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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9_사무엘상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사무엘상 제14장_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by 적아소심 2024. 1. 31.

사무엘상 14:1-52

 

요나단이 블레셋을 습격하다 (1-15)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2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8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11 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13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5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블레셋 군인들이 칼로 서로를 치다 (16-23)

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7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20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사울의 맹세와 요나단의 실수 (24-46)

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25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26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 27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28 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하니 29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31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32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33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34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5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36 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38 사울이 이르되 너희 군대의 지휘관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 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40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 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하건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42 사울이 이르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43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44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46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사울의 업적과 그 집안 (47-52)

47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48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 49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의 군사령관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52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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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에서는 '하루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사무엘상 13장 이후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대치한 상태에서 며칠이든 아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음을 암시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최신식 무기와 각종 중화기로 무장한 블레셋 군대와 대치하면서 블레셋 군대의 위용에 놀라 간이 콩알만 해지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 떨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쫄보가 되어버린 이스라엘 군대는 아마 무단이탈(탈영)로 인해 조만간 스스로 와해될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군대 지휘관으로서 요나단은 아마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을 것입니다.

 

요나단은 결심하고 그의 무기를 든 부하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1a)" 우리말 성경에서는 청유형이나 권유형 제안의 형태로 해석이 되는데, 히브리어에서는 명령형으로 나옵니다. 1절에서 ( לְכָ֗ה וְנַעְבְּרָה֙ / 레카 웨나베라)로 하고 6절에서도 똑같이 (לְכָה֙ וְנַעְבְּרָ֗ה / 레카 웨나베라)로 말합니다. 영어로는 "Come, let us cross over" (NAS; KJV)로 번역하여 원문과 같은 명령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앞의 '레카'(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습니다)는 명령문으로 ‘Come’으로 해석하고, '웨나베라'는 미완료시제의 청유형입니다. 우리말로는 "오라, 우리가 건너가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요나단은 부하에게 "우리 건너갈까? 건너가자"라고 제안을 한 것이 아니라 "오라, 우리가 건너가자"라고 리더의 권위와 책임감으로 단호하게 명령을 한 것입니다(비록 두 사람이지만....). 명령문으로 해석할 때 당시의 상황이 좀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요나단은 스스로 선봉장이 되어서 기습작전을 감행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버지 사울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기 무기든 부하에게 명령하여 자기를 따르게 합니다.

 

당시 사울은 육백 명 가량의 군사를 거느리고 기브아 번경 미그론에 머물고 었었습니다(2). 사울도 딱히 무엇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만 엘리의 증손으로 제사장이 된 아히야에게 에봇을 입히고 곁에 두었습니다(3a). 전후 문맥을 보면 아히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거나, 또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냥 부적처럼 곁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 중에는 요나단이 단독으로 적진으로 간 것을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3b). 그만큼 이스라엘 진영의 연락이나 명령체계는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두려움 때문에 전체 진영을 세밀하게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게바와 믹마스 사이에는 협곡이 있고, 앙편에 보세스와 세네라는 매우 험한 바위가 있어서 지형이 매우 험준하여 양쪽 진영이 먼저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4-5).

 

이에 요나단은 믿음의 용기에 기초하여 블레셋 기습공격을 계획합니다. 요나단은 무기 든 부하에게 여호와의 권능과 역사를 확신하며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군대로 건너가자고 합니다(6a). 요나단은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다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6b).

  •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6)”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가성진(弄假成眞)'이란 말은 농담이 진담이 된다는 말입니다. 농담이라도 함부로 말을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를 '언참(言讖: 말의 예언)'이라고 합니다. 예전 대중가요인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잊혀진 계절' 등 슬픈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은 모두 일찍 죽었습니다. 이를 '요참(謠讖: 노래 예언)'이라고 합니다. 이승만 박사가 남북통일(南北統一)이라는 글을 쓰다가 붓이 부러졌는데, 이후에 남북은 두동강이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서참(書讖)'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에 담아 있는 말을 그대로 뱉어서는 안 됩니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툼이나 논쟁 또는 남이 나를 공격하는 상황에서는 늘 "한번 더 생각하자", "불편한 얘기는 내일 하자"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내일 얘기해도 되는 상황이 거의 90%가 넘습니다. 조금만 "꾸욱" 하고 참으면 많은 일이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정탐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고불고하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돌로 치려고 한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타나 엄하게 책망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 민수기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뱉은 말로 인하여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이나 돌고 돌아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분노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함부로 뱉은 말로 인해 엄청난 민족적 고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잠언 18:20-21절에서는 말합니다.

