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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1_창세기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창세기 제26장_이삭의 그랄 이주, 이삭과 아비멜렉, 우물 파는 이삭, 에서의 아내들

by 적아소심 2024. 2. 23.

창세기 26:1-35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다(1-25)

이삭과 아비멜렉(1-11)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무명(無名)의 화가, 기근으로 고통받는 이삭과 그의 가족이 아비멜렉 왕의 땅으로 이주하다. <Isaac and his family suffering from famine emigrating to the lands of King Abimelech Miniature from codex 212 (or padovano codice or Bible of Padua) 1390-1400 Rovigo, Accademia dei Concordi) by Unknown artist>

261절에서는 "아브라함의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라고 본 장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이제 그 땅에 아브라함 시대에 있었던 이전 흉년 외에 또 흉년이 들었다."입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Now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besides the former famine that was in the days of Abraham. (RSV)
  • And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beside the first famine that was in the days of Abraham. (KJV)
  • Now there was a famine in the land, besides the former famine that was in the days of Abraham. (ESV)

지금 이삭의 나이가 25장에서 에서와 야곱의 장자의 권리 매매사건과 비슷한 시기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어 아비멜렉에게로 갈 때가 이삭을 낳기 1년 전이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이삭이 최소 75세 이상 될 것으로 보아 거의 75-80년 만에 큰 흉년이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흉년이 한번도 들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고, 역사적으로 큰 흉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다시 한번 블레셋 그랄로 가서 아비멜렉의 신세를 지게 됩니다. 이미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평화협정을 맺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삭은 그것에 따라 블레셋의 그랄 땅으로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나 이삭의 때 긴 시간이 자났는데도 블레셋의 왕은 아비멜렉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왕이신 나의 아버지'란 뜻을 가진 블레셋 왕의 공식 직함입니다(20:1). 따라서 아브라함 당시의 아비멜렉이 아니라 그 후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큰 흉년이 들 때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물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기록이 누락되었을 수도 있고, 정말 묻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째든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태몽으로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신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그 지역에 큰 흉년으로 인한 위기의 때에 다시 나타나셔서 이삭에게 그 땅에 거라하고 말씀하십니다(2-5). 하나님께서는 멀리 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에 머물라고 명하십니다. 그리할 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삭을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즉시 순종하여 그랄에 거하였습니다(6).

이삭의 이동경로

이삭의 이주 경로

  1. 브엘세바 – 이삭이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창21:3, 31)
  2. 모리아산 – 어느 정도 자라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제물로 바쳐질 뻔 했던 곳입니다. (창22:2-3)
  3. 브엘세바 – 모리아산 여정 이후 아버지 이삭과 함께 지냈습니다.
  4. 브엘라해로이 –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 후에 머물렀던 곳으로 이곳에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습니다. (창24:62-67; 25:24-29) (창16:14에서 지명의 뜻은 "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이의 우물"로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우물을 주신 장소입니다)
  5. 그랄 – 큰 흉년이 들어 블레셋 남부 지역으로 가서 아비멜렉과 화친조약을 맺은 장소입니다. (창26:1-16)
  6. 에섹(다툼) - 그랄에서 떠난 후 에섹에서 첫 우물을 팠는데 블레셋 목자들과 다투어 그 우물을 포기한 곳입니다. (창26:19-20)
  7. 싯나(대적함) - 에섹을 떠난 후 싯나에서 두 번째로 우물을 파지만 다시 블레셋 목자들의 방해로 그 우물도 양보하고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창26:21)
  8. 르호봇(장소가 넓음) - 이곳에서 이삭은 우물 파는 것이 인정되어 평화롭게 거주합니다. (창26:23-33)
  9. 브엘세바 – 이곳에서 이삭은 아비멜렉과 화친조약을 맺고 거기에서 몇 년을 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곳에 남아 지내게 됩니다. (창26:23-33)

