. 청동기 시대 목자의 연봉은 10세겔 정도였다고 합니다. 신명기 22:29에 의하면 동침한 처녀를 아내로 삼으려면 은 50세겔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시대로부터 출애굽 때까지의 시간, 약 450년 정도의 기간과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7년의 노동은 가혹한 대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서에게서 도망쳐 나온 야곱은 흥정할 입장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본격적인 처가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을 사랑함으로 그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해 보면, “또 야곱은 7년간을 라헬을 위해서 일했고 또 그 여자를 그가 사랑함으로 그날들은 그의 눈에 며칠 같았다.”입니다.

제임스 티소, 라헬과 레아 [James Jacques Joseph Tissot (French, 1836-1902), Rachel and Leah, c. 1896-1902]

 

요한 프리드리히 오버벡, 레아와 라헬 [Leah and Rachel by Johann Friedrich Overbeck]

 

레아(왼쪽)와 라헬(오른쪽)

 

야곱이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다 (21-30)

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마침내 7년이 지났을 때, 야곱은 혼인 잔치를 벌이고 새벽에야 그 사람이 라헬이 아니라 라반이 야곱의 장막으로 넘겨준 언니 레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반은 부족의 관습에 따라 큰딸이 먼저 결혼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29:26). 야곱은 레아와 혼인식을 한 후에 7일 후에 라헬과 그 시녀까지 얻었지만 7년이란 세월을 더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위하여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앙투안 트루뱅, 야곱이 라반에게 라헬과의 결혼을 제안하다. (니콜라스 푸생 따라서 그린 그림) [Jacob Proposes Marriage with Rachel to Laban, Antoine Trouvain, after Nicolas Poussin, 1666-1708 (colorized). Rijksmuseum]

 

로버트 윌리엄 보노(1858-1933)의 작품 “레아”, 7년 동안의 노력 끝에 라반은 야곱을 속여 언니 레아와 결혼하게 했습니다. 결혼식 동안 많은 포도주와 레아의 머리를 베일로 가렸기 때문입니다. [“Leah”, Robert William Vonnoh (1858-1933). After seven years of hard work Laban tricked Jacob into marrying the older sister Leah - a lot of wine and a veil over the head of Leah during the wedding did the job.]

 

아드리안 반 드 벤느(Adriaen van de Venne), 야곱이 라반에게 라헬 대신 라엘을 준 것에 대해 불평하다(Jacob complains to Laban about giving him Leah), ca.1635. 레이크박물관(Rijksmuseum)

 

헨드릭 테르브루그헨(Hendrick Terbrugghen 또는 Hendrick Jansz ter Brugghen; 1588-1629), 야곱이 라반을 책망하다 [Jacob Reproaching Laban]

 

얀 스틴(네덜란드, 1626-1679), 라반에게 항의하는 야곱, 1667-1668년 작품 [Jan Steen(Dutch, c.1626-1679), Jacob Confronting Laban, c.1667-68]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는 창세기에 나와 있으며 특이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젊은 야곱은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얻는 대가로 라반을 위해 7년 동안 일하기로 계약했습니다. 라반은 결혼식 밤에 야곱의 약혼자를 그의 큰 딸 레아와 바꾸었습니다. 몸짓, 표정, 정교한 미장센을 통해 스틴은 야곱이 라반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극적인 놀라움의 순간을 묘사합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젊은 여자는 야곱이 전날 밤에 결혼한 레아입니다. 그녀의 여종 실바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물 한 그릇을 내밀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라헬이 서 있고, 라반은 간청하고 있고, 동요하고 있는 야곱에게 그 속인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결혼식 밤의 축하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장면에 맥락과 약간의 경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풍부하고 연극적인 환경과 화려한 침실의 풍경은 역사적인 과거의 장면을 설정하며 Steen이 당시 네덜란드 극장에서 채택했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클라우드 로레인(Claude Lorrain, 1604–1682), 야곱과 라반과 그의 딸들이 있는 풍경화 [A River Landscape with Jacob and Laban and His Daughters]

 