  •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한 말들을 모두 들으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할 때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고, 우리의 말대로 준비하시고 그대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성경 전반에 걸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말씀이 진실하시며 한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닫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입은 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살아납니다.

  •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용장 아래 쫄보 없다는 말대로 무기든 소년은 요나단의 믿음의 결단을 무조건 따르겠다고 합니다(7). 요나단의 부하가 요나단에게 무조건적인 신뢰의 복종을 하는 것은 보면, 평소 요나단을 따라다니면서 그의 믿음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지도자는 믿음과 능력뿐 아니라 인격을 갖출 때 사람이 진심으로 따르게 됩니다. 먼저 요나단은 우선 적들이 자신들을 볼 수 있는 곳까지 가자고 합니다(8). 그리고 블레셋 군이 내려오겠다고 하면 그들에게 올라가지 말고, 만약 그들이 올라오라 하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표징으로 알고 올라가자고 합니다(9-10).

 

요나단은 믿음으로 블레셋을 기습공격할 계획을 세웠지만, 자기 나름대로 먼저 실행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체적인 표징(sign)을 구했습니다. 요나단은 믿음으로 단호하게 행동하면서도 조급하거나 독단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하에게도 전략을 나누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표징(sign)을 기다립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사무엘을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여 실패한 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에게서 모범적인 신앙을 배운 것이 아니라 반면교사(反面敎師)로써 배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는 직장에서 상사로서 좋은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것을 보여 줌으로써, 남들에게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않겠다라는 반면교사가 된다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요?

 

드디어 요나단과 무기 든 소년이 블레셋 군사들에게 자신들을 보이자, 그들은 요나단과 무기 든 소년을 조롱하며 올라오라고 합니다(11-12a). 하나님의 싸인을 기다리던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주실 승리를 확신하고 블레셋 수비대를 향하여 돌진하였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을 사정없이 쳤습니다(12b-13). 요나단과 무기든 소년이 죽인 블레셋 군사는 이십 명가량이나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블레셋 진영이 공포에 싸여 혼란케 되고 땅도 진동하였습니다(15).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된 아트(art) 성경 : 수많은 삽화 포함, 1896, 출판사: 런던, G. Newnes, 프린스턴 신학교 도서관 소장

위 삽화는 블레셋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한눈에 보더라도 훈련받은 블레셋 군대와 오합지졸과 같은 이스라엘 군대의 전투 장면은 블레셋이 얼마나 위협적인 전투 민족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철권통치에 의해 억압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경험적으로 블레셋의 강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군대의 규모도 엄청나게 차이가 났습니다. 현저한 전력의 차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시간이 갈수록 전투의지를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요나단의 믿음의 행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그를 통한 믿음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외적인 전력의 규모나, 전술적인 방법보다는 믿음의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요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우리에게 더욱 믿음의 동기를 제공해 줍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 경로

14장에서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에 기습공격한 경로는 가장 험준한 협곡입니다. 단 두 명의 기습공격으로 블레셋 진영에 공포와 혼란이 발생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며 죽이도록 하기까지는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의 결단과 실행을 기뻐 받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지금의 작은 믿음의 시도가 미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기초가 됩니다.

믹마스(오른쪽: 블레셋 주둔지역)와 게바(왼쪽: 이스라엘)
믹마스 계곡(요나단의 공격 경로)
믹마스 계곡 - 믹마스向(북쪽) 암벽 모습, 믹마스로 가기 위한 길이 험하여 믹마스는 천혜의 요새로 사용되었습니다.
믹마스로 가기 위해서는 바로 전면의 비탈면을 통해 계속 내려가서 협곡을 건너 눈앞에 보이는 암벽을 올라가야 하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대부분 지역은 고난도 절벽 지역입니다.
이것은 믹마스 계곡 암반의 1/4에 해당합니다. 전경에 보이는 암벽의 높이는 약 35미터입니다.
믹마스 계곡 암벽
믹마스 계곡
윌리엄 브래시 홀, 조나단과 블레셋인 <William Brassey Hole, Jonathan and the Philistines>

