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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9_사무엘상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사무엘상 제13장_사울이 블레셋과 싸우다

by 적아소심 2024. 1. 17.

블레셋과의 전쟁

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사울의 불순종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무엘이 사울을 책망함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블레셋의 침입

16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17 노략꾼들이 세 대로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을 따라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 18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쪽으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 길로 향하였더라

 

무기가 없는 이스라엘

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23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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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부터 해석 또는 번역상의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말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사울이 왕이 될 때'를 사십 세로 보고 있으며, 다스린 지 2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 다른 번역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는 사울이 왕이 된 때를 삼십 세로 읽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사본) 성경에는 나이가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영어로 표기한다면 "Saul was a son of one year in his reigning and two years he reigned over Israel"인데, 우리말로 딱히 번역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사울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름 부음을 받는 사건(삼상 10:6)부터 왕으로 확정된 때(삼상 11:15~13:1)까지는 1년이 흘렀고, 사울이 왕으로 확정된 때로부터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때까지는 2년이 흘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나이를 말하지 않으므로, '사울이 왕이 된 지 1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을 2년 통치하였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많은 영어 성경 또는 우리말 성경이 사울이 왕이 된 때를 30세 또는 40세로 보고 있는데, 이는 사도행전 13:21절 말씀(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과 사울이 태어난 년도 또는 사망 연도를 추정하여 왕이 된 나이를 역산하여 삽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아래는 사울의 왕이 된 때에 대한 각 성경별 번역 내용입니다. 종교개혁 시기의 영어 성경이 주로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삼십 세에 왕이 됨 English Revised Version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New International Version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over Israel forty- two years.)
New Living Translation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for forty-two years.)
Berean Study Bible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over Israel forty-two years.)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for forty-two years over Israel.
NASB 1995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forty two years over Israel.)
Amplified Bible
Christian Standard Bible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GOD'S WORD® Translation 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
NET Bible
사십 세에 왕이 됨 NASB 1977 (Saul was forty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thirty-two years over Israel.)
World English Bible (Saul was [forty]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American Standard Version (Saul was forty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나이를 말하지 않음 Revised Standard Version (Saul was ...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and two years over Israel.)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Saul was a young man when he became king, and he ruled Israel for two years.)
New Heart English Bible (Saul was?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forty years over Israel.)
Darby Bible Translation (Saul was ...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1세에 왕이 됨 English Standard Version (Saul lived for one year and then became king, and when he had reigned for two years over Israel,)
1세의 아들 Douay-Rheims Bible (Saul was a child of one year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Catholic Public Domain Version (When he began to reign, Saul was the son of one year, and he reigned over Israel for two years.)
1년 다스림 King James Bible (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New King James Version (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King James 2000 Bible (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American King James Version (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A Faithful Version (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more years over Israel,)
Webster's Bible Translation (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Geneva Bible of 1587 (Saul nowe had beene King one yeere, and he reigned two yeeres ouer Israel.)
Bishops' Bible of 1568 (Saul now had ben king one yere (& he raigned two yeres ouer Israel.))
Coverdale Bible of 1535 (Saul had bene kynge one yeare, and wha he had raigned ouer Israel two yeares,)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의 원인은 먼저 이스라엘이 제공하였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 2년이 지난 후에 평화로운 시기가 계속되자 소집한 군대 중에 3천 명만 남겨놓고 모두 각자 지파로 복귀시켰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던 2천 명은 사울이 지휘하여 믹마스와 벧엘 산에 주둔시키고, 나머지 1천 명은 요나단을 지휘관으로 삼아 기브아에 주둔시켰습니다(1-2). 그런데 기브아에 주둔하고 있던 요나단의 군대가 게바(Geba)에 주둔하고 있던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여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블레셋은 즉시 병거 3, 마병 6천 명 등 어마어마한 병력의 군대를 파병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4). 4절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니바아쉬(נִבְאַשׁ/基:בָּאַשׁ/바아쉬)'인데, '악취가 나다(to have a bad smell, to stink)' 또는 '혐오하다'의 수동태형으로 '미움이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Israel also was had in abomination with the Philistines."로 번역됩니다(KJV).