라파엘(1483-1520), 아비멜렉이 이삭과 레베카를 염탐하다 <Raphael, Isaac and Rebecca Spied upon by Abimelech (1518 &ndash; 1519), Style: High Renaissance>
로기(Loggie)에 소장되어 있는 프레스코화 사본, Maratti vols로부터, 포옹하고 있는 이삭과 리브가, 오른쪽 위쪽에 왕관을 쓴 아비멜렉이 벽에 난 구멍에서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라파엘의 작품을 재구성한 작품)
라파엘, 니콜라스 콘소니를 따라서 재구성한 루드비히 그루너(1801-1882)의 작품,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를 놀라게 하다 <Abimelech surprises Isaac and Rebekah. Colour lithograph by Ludwig Gruner(1801-1882), after Nicolas Consoni(1814-1884) after Raphael(1483-1520)>

위 그림에서 제목이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를 염탐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고, 또한 대부분의 그림들도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를 의심하고 도청하는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 그러나 8절에 보면 이삭과 리브가가 거기에 오래 머물렀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비멜렉은 한번도 리브가에 대해 욕심을 부린 적도 없고, 위해를 가한 적도 없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삭이 거부(巨富)가 되자 시기 질투하는 백성들의 청원에 못이겨 쫓아 보내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 전에는 사실상 자유롭게 살도록 허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아비멜렉이 염탐을 하다가 이삭과 리브가가 부부인 것이 탄로가 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아비멜렉이 우연하게 발견하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렘브란트, 1656년, 이삭과 리브가 - 도청 중인 아비멜렉과 함께 <Isaac and Rebecca, with Abimelech Eavesdropping by Rembrandt, 1656>
에티엔 델론(16세기 프랑스 조각가), 아말렉이 이삭과 리브가를 염탐하다 <Engraving Print made by: &Eacute;tienne Delaune, Date: 1550-1572>
피터 반 데르 보흐트(Pieter van der Borcht; 1573-1608), 아비멜렉은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고 그에게 은주머니를 주다, 헤르조그 안톤 울리히 박물관 <Abimelech has Sarah returned to Abraham and gives him a purse of silver, Pieter van der Borcht, 1573-1608. Herzog Anton Ulrich-Museum>

 

아브라함이 네게브에 머무른 것과 그랄 왕 아비멜렉과의 교류는 아비멜렉을 일관되게 긍정적인 용어로 묘사합니다. 창세기 20장과 창세기 2122~34절의 두 이야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 두 부자는 아비멜렉과 합의하고, 선의를 표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해 갑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영토 내에서 살 때, 아비멜렉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경하고, 아브라함은 블레셋 땅에서 자신이 확보하였습니다.

 

이삭이 주인공인 26장에서는 그랄에서 이삭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교류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삭이 그랄로 가서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의 아내 리브가를 그의 누이인 척합니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데려가지도 않았는데, 이삭의 두려움은 사실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의 아비멜렉과 다르게 현 아비멜렉은 아예 처음부터 리브가를 탐내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연히 창문을 통해 부부를 발견하고는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삭에 대한 아비멜렉의 책망은 사실 하나님의 책망과도 같아서 다시 죄의 개념을 불러일으키는 아브라함에 대한 책망을 연상시킵니다.

 

8절을 보면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라고 나옵니다. "When he had been there a long time(8a; RSV)“, 또는 ”And it came to pass, when he had been there a long time(8a; KJV)" 이를 직역하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그가 거기에 오랫동안 있었을 때"인데, 이삭이 그 땅에 오래 머물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비멜렉이 창가를 내다보다가 이삭과 리브가가 같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이 부부임을 알게 됩니다(8b).

 

아비멜렉은 리브가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지만, 자신의 의로운 백성 중 한 사람이 이에 따라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현재의 아비멜렉도 아브라함 당시의 아비멜렉 못지않게 도덕적 기준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물 파는 이삭(12-25)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삭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우물을 파고 있는 모습
무명의 화가, 시기심으로 인해 블레셋 목자들이 이삭의 우물을 메꾸다. <The envious Philistines fill the hollow wells by Isaac, Miniature from the codex 212 (or padovano codice or Bible of Padua) 1390-1400 Rovigo, Accademia dei Concordi>
무명(無名)의 화가, 이삭이 그랄에서 우물을 파고 그랄의 목자들이 그를 찾아와 다투다, 코덱스 212 (또는 파도바노 코덱스 또는 파도바 성경)에서 가져온 미니어처 1390-1400 Rovigo, Accademia dei Concordi <Isaac digs wells in the valley of Guerar and the shepherds of the valley seek him quarrel Miniature taken from the codex 212 (or padovano codice or Bible of Padua) 1390-1400 Rovigo, Accademia dei Concordi, Unknown artist>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은 아비멜렉의 보호를 받으며 그 땅에서 흉년 가운데서도 백배나 수확을 하였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12-14). 그러나 이삭은 블레셋 백성들의 시기를 받고 결국 그랄을 떠나 에섹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우물을 파게 됩니다.