위 그림 왼쪽 상단에 블레셋 수비대 군사들이 요나단과 무기든 소년을 조롱하며 올라와 봐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부대를 치기 위해 언덕을 기어 올라가고 있는 요나단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요나단과 무기든 소년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요나단과 무기든 소년
제임스 티소, 1899년, 요나단이 블레셋을 공격하는 모습 (사무엘상 14:11), 뉴욕 유대인 박물관 소장 <James Tissot Bible, c1899, Jonathan at the assault of the Philistines. 1 Samuel 14:11, Jewish Museum New York>
제작자: 클라이브 업튼, 영국(1911~2006), 요나단의 위대한 승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갑옷을 입은 병사가 블레셋의 대군을 내려다보고 있음. 보물 60호 원본 삽화 <Creator: Clive Uptton, English (1911&ndash;2006), Jonathan's Great Victory. Jonathan, the son of Saul, and his armour bearer looks down on the great army of Philistines. Treasure no. 60>.
틴토레토(이탈리아, 1518-1594), 블레셋과 이스라엘 민족의 전투, 매너리즘 방식(후기 르네상스) <Tintoretto(Italian, 1518-1594), The Battle Between the Philistines and the Israelites, Mannerism(Late Renaissance)>
제작자: 유럽 학교(17세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갑옷을 입은 병사가 블레셋을 물리치는 모습(사무엘상 14장). 파리의 피에르 마리에트가 출판한 것으로 추정되는 17세기 성경 판화 시리즈 중 하나 <Creator: European School (17th century), Jonathan, son of Saul, and his armour bearer defeating the Philistines (1 Samuel 14). One of an unidentified series of 17th century Bible prints, apparently published by Pierre Mariette, Paris.>

16-23절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대승을 거두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냐민 기브아에서 사울의 파수꾼이 블레셋 진영이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16). 16절에서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그리고 보라!"라는 감탄사가 있습니다. 해변의 모래와 같이 엄청나게 많은 군대가,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나 되는 강력한 블레셋 군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업습니다! 그들은 이리저리 맞고 쓰러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이에 사울이 긴급하게 점호해 보고 요나단과 그의 무기든 자가 없어졌음을 알게 됩니다(17). 그리고 사울은 아히야를 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묻게 합니다(18).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행위가 믿음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도 제사장 아히야에게 멋있는 에봇을 입히고 언약궤를 들고나온 것을 보여주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때 블레셋 사람의 소동이 더욱 심해짐을 보고 사울이 하나님의 뜻 묻기를 중단시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의 의식도 자기 맘대로 중단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변화무쌍하게 대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백성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아갔습니다(19-20a).

 

사울과 그 군사들이 전장에 나아가 보니 블레셋 군대 가운데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20b). 전장(戰場)의 형세(形勢)가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먼저 블레셋 군대에 편입되어 있던 히브리 사람들이 돌이켜 이스라엘 군대에 합류하였습니다(21).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강제징집 때문이건 돈 때문이건 블레셋 군대에 참가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진영을 이탈해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있던 사람들도 합류해 블레셋 사람을 추격하였습니다(22). 결과적으로 요나단의 믿음의 결단과 행동을 기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날 전투는 이스라엘이 크게 승리하였습니다(23).

A. 라비ː 믹마스 전투(카셀의 일러스트 세계사) <A. Labyː Battle of Michmash (Cassell's Illustrated Universal History)>

24-35절에서는 사울의 경솔한 금식 명령으로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또한 요나단이 사울의 명령을 어기고 결과적으로 사울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믹마스 전투로 인해 이스라엘 군사들은 피곤했습니다(24a). 이는 사울이 승리에만 급급하여 블레셋과 전투하는 동안 금식령을 내리고 이를 어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맹세하였기에 모두 음식을 먹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24b). 백성들이 수풀에 들어가 꿀을 발견했으나 사울의 저주의 맹세를 두려워하여 그 누구도 먹는 자가 없었습니다(25-26).

 

그러나 사울의 금식령을 듣지 못한 요나단은 꿀을 먹고 기운을 차리게 됩니다(27). 그러자 군사 중 한 사람이 요나단에게 그의 부친 사울의 금식명령 및 저주로 인해 현재 백성이 피곤해 하고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28). 그러자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전쟁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여 그들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다고 하며 부친의 잘못된 명령을 지적합니다(29a). 그리고 만약 백성들이 탈취물을 임의로 먹었다면 블레셋 사람들 더 많이 격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29b-30).

 

그날에 이스라엘 군사들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친 까닭에 심히 피곤하였습니다(31). 이에 피곤한 군사들은 탈취물 중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잡아 피째 먹게 되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32). 전시에는 평상시와 다른 군율(軍律)이 있습니다. 이는 유사시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함인데 사울은 오로지 자기의 생각대로 하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음성도 듣기를 싫어하는데 과연 사람의 말도 들을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에게 잘못된 명령에 대해 충언할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범죄함을 들은 사울은 큰 돌을 준비해 백성으로 하여금 거기서 짐승을 잡게 하고 피째 먹음으로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33-34). 그러나 이발지시(已發之矢),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울은 상황에 따라 이러저리 휘둘림으로 인해 계속 하나님의 때를 놓치고 있습니다.