 

역사적으로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블레셋의 아비멜렉과 화친조약을 맺어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이후에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어야 할 이방 족속에 포함되면서 원수로 지내게 됩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시대로 오면서 이스라엘은 강력한 블레셋 민족으로부터 많은 압제와 고통을 당합니다. 그들 입장에서 최근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강력하고 어머어마한 병력의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이 점령한 게바(Geba) 바로 건너편에 있는 믹마스(Michmash)에 주둔하여 군사작전을 개시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비백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고, 어떤 사람들은 동쪽으로 도망쳐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갔습니다. 사울은 병력을 소집하기 위해 아직 길갈에 있었지만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고 있었습니다(5-7).

 

아래 지도에서는 당시의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절체절명의 전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단 군대가 호기롭게 블레셋을 쳤지만 블레셋이 일어서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지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상 13장 사건에 따른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이동 경로

전쟁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다윗은 소년이었을지라도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이 믿음으로 도전하며 나아갔습니다. 이런 어린 다윗과 달리 이미 장성하여 왕이었던 사울조차도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사무엘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들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혀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또한 7일을 기다리라는 사무엘의 명령도 무시하고 본인이 직접 제사를 드리고, 또한 책망받을 때도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변명하는 사울은 하나님을 실망하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블레셋에 대한 기원이나 성서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마지막 부분에 별도로 설명을 하겠지만, 당시 블레셋은 지중해에서 강력한 해양민족으로 강대국이었던 이집트까지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블레셋 전차병의 모습 (Philistine chariots), source: God's War Plan(https://godswarplan.com/bible-)

철기 문명을 이루고 있었던 블레셋은 철로 된 무기로 무장하고 전차부대를 운영할 정도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청동기 문명시대에 살고 있어서 제대로 된 무기를 지니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으로부터 무기는 살 수 없었고, 오직 농기구만 살 수 있었습니다.

'엠마누엘 드 루제'가 메디넷 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무덤 신전 북쪽 벽을 번역한 위 작품은 작품 유명한 &ldquo;델타 전투(이집트와 블레셋의 전투)&rdquo;의 장면입니다. <Emmanuel de Roug&eacute;'s translation of the North wall of the mortuary temple of Ramesses III at Medinet Habu This famous scene shows what has come to be known as the Battle of the Delta.>

위 그림은 람세스 3세 당시의 애굽과 블레셋의 전쟁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해양민족인 블레셋이 애굽(이집트)에 침략하자 람세스 3세가 이를 물리쳤습니다. 위 벽화를 통해 블레셋의 문명이 매우 발달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직 청동기 문명에 있을 때 블레셋은 철기 문명시대로 철병기와 전차부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해양민족인 블레셋은 지중해 및 근동에서 잔인하고 강맹한 전투민족이었습니다.

사무엘에게 책망받는 사울
질책하는 사무엘과 변명하는 사울
한스 홀바인 더 영거(1497/98-1543), 사울을 저주하는 사무엘, 바젤 쿤스트 뮤지엄 <Hans Holbein the Younger(1497/98&ndash;1543), Samuel Cursing Saul, Kunstmuseum Basel>
존 싱글턴 코플리(1738-1815), 사무엘이 책망한 사울, 1798년, 보스턴 미술 박물관 <John Singleton Copley(1738&ndash;1815), Saul Reproved by Samuel, 1798, Museum of Fine Arts Boston>

사무엘이 정한 기한인 이레가 지나도록 길갈에 오지 않자(8a), 이에 군사들이 동요하며 이탈하기 시작합니다(8b). 그러자 사울마저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직접 출전을 위해 제사를 드립니다(9). 사울은 결국 사무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자기 나름대로 행합니다. 사울의 불순종 원인이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였을까요?