 

이삭은 자신이 판 우물을 두고 그랄의 종들과 다툴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 우물들은 몇 년 전에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들은 그 우물들을 막았습니다. 이삭은 돌아와서 그 우물들을 정돈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 우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었습니다. 그러자 곧 그랄의 목자들이 와서 에섹 우물이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이삭은 에섹의 우물을 양보하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다른 우물을 파고 그 이름을 싯나라고 불렀습니다. 그랄의 목자들이 다시 와서 이 우물도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참으로 뻔뻔합니다. 이삭은 제대로 항의를 할 만한데,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는 이 우물을 르호벳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넓은 곳을 마련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할 것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축하를 해주기 보다는 오히려 시기하고 분해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공급하심을 기뻐하기는커녕 우리의 기쁨(이 경우에는 우물)을 뺏어가려 합니다. 이 우물은 수년 전에 아브라함이 팠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었습니다. 이삭이 그 우물의 물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이삭은 논쟁에 가담하지 않고 그냥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는 그런 일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이삭은 계속해서 땅을 파고 결국 블레셋 목자들은 그와 싸울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이삭은 원수들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 아버지의 우물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브엘세바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시어 그에게 많은 후손과 많은 부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의 종이 와서 물을 찾았다고 그에게 알렸습니다. 이 우물을 세바라고 불렀습니다.

필립 메드후스트, 이삭의 우물 <Isaac&rsquo;s Wells by Phillip Medhurst>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를 그랄에서 내보냈던 사람, 아비멜렉이 찾아왔습니다.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들은 이삭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이삭과 대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삭과 친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그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원수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언약을 맺으라고 제안합니다. 아비멜렉은 이삭보다는 이삭의 하나님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의 블레셋과 보이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삭은 블레셋 백성들의 도전과 위협에 전혀 반응하거나 반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땅에 머물렀습니다. 쫓겨난 땅에서 불평하거나 울분을 토로하지 않고 그곳에서 거주하기 위해 우물을 팠습니다. 그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밀려다니면서도 계속해서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이삭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며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이 믿음으로 결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세상으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우리 안에 보증으로 주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기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믿으면, 우리는 다툼을 멈추고 비록 마음이 불편하고 시끄러울지라도 계속해서 새 우물을 팔 수 있습니다.

 

이삭은 그의 일생에 특별한 사건이 많지 않았지만 무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에게 무자비한 일을 행할 때에도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20년간 자식이 없었을 때에도 오도방정을 떨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끝까지 리브가 한 사람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에게 눈 돌리지 않고 온전히 신뢰하였습니다. 그는 마음이 온유할 뿐 아니라 진득하고 진중하였습니다. 한번 결정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 일을 묵묵히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삭을 축복하시고 그에게 "거부(巨富)라는 말까지 쓸 정도로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 시편 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 디도서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 야고보서 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아브라함의 우물, 브엘세바
사용이 중단된 우물들

 

이삭과 아비멜렉의 계약 (26-33)

26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필립 메드후스트 아비멜렉과 이삭 <Abimelech and Isaac, Philip De Vere at St. George&rsquo;s Court, Kidderminster, England by Phillip Medhurst>
아비멜렉과 이삭의 평화 협정 <Abimelech and Isaac make peace. Original engraving, c. 1555>
바클라브 홀라르(1607-1677), 이삭과 아비멜렉 <Vaclav Hollar(1607-1677), Isaac and Abimelech>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심을 모두 본 아비멜렉은 먼저 이삭을 찾아와 화친 조약을 맺자고 요청합니다. 이 장면은 브엘세바에서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만남의 반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비멜렉은 이삭의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야훼)를 언급합니다. 창세기 21장에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해 엘로힘이란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삭과 블레셋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30) 다음날 아침에 화친조약을 위한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이 스토리는 평화를 기원하며 끝이 납니다.