 

전쟁이 승리로 끝나고, 사울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으로 단을 쌓았습니다(35). 그러나 사울의 승리에는 사울로 인한 하나님의 개입보다는 요나단의 믿음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사울이 표면적으로는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진실은 사울이 다음 15장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기를 위하여기념비를 세우는 사건에서 확증됩니다.

요나단이 꿀을 먹다(삼상14:27), The illustrations were originated by James Tissot (1836-1902) who sketched as he read Scripture.

36-46절에서는 사울의 금식 명령을 위반한 요나단의 죽음의 위기와 이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대승을 거둔 이후 사울은 밤에 블레셋을 추격하자고 제안합니다(36a). 그는 이제까지 형식적으로라도 하나님께 묻는 척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자기의 생각대로 바로 행동합니다. 그의 신앙적 타락의 모습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군사들이 왕의 뜻을 따르겠다고 합니다(36b). 이제 사울과 이스라엘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사장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여쭙도록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제사장 아히야의 직업정신의 발현이었겠지요(36c). 보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사울이 마지못해 하나님께 여쭈었으나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아니하십니다(37). 사울은 하나님의 존재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 이사야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Ah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doers, children that are corrupters: they have forsaken the LORD,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unto anger, they are gone away backward. (여기서 만홀히 여겼다는 것은 모욕하다, 경멸하다, 배반하다 뜻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에 따라 사울은 무척 당황했을 것입니다.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니,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을 것입니다. 사울은 지휘관들을 불러 모아 죄가 있었는지를 조사하였습니다(38). 그리고 자기 아들 요나단이라 할지라도 범죄했으면 죽어야 한다고 허튼 맹세까지 하였습니다(39a). 꼭 씨가 되는 말을 하는 것이 불신앙적인 사울의 습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백성 중에 이에 대답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39b). 백성들 앞에서 자기 성격대로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사울에게 누가 감히 말이라도 붙일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도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하는 사울 곁에는 이제 말없이 따르는 팔로워나 아첨꾼들만 있게 될 것이 뻔합니다.

 

사울이 범인 색출을 위한 제비를 뽑기 위해 군사들을 한편에 서게 하고, 자기와 요나단은 다른 한편에 섰습니다(40). 제비뽑기의 결과 사울과 요나단이 뽑히고(41), 사울과 요나단 사이에 제비를 뽑자 요나단이 뽑혔습니다(42).

 

이제 사울은 요나단에게 범죄를 자백하라고 명령합니다(43a). 그는 권력에 취해 인성(人性)도 잃어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울의 물음에 요나단이 꿀을 덕은 사실을 자백하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43b). 사울에 비하면 요나단은 믿음이 있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진정한 리더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요나단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44). 그는 쓸데없는 명령을 한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명령을 어겨 자기의 체면을 깎은 아들도 죽이겠다고 합니다. 요나단이 위험해지자 보다 못한 이스라엘 군사들이 나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이룬 요나단을 적극 옹호하고 중재하여 그를 죽음에서 구원하게 됩니다(45).

 

머쓱해진 사울은 더 이상 전투를 계속할 의지를 상실하고 추격을 멈추고 철수하고 맙니다(46a). 사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여 전쟁을 수행했더라면, 아니면 마음이 좀 더 넓어서 자신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였더라도 요나단을 통해서 블레셋을 완전히 진멸하고 전쟁을 마무리했다면, 이스라엘은 장기간의 평화를 유지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전략적인 명령보다는 자기 맘대로 감정적인 명령을 하여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를 떨어끄리고, 굶겨서 힘을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한 전투력 손실이 얼마나 컸습니까? 그러나 사울은 쓸데 없는 데에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는 정말 중요한 시점에서 전투를 중단하고 철수하였습니다. 블레셋 군대도 한숨 돌리고 철수합니다(46b). 이렇게 해서 사연 많고 탈도 많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 잠시 멈추고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블레셋은 힘을 회복하고 다시 쳐들어 올 것입니다.