 

사무엘이 사울에게 준 7일간의 시간은 사무엘이 길갈로 충분히 가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7일간이란 시간은 지금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너무 무모할 만큼 긴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바로 응답을 주지 않으시고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긴 시간 동안 믿음으로 기다리도록 하셨습니다. 사울에게 7일이란 기간은 죽을 것 같은 초조함, 조급함,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분노로 아마 마음이 요동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 앞에서 근신하고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조급하고, 두렵고 불안정한 심령에는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 내면에 평강과 고요을 얻고, 용기를 북돋을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이미 하나님의 강력한 영을 입고 다른 마음을 얻고 예언하였던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울에게 있어 이 7일간은 지난 2년 동안 왕 노릇 하면서 높아진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모든 민족과 국가, 그리고 각 사람의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다시 회복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의 신앙훈련 중에서 가장 강력한 수단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인데, 이는 시간의 연단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한 마디로 사울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 사무엘하 7: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그런데 문제는 꼭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마지막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한번 실수한 것 때문에 터질 수 있습니다. 인생사는 묘하게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마지막 그 찰나의 시간을 참지 못하여 실패할 경우가 많습니다. 사울이 그 제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공교롭게도 그때 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맞아들입니다(10). 그 마음이 얼마나 좌불안석일까요? 꼭 신앙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하고 중단하는 때가 사실은 실패하는 지점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많이 기다렸다고 생각되면 다시 돌아가면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매몰원가(sunk cost) 때문에 그것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쁜 것은 빨리 털어낼수록 좋지만 영적이고 하나님의 훈련에 관한 것이면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전국책(戰國策) 7권 진책 5(秦策 五) 103. 위진왕(謂秦王)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 "詩云:行百里者, 半於九十. 此言末路之難(시운: 행백리자, 반어구십, 차언말로지난)" 
  • "《시경(詩經)》에 '1백 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가서도 절반 왔다고 여기라'라고 하였으니, 이는 마지막 마무리가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논어주소 자한 제9. 19(論語注疏2, 子罕 第九, 19)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 "子曰, 譬如爲山(비여위산)에 未成一簣(미성일궤)하야 止(지)면 吾止也(오지야)며 譬如平地(비여평지)에 雖覆一簣(수복일궤)나 進(진)이면 吾往也(오왕야)니라"
  • "공자왈, '산을 만드는데 비유하자면 한 삼태기의 흙을 〈붓지 않아 산을〉 이루지 못하고서 그만두면 나도 〈도움을〉 그만두며, 평지에 비유하자면 한 삼태기의 흙을 부었으나, 나아가서 〈그 일을 계속하면〉 나도 가서 〈돕는다.〉'"

이를 다시 다듬어서 표현한다면, "비유하자면 산을 만드는 자가 들인 功力이 이미 많다 하더라도 한 삼태기의 흙을 붓지 않아 산을 완성하지 못하고〉 중도(中道)에 그만두면 나는 그의 전공(前功)이 많다 하여 그를 훌륭하게 여기지 않고, 그가 뜻을 완수하려 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도 그만두고 그를 돕지 않는다."

또한 "비유하자면 평지에 산을 만드는 자가 나아가서 공력(功力)을 들이려 하면 비록 비로소 한 삼태기의 흙을 부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들인 공력이 적다 하여 그를 박대(薄待)하지 않고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뜻에 따른다. 그러므로 나는 나아가서 그를 돕는다."

 

이는 곧, 사람이 도(道)를 배워 거의 완성될 무렵에 중지하면, 전공(前功)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돕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산을 만드는 것이든 평지를 만드는 것이든 마지막 한 삼태기씩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한다면 하늘이 돕는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응답하십니다. 그 응답이 실패이든, 성공이든 그것은 나중 문제입니다. 문제는 그 끝을 보느냐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 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 히브리서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 요한계시록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사무엘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사울이 즉시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 잘못을 부득이한 상황 탓으로 돌렸습니다(11b-12). 이러한 핑계는 오히려 하나님과 사무엘을 노하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번제를 망령된 행위라고 책망하고, 그로 인해 사울의 왕위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13-14a). 또한 여호와께서 사울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이미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작정해 놓으셨다고 말하였습니다(14b).