 

 

창세기 20~21장과 창세기 26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블레셋 사람들과의 거주 관련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조상과 가나안 땅에 있던 이방 민족 사이의 관계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블레셋 민족은 블레셋 왕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보여준 선의를 강조하며(블레셋 백성 일부의 적대행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아브라함과 이삭은 언약을 통해 상호 선의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삭은 세상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 대응하여 싸우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대립이 있을 때 하나님 편에서 정의를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양보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며 강하게 대립합니다. 물론 헌법에서 명시한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에 반할 때 그에 대해 저항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또한 동성애 법안을 반대하는 것 등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당한 요구입니다. 왜냐면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신앙과 신념,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 특히 경제적 이익, 기득권의 유지, 정치적 지위 등을 유지하기 위한 다툼이라면 이삭의 모범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그리고 세상을 섬기는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많이 섬겼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국가가 하지 못하는 곳에서 약자들을 많이 섬겼습니다. 약자들을 위해 사용되는 대부분의 후원은 지금도 기독교회가 압도적입니다. 아마 기독교인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더욱 어둡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남은 자들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여정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먼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또한 교회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곧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존중할 때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존중하는 자를 존중하십니다. 이삭은 세상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는 세상 나라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이삭의 보상이 되어 주셨습니다. 

  • 사무엘상 2:30b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 1 Samuel 2:30b “for those who honor me I will honor, and those who despise me shall be lightly esteemed.” (RSV)
  • 1 Samuel 2:30b “for them that honour me I will honour, and they that despise me shall be lightly esteemed.” (KJV)

 

에서의 이방인 아내들(34-35)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에서의 아내들, 디클라 라오르 <A photographic representation of the wives of Esau, by Dikla Laor, (https://diklalaor.photography/esau-wives/)>

34-35절에는 에서는 40세에 가나안 족속인 헷 족속의 딸 중에서 유딧과 바스맛 두 명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이것이 이삭과 리브가를 근심케 하였다고 하는데, 원문으로 보면 이삭과 리브가를 슬프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에 에서는 가나안 여인들이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아니함을 보고 이스마엘에게로 가서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삼았습니다(28:9). 그래서 에서의 아내는 셋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창36:1-5의 족보에서는 헷 족속 아다, 히위 족속 오홀리바마, 이스마엘의 딸의 이름을 마할랏이 아닌 바스맛이라고 기록하고, 헷 족속 유딧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헷 족속은 가나안의 아들 헷으로부터 유래된 민족입니다. 과거 아브라함은 바로 헷 족속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 막벨라 굴을 사서 소유로 삼았습니다(23). 그리고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대체적으로 그곳에 살았습니다. 따라서 '아다'와 '바스맛'은 에서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헷 족속의 여인이었습니다. '아다'란 이름은 '장식(裝飾)', 또는 아랍어의 '아침'이란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이름에서 보듯이 에서는 화려하게 꾸민 여인과 결혼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바스맛이란 이름은 '향기로운' 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에서는 눈에 보기에 예쁘고 화려한 여인들을 좋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 본문 말씀과 창28:9, 35:1-3의 에서의 아내의 이름을 기록함에 있어 마할랏과 바스맛의 이름 사용은 당시 사람들이 이름을 몇 개씩 가지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다른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모세로 태어날 때 이름이 일곱 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공식적으로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앙이 같지 않으면 그의 나머지 인생은 같은 방향으로 가기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서로의 동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면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세대를 이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 단위는 가정입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명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세대는 교회의 잘못으로 인하여 젊은이들이 믿음의 절벽을 이루어 그 전통이 이어지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계로 나가 선교를 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다시 믿음의 부흥을 경험하도록 마음 아프게 기도해야 함을 절감합니다. 다음 세대들이 믿음의 결혼의 대상도 부족할까봐 걱정됩니다. 오 주님, 우리 다음 세대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신명기 7:3-4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 고린도후서 6:14-15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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