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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 하는 묵상_Visio Divina

오늘의 묵상_이사야 28:23-29_순간순간 방법과 길을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by 적아소심 2024. 2. 16.

이사야 28:23-29 "자세히 들으라"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그것을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23 Give ear, and hear my voice; hearken, and hear my speech. 24 Does he who plows for sowing plow continually?does he continually open and harrow his ground? 25  When he has leveled its surface, does he not scatter dill, sow cummin, and put in wheat in rows and barley in its proper place, and spelt as the border?

26 For he is instructed aright; his God teaches him.
27 Dill is not threshed with a threshing sledge, nor is a cart wheel rolled over cummin; but dill is beaten out with a stick, and cummin with a rod. 28 Does one crush bread grain? No, he does not thresh it for ever; when he drives his cart wheel over it with his horses, he does not crush it. 
29 This also comes from theLordof hosts; he is wonderful in counsel, and excellent in wisdom. (RSV)


장자(莊子) 제4편(篇), 인간세(人間世) 제1장에서 공자와 안회(顔回)의 대화가 나옵니다. 모두가 말씀에 비추어 맞는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어 인용해 봅니다.

 

안회: "저는 집안이 가난하여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葷菜를 먹지 못한 지 몇 달이 되었으니 이 정도면 재계했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까?"

공자: "그것은 제사 지낼 때의 재계이지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 아니다."

안회: "감히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쭙니다."

공자: "너는 뜻을 한결같이 해야 한다."

"사물의 소리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며, 또 마음으로 듣지 말고 氣로 들어야 한다.

귀는 감각적(感覺的)인 소리를 듣는 데에 그치고 마음은 지각(知覺)에서 멈추지만 기(氣)는 마음을 비워서 사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도(道)는 오직 마음을 비우는 곳에 응집된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다."

(仲尼曰 若이 一志하야 無聽之以耳하고 而聽之以心하며 無聽之以心하고 而聽之以氣니 止於耳止於符어니와 氣也者虛而待物者也唯道集虛하나니 虛者心齋也니라)

 

안회: "제가 아직 마음을 재계하지 않았을 때에는 실로 제 자신이 있었는데 마음을 재계하고 난 뒤에는 처음부터 아예 안회가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마음을 비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 "극진하다. 내 너에게 말해주겠다."

"네가 세속의 울타리 속에 들어가 노닐면서도 명예 따위에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며, 자신의 말이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면 말을 하고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면 멈추며, 〈마음에〉 문과 담장을 치지 않고 오로지 道를 거처로 삼아 부득이 할 때에만 말할 수 있다면 거의 가까울 것이다.

세속으로부터 자취를 끊는 것은 쉽지만 세속에 살면서 땅 위를 걸어다니지 않기는 어렵다.

남에게 부림을 받는 처지가 되면 거짓을 저지르기가 쉽고, 하늘의 부림을 받는 처지가 되면 거짓을 저지르기 어렵다."

(이하 중략)

(夫子曰 盡矣로다 吾語若호리라 能入遊其樊이오 而無感其名하며 入則鳴하고 不入則止하며 無門無毒하야 一宅而寓於不得已則幾矣리라 絶迹커니와 無行地하니라 爲人使易以僞어니와 爲天使難以僞니라)

 

위 말 중에서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으라는 말이 새삼 마음에 닿습니다. 또한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공자는 예수님 훨씬 이전 시대 사람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인데도 기(氣)로 들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는 마음 깊이에서 더 들어가 영(靈)으로도 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마지막에 남에게 부림을 받으면 거짓을 저지르기 쉽고 하늘의 부림을 받는 처지가 되면 거짓을 저지르기 어렵다고 한 말은, 우리가 사람에게 얽매이면 사람에게 휘둘리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23절 짧은 구절에서 들으라고 4번이나 말씀하십니다.

23절을 직역하면 "귀를 기울이라, 나의 목소리를 들으라, 주목하라, 나의 말을 들으라"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말씀다독을 많이 하는지요? 1년에 1회독, 3회독 어떤 분은 10독하신 분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요? 다독한다고 처음에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애쓰지만 시간이 갈수록 목표량을 채우는데 급급하지는 않는지요?

 

書不盡言 言不盡意 (서불진언, 언불진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곧 "글이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려면 많은 묵상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몇 번을 읽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나의 뜻으로 치환하였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하나님 안에서 말씀과 기도는 하나인데 단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뿐입니다. 기도의 의미는 "exchange of will" 곧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을 교환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소원을 들고 하나님께 가면(기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들고 우리에게 내려오십니다(응답).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주님께 드리고, 나는 그 말씀을 받아옵니다. 그런 코이노니아(연합)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라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God-breathed) 쓰여진 책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너무 쉬운 책인데 한편으로 무척 어렵습니다. 배움이 전혀 없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면서도, 똑 같은 글인데도 일류 대학의 교수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성경은 삶의 지혜와 살아가는 방법이 모두 담겨 있는 보물창고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역사책, 또는 정보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책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책입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 한마디로 "자세히 들으라"고 하십니다. 경청(傾聽)이란 공손하기 듣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울일경(傾)를 쓰고 있는 이 말은 몸을 기울여서 귀를 기울여서 자세히 듣는다는 말입니다. 마음으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영으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경청만으로도 사람을 회복시킨다는 것을 배웠고, 또한 그러함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 주님! 오늘 말씀 한구절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곱씹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말씀 한 구절을 되씹으면서 그 안에서 나오는 양분이 나의 영혼과 육신을 살찌우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길 기도합니다. 그 말씀 한 구절이 나의 삶에 구체적인 방향을 주고, 가르치고 지도하는 놀라운 상담(조언, 충고)가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 1600~1682, 프랑스 화가), "산상설교", 1656

예수님이 산상설교 하실 때 이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들 부류에 대해서만 살펴봅니다.

산의 맨꼭대기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앉아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중심으로 둘러 앉아 예수님 말씀을 자세히 듣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3년동안 동거동락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알게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연이 있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위대한 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면 꼭 그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잘 몰랐지만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물어 배웠습니다. 잘 모르면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면 반드시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을 통해서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왼쪽 아래로 예수님이 계신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소수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벧전3:20, 고전10:3-5에 의하면 구원을 받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구원으로 가는 길은 좁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왼쪽 아래의 사람들의 반응은 적극적으로 환호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림에서 아래 앞쪽의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반응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그늘에 어둡게 가려져 있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조그마한 숲 사이로 사람들이 거닐기도 합니다. 여기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보다 적극적이지는 않습니다.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한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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