 

14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라는 구절은 영어로는 "the LORD hath sought him a man after his own heart"입니다. '그 마음에 맞는 사람'(אִ֣ישׁ כִּלְבָב֗וֹ/이쉬 킬바보) '그와 속마음이 같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과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 '레밥(לֵבָב)'인데, 삼하7:21(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에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에코처럼) 내 귀에 환청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들으려고 하는 것은 산수를 배우지 않고 바로 고등수학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도 단계를 따라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선생)을 통한 배움이든 인생을 통한 배움이든 상관없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사울이 있는 길갈을 떠나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로 갔습니다(15). 어떤 주석서에서는 사무엘이 그가 살고 있는 라마(Ramah)로 가지 않고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로 간 것을 주목하고, 사무엘이 사울을 왕위로 세울 때와 정반대의 동선으로 이동한 것은 사울의 왕권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무엘이 아직 사울에 대한 미련 또는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가 사울을 다시 볼 생각이 없다면 기브아로 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다시 회복할 기회를 얻기 위한 포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불행히도 사울은 15장에서 다시 똑같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두 번째로 왕권을 잃을 것이라는 치명적인 책망을 받게 되지만 말이지요.

변변한 무기 하나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제 사무엘에게서도 책망받고 외면을 받은 후, 사울이 자신과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 명가량 되었습니다(15b). 3천명의 수하가 6백명으로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사울의 군대는 베냐민 게바(Geba)에 진치고 볼레셋은 믹마스에 진을 쳤습니다(16). 그리고 블레셋은 전투 민족답게 그의 부대를 북, , 동쪽으로 삼대로 나누어 진격하였습니다(17-18). 전차부대가 3만이요, 기병대가 6, 그 외 보병부대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다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큰 공포를 느꼈을지는 아마도 우리의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반면에 19-22절에서는 블레셋에 대비하여 이스라엘의 열악한 전투 장비에 대해 언급하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철기 제조시설이 없었습니다(19a). 이는 블레셋이 오랜 세월 이스라엘을 압제하면서 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통제하였기 때문입니다(19b).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기는 엄두도 못 내고, 농기구를 만들고 담금질하기 위해서 블레셋으로 가야 했습니다(20-21).

 

현재 제대로 된 칼이나 방패를 가진 사람은 사울과 요나단뿐이었습니다. 그 외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기구나 청동기, 신석기 제품의 무기(?)를 가지고 싸워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거대하고 조직적인 전투 민족 블레셋과 비교하여 얼마나 자신들이 보기에 초라하고 한심하였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까요? 아무리 믿음으로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저히 비교되지 않은데 말이지요. 이제 그 불레셋이 바로 길갈 바로 건너편에 있는 믹마스에 들어와 진치고 있습니다(23).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이 조그만 바람에도 흔들리는 촛불과도 같았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까요?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 가실까요?

그 과정은 14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조> 성경에 나타난 블레셋의 기원

아모스는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믿는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으면서 그들의 역사를 블레셋과 아람(시리아)인의 역사와 비교합니다

  • 아모스 9: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Are ye not as children of the Ethiopians unto me, O children of Israel? saith the LORD. Have not I brought up Israel out of the land of Egypt? and the Philistines from Caphtor, and the Syrians from Kir? - KJV)

예레미야 47:4절에서는 또한 블레셋인의 고향인 갑돌(Caphtor as the Philistines)를 언급하며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the remnant from the island of Caphtor(שְׁאֵרִ֖ית אִ֥י כַפְתּֽוֹר))"라고 말합니다.

  • 예레미야 47:4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Because of the day that cometh to spoil all the Philistines, and to cut off from Tyrus and Zidon every helper that remaineth: for the LORD will spoil the Philistines, the remnant of the country of Caphtor.-KJV)

갑돌(Caphtor) (이집트 기록의 케프티우/Keftiu)은 아마도 크레타 섬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일부 학자들은 키프로스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블레셋은 가나안 땅 남서쪽의 비옥한 해안 지역을 점령했습니다. 그들은 도시 국가인 스파르타처럼 어릴 때부터 전쟁 기술을 훈련받은 전사들의 나라였습니다(사무엘상 17:33). 블레셋의 지리적 위치, 전쟁에 임하는 태도,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열망으로 인해 블레셋은 고대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납고, 가장 난공불락의 적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0:13과 역대상 1:11에 따르면 블레셋은 이집트(애굽)의 후손인 반면,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에서는 블레셋이 가나안의 원주민으로 등장합니다. , 블레셋은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으로 함의 아들 미스라임과 손자 가슬루힘으로 이어집니다(창세기 10:13~14, 역대기상 1:8, 11~12).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가나안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때때로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묶이기는 하지만 가나안 사람이 아닙니다(13:3).