22잔치하고(made a feast)”에서 신부의 아버지(라반) 집에서 열리는 잔치는 7일 동안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그 끝에 결혼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신랑의 사정에 따라 관습은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야곱에게는 신부를 인도할 자기 집이 없었기 때문에 라반의 집에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3a저녁에(in the evening)” 이는 곧 어두워졌을 때입니다. 그동안 신부는 베일을 꼭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라반은 이런 속임수를 쓰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라헬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라헬도 아버지의 방향에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언니보다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것이 관례상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5a아침에아침이 돼어서야 야곱은 라반이 자기를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그토록 사랑했는데, 혼인식 다음날 아침에 신부가 바뀐 것을 알고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그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전날 술을 많이 마셨을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결과적으로 라반으로부터 배신을 당해 레아와 결혼했고, 7년을 더 봉사하기로 동의하여 라헬도 얻었습니다. 이는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을 가로챈 것에 대한 첫 번째 보응이 아닐까 합니다. 그만큼 에서의 장자권의 책임이 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야곱이 결혼할 때의 나이가 84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77세에 하란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84세 이후 7년을 더하여 91세에 요셉을 낳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결혼을 시작으로 야곱은 처가에서 결혼생활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없이 훈련받게 됩니다. 남편과 아버지 됨으로써의 가장 큰 훈련관은 역시 아내와 자녀들입니다. 의지의 사나이 야곱은 누구의 말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목표가 뚜렷한 사람입니다. 누구도 그의 훈련관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가족만이 야곱을 흔들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이름을 지은 아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완전 두 아내의 경쟁 속에서 그냥 넋 놓고(?) 지내야 했을 것입니다.

 

야곱에게 아이들이 생기다 (31-35)

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보라 아들이라”)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들으심”)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연합함”)라 하였으며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찬송함”)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레아와 라헬 (왼쪽 그림에서는 붉은 옷의 라헬이 파란 옷의 레아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오른쪽 그림에서는 레아가 아이를 안고 있고, 라헬은 마음이 착잡합니다.) 아이로 인하여 둘 사이의 관계가 역전이 됩니다.

 

부모가 가족을 부양하면서 자녀들들 통해, 또는 배우자를 통해 연단받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전혀 다른 배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어 간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두 사람이 가정이라는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두 사람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변함의 가장 큰 동기는 자녀입니다. 자녀는 곧 부모를 부모되게 하는 훈련관이요, 하나님의 귀한 손님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를 키우기 위해 부모를 연단합니다. 그 연단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가정은 하나님의 복을 담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가족 일원 중 연약한 이는 튕겨 나가게 되고 역기능 가정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야곱에게 다행스러운 점은(훌륭하지는 않지만), 가족의 문제에 대해서는 예전같이 크게 인간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의 시기와 투기(妬忌) 그리고 경쟁은 야곱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과거 어머니 리브가의 강요로 아버지의 상속권을 인간적인 책략으로 가로챈 결과 예상치 못한 삶의 결과로 달라진 것을 통해 인간적인 개입과 노력이 오히려 더욱 큰 상처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신부가 바뀌는 중대한 상황에서도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수용하고, 세월의 연단을 기꺼이 감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고, 또한 아들의 이름을 본인의 마음, 또는 신앙의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지을 때도 야곱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내 레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또한 인정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또한 아버지 이삭의 형 에서에 대한 편애를 겪어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어찌 쉽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야곱의 마음이 쉽게 레아에게 가지 않으니, 야곱이나 레아도 답답할 뿐이었겠지요.

 

가족 간의 관계의 문제 또는 갈등은 가장이 직접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 모든 구성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장이라는 권위로 이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 갈등은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장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이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변화는 오직 성령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 앉아 기도하고, 은혜를 구할 때, 우리 주님의 은혜로 내면에 사랑이 채워지고, 그 사랑으로 가족을 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가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야곱이 가만히 있지 않고, 억지로라도 레아에게 사랑만이라도 베풀었다면 가족의 갈등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어째든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그를 긴 세월 동안 가족의 문제를 통해서 인생 연단을 받도록 허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연단을 통해 야곱의 마음을 자기를 향하는 마음에서 가족을 향하고, 민족을 향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찢어 넓혀 가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자기의 의지대로 가려고 하기보다, 그 하나님의 인생 연단을 삶에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냥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보통의 삶은 고달프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삶입니다. 결국 평범이 비범함을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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