1916년 J.P. 모건(1867-1943)이 구입한 라틴어, 페르시아어, 유대-페르시아어가 새겨진 구약성서 미니어처, (그림 번호 MS M. 638, fol.에서 위쪽 부분임) "분노로 균형을 잃은 사울", 파리, 프랑스, ca.1244-1254

<위 그림 설명> 사울 왕이 하나님께 블레셋을 추격해야 하는지를 묻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자 사울은 분노를 느낀 나머지 모든 백성을 불러 모아 누구의 잘못인지 밝히게 하고, 누구든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신의 아들이라도 반드시 죽게 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마침내 요나단이 제비뽑기에서 뽑히고, 꿀을 먹은 죄가 밝혀지자 사울은 요나단을 죽이려 합니다(왼쪽 부분). 하지만 백성들이 반대하여 요나단은 풀려납니다(오른쪽 부분). (사무엘상 14:37-45) 14장에서 특히 사울의 경솔한 행동들이 다양하게 표출되면서 이제 15장의 결정적인 불순종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47-52에서는 사울의 업적과 그의 계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통치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그의 재위 기간의 업적을 밝히고 가계를 언급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저자가 사울의 업적과 가계에 이러한 내용을 굳이 먼저 밝히는 것은 사실상 사울의 왕의 자격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후의 사울의 행적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의 연속이며, 사울의 인생 주기에서 내리막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후의 사울의 행적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새로운 왕 다윗의 등장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사무엘하 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 사무엘상 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 사무엘상 15: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사울의 가계도

사울은 아내 아히노암을 통해 5(?)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었는데,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는 사울과 함께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 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습니다(삼상31:2). 그리고 이스보셋은 사울이 죽은 후에 아브넬의 후원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삼하2:8-10). 한편으로 이스위가 이스보셋이나 아비나답의 다른 이름인지 아니면 다른 인물인지는 분명치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딸은 메랍과 미갈이 있었는데, 메랍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후에 아내로 약속했으나 다른 사람과 결혼을 시키고 대신 미갈을 다윗과 결혼시켰습니다(삼상18:27). 사울은 또한 첩 리스바 사이에서 알모니와 므비보셋을 낳았으나 미스바의 아들들과 메랍의 5명의 아들들은 나중에 기브온 사람들에게 기브아에서 죽임을 당합니다(삼하21:7-9). 사울의 가계도(家系圖)를 보면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호리천리(毫釐千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른바 털끝 만한 차이가 나중에는 천리(千里)나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 인생 주기(Life Cycle)의 부침이 급격합니다. 처음 왕이 되기 전 사울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정도로 겸손하고 너그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갈수록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내면성과 영적 상태가 불안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으나 갈수록 왕의 지위에 중독이 되면서 교만해지고, 자기 맘대로 하는 습관성에 잦아들게 된 것입니다. 사울이 한 번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을 때 철저하게 회개하고 달라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하다가 결국 그 마음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계속 Up-and-Down 하다가 결국 밑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고 맙니다.

 

"익숙함이 경멸함을 낳는다 (Familiarity breeds contempt)"는 말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같은 일을 몇 번만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친밀해지면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처음 맛나를 먹었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요 기적이라며 놀라며 매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가 익숙해지자, 이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만나 말고 고기는 없냐고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호의와 배려가 처음에는 기적적인 은혜였지만 나중에는 호구처럼 보인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우리에게 똑같습니다.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따라서 처음 마음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렵지만 또한 그만큼 중요합니다.

  • 失之毫釐 差以千里(실지호리 차이천리)는 “아주 가느다란 털끝 같은 조그만 것을 잃어버리면, 그것이 나중에는 천리의 차이로 벌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진서晉書 우예전虞預傳>
  • 差若毫釐 謬以千里 (차약호리 류이천리)는 “처음에는 그 차이가 가는 털끝만큼 매우 작지만 나중에는 크게 어긋난다”는 의미입니다. <魏書 列傳 66>
  • 노자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 이는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것에서 나온다”라는 뜻입니다. <老子, 도덕경(道德經), 63장>

우리 주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 누가복음 16:10-12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 “He who is faithful in a very little is faithful also in much; and he who is dishonest in a very little is dishonest also in much. If then you have not been faithful in the unrighteous mammon, who will entrust to you the true riches? And if you have not been faithful in that which is another’s, who will give you that which is your own? (Luke 16:10-12, RSV)
  • He that is faithful in that which is least is faithful also in much: and he that is unjust in the least is unjust also in much. If therefore ye have not been faithful in the unrighteous mammon, who will commit to your trust the true riches? And if ye have not been faithful in that which is another man's, who shall give you that which is your own? (Luke 16:10-12, KJV)

또한 주님께서는 처음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를 준엄하게 책망하십니다.

  • 요한계시록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늘 14장을 통해서 사울이 어떻게 조금씩 내리막길 인생이 되는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도전한 요나단을 기뻐하시고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사소한 것에서 순종을 배워서, 더 큰 일에서도 순종의 덕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과 성령님의 음성과 기도를 앞세우고 나의 생각은 말씀에 조정하여 세워나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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