 

블레셋에 대한 최초의 성경적 언급은 창세기에 나와 있습니다. 기원전 1860년 이삭이 태어나기 전의 아비멜렉은 그랄 왕(창세기 20:2)으로 불렸고, 나중에는 이 사람들의 통치자(26:1)로 불립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날 동안"(창세기 10:19, 21:34) 그랄 성읍과 그 주변에 있는 그들의 땅에 머물렀습니다. 나중에 그의 아들 이삭도 그들과 함께 거주하셨습니다(26:6). 그들은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블레셋 땅에서 여러 날을 살았습니다. (창세기 21:32-34).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의 역사는 출애굽 시대에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애굽(이집트)의 속박에서 벗어난 직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블레셋 영토를 통해 약속의 땅으로 직접 가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시간도 최대한 단축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를 향해 남쪽으로 가도록 하셨는데, 이는 당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블레셋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홍해로 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로가 백성을 해방하였을 때, 하나님은 블레셋 땅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직면하면 마음을 바꾸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로 향하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13:17-18).

 

여호수아 당시 블레셋의 다섯 주요 도시는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으로 각각 군주(왕자)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여호수아 13:3). 영토 내의 작은 도시로는 지글락, 기브온, 게르, 게라가 있습니다.

 

블레셋의 도시 가사, 가드, 아스돗에는 아낙의 자손(민수기 13:28, 33, 여호수아 11:22)으로 알려진 거대한 전투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드에 살았던 골리앗은 키가 9피트 6인치(2.9미터)80파운드(36.2킬로그램) 무게의 전투복을 입고 17파운드(7.7킬로그램)의 머리에 창을 던졌습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거인들과 여러 차례 싸웠습니다(사무엘상 17, 사무엘하 21:15~20).

 

여호수아가 죽은 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함에 따라 약속의 땅에서 이방 민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늦추기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은 블레셋 백성의 지속적인 거주를 허락하셔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거부하고 타락할 때 그들을 징계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3:1~4).

 

<사사 시대>

사사 시대에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블레셋을 통하여 그들을 낮추고 바로잡으셨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이 수많은 거짓 신을 섬기며 우상숭배라는 심각한 죄를 지었을 때, 여호와께서는 요단강 서쪽의 백성들을 압제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10:6~7). 이 블레셋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적의 용사 삼손의 기적적인 탄생이 필요했습니다(13~16).

 

사무엘 시대에도 블레렛은 이스라엘의 가장 크고 두려운 적으로 시련과 갈등을 통해 이스라엘을 바로잡는 데 사용되었습니다(삼상 4-7, 12:9).

 

<사울왕 시대>

이스라엘은 355년 동안 유일한 왕이셨던 하나님의 통치를 완전히 거부하고 인간 통치자를 요구합니다(삼상 8). 하나님은 그들의 강퍅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기 위해 사울을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우셨습니다(삼상 9:16-17). 사울은 결국 그의 통치 동안 블레셋과 여러 번 싸우게 됩니다(삼상 14:52).

 

사울이 왕이 된 지 40년 후,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은 이 난공불락의 블레셋을 사용하여 사울의 시대를 마감하고 다윗 왕국을 세우십니다(삼상 15, 22, 28, 역대상 10:13~14 참조). 또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는 사건(삼상31)을 통해 블레셋의 잔인함도 함께 드러나게 됩니다(대상 10:8-10, 삼상 31:8-13 참조).

 

<다윗왕 시대>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삼상 17).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블레셋과 무려 13번이나 전투를 벌입니다(사무엘상 17, 18:17~27, 19:8, 23:1~5, 사무엘하 5:17~25, 21:15~20, 23:9~16). 다윗이 생애 마지막에 가서야 블레셋에게 큰 타격을 주어 그들이 적어도 130년 동안은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역대상 18:1). 그리고 솔로몬의 통치기간 내내 조공을 바치도록 했습니다(주전 970-930, 왕상 4:21).그러나 기원전 843, 그들과 아랍 동맹군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왕실 포로들을 포로로 잡은 후 왕궁을 약탈합니다(역대하 21:16~17).

 

<왕국 분열 이후>

블레셋은 난폭하고 전사적인 민족으로 결국 다시 일어나 이스라엘에 도전합니다. 항상 적의 약점을 노리는 블레셋은 기원전 930년 이스라엘이 분열된 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침략을 감행합니다.

 

첫 번째 침공은 여호람 왕의 유다 통치 말기인 843년경에 일어납니다(역대하 21:16~19). 하나님께서는 블레셋과 아랍인들을 일으켜 유다 왕국에 대항하게 하시고, 이들은 유다 영토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승리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왕궁의 모든 재물을 약탈합니다. 그들은 또한 왕의 모든 아내와 거의 모든 아들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유다로 올라와서 침입하여 왕의 집에 있는 모든 물건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내들을 빼앗아 갔으므로, 그의 아들 중 막내 아하시야 외에는 아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역대하 21:16-17).

 

아하스 왕의 통치 기간(735~715) 동안 블레셋은 유다의 남쪽 국경을 성공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들은 유다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유다로의 이민 정책을 펼쳤습니다(역대하 28:18).

 

<예언자 시대>

이스라엘 최악의 숙적인 블레셋의 오랜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블레셋에 대한 종말적 예언을 많이 하엿습니다. 주전 796년 아모스(1:6-8)를 시작으로 이사야(11:14), 예레미야(25:20, 47:1-7), 스바냐(2:4-7), 에스겔(25:15-16), 요엘(3:4-8), 오바댜(1:19), 마지막으로 520년경 스가랴(9:5-7)가 블레셋에 대해 예언합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부터 당한 고난과 시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화인류학적으로 고대 근동의 기록과 유적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빛을 비추고 있을까요?

 

이집트(애굽) 기록에 나타난 블레셋인

"펠레셋(Peleset)"은 람세스 3세의 재위 5년과 8(기원전 1182~1179년경)의 기록에서 처음 언급됩니다. 이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민족들과 함께 육지와 바다에서 애굽을 공격하러 온 "섬들"의 적들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KRIT V: 34-35). 현대 학자들은 이 국가들을 통칭하여 "해양 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이집트(애굽) 학자들은 펠레셋을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히브리어: 펠리쉬팀/Pelishtim)과 동일시했고,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 남부 해안 평야 유적지에서 나온 에게해 양식(그리스 양식) 유물을 블레셋 침략의 산물로 추정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문헌 자료와 자료들을 결합하여 블레셋과 고대 근동 역사에서 블레셋의 역할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집트(애굽) 기록은 블레셋을 "이방 나라들이 그들의 섬에서 음모를 꾸몄다."(KRIT V: 34-35)라고 언급하여 그들의 고향을 (아모스와 예레미야가 모두 제안한 대로) 에게해 섬에 위치시켰습니다. 이집트 자료에는 이 섬들의 정확한 위치가 나와 있지 않지만, 같은 "해양 민족""북쪽 이방 나라"로 번갈아 언급되고 있습니다.

 

"해양 민족" 동맹국의 이름과 고대부터 현재까지 알려진 지명 사이의 명칭 유사성에 따라 보다 구체적인 기원이 추정됩니다. 따라서 다누나는 호메로스의 다나오이, 블레셋은 팔레스타인, 셰켈레쉬는 시칠리아 등으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해양 민족"의 고향은 그리스 본토, 에게해 섬, 크레타 섬, 키프로스, 서부 아나톨리아 및 그 연안 섬, 시리아, 심지어 지중해 서부의 시칠리아 및 사르데냐와 이탈리아 본토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러나 '해양 민족'의 정확한 기원은 어원학적 고찰을 통해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적 분석 - 블레셋 종 모양의 그릇

전형적인 블레셋 종 모양의 그릇

일부 "해양 민족"의 기원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도 결정적이지 못했습니다. 블레셋 유적지의 가장 뚜렷한 특징인 블레셋 도기(미케네 IIIC:1b 양식)는 아직까지 에게해의 특정 지역과 명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양식은 키프로스 및 키릴리아 도자기의 유형학적 분파로 인식되고 있으며, 반면에 장식 양식은 크레타 섬, 도데카네소스 및 서부 아나톨리아에서 알려진 모티프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애굽) 미술의 증거

기원 문제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은 메디넷 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무덤의 부조에 있는 이집트인의 '해양 민족' 묘사에 근거한 것입니다. "해양 민족"의 깃털 달린 모자와 뿔 달린 모자는 에게해의 머리 장식과 비교되었고, 그들의 배는 미케네의 묘사와 비교되었지만, 이집트(애굽)의 상징적 관습에 따르면 그들의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은 히타이트 또는 아시아계였습니다. 따라서 도상학적 증거와 고고학적 증거 모두 애매한 '해양 민족'의 기원을 한 가지로 지목할 수 없으며, 이질적인 민족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융합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어떻게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게 되었을까요?

 

문명의 파괴자 - 이집트(애굽) 비문에는 이집트에 도착하기 전 '해양 민족'이 일으킨 혼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이방 민족은) 그들의 섬에서 음모를 꾸몄다. 전투에서 제거되고 흩어진 땅은 한때 땅이었다. 하티에서 시작하여 코데, 카르케미쉬, 아르자와, 알라시아는 [한꺼번에] (모두) 끊어졌으니, 그 어떤 땅도 그들의 무기에 대항할 수 없었다. 아무루의 한 곳에 [진영이] 설치되었다. 그들은 그 사람들을 죽였고, 그 땅은 한 번도 생겨난 적이 없는 땅과 같았다. 그들은 불이 그들 앞에 준비된 대로 이집트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들의 동맹은 블레셋, 시킬라, 세켈레쉬, 다누나, 웨셰쉬가 연합한 땅이었다." (크리트 5: 34-35)

따라서 "해양 민족"은 청동기 시대 말기 레반트 유적지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파괴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시로-가나안 도시와 레반트 북부의 수많은 파괴층은 "해양 민족"의 공격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의 종말에 기여한 사회적, 경제적, 생태학적 요인이 다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연구 결과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후기 청동기 시대 말기에 전 세계적인 가뭄이 민족의 이동에 미친 영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뭄의 증거는 최근 지중해 동부의 꽃가루 기록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참조>: 레반트(Levant)는 역사적으로 근동의 팔레스타인(고대의 가나안)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이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정 지역을 명확하게 가리키는 용어라기보다는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지닌 지역을 아우르는 용어로 대략 그 범위는 북쪽으로 타우루스산맥, 서쪽으로 지중해, 남쪽으로 아라비아 사막, 동쪽으로 북서 이라크를 경계로 하는 지역을 가리킵니다.

 

레반트 해안의 대량 정착민

청동기 시대 후기 제국의 황폐화에서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즉 그들이 황폐화의 주요 원인이었든 기후 재해를 이용했든 간에, '해양 민족'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레반트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양민족과 육지에서의 전투, 라메세스 3세 무덤 벽 부조, 메디넷 하부

해양 민족이 더 많은 땅을 찾아 이주했다는 생각은 메디넷 하부의 람세스 3세 부조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이 부조는 학살당한 적과의 재래식 전투 장면에서 여성, 어린이, 비전사자를 실은 군사용이 분명하지 않은 소 수레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초기 철기 시대의 다양한 레반트 유적지에서 현지에서 생산된 에게해 스타일의 도자기가 발견된 것도 이주 가설을 뒷받침하는데, 소규모 정복 전사 무리는 그들이 남긴 나라의 스타일로 도자기를 생산할 시간이나 자원이 없었습니다.

 

가나안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20왕조(기원전 1187~1064년경), 특히 람세스 3세(1186~1155년) 시대에 이집트의 영향이 상당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블레셋의 정착이 이집트의 통치를 방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집트의 쇠퇴를 뒤따랐다는 이론이 유력합니다.

 

점진적 정착 - 이집트의 점진적 쇠퇴

최근 레반트 북부 지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아무크 평원(터키/시리아)'에 위치한 새로운 블레셋 정착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알레포의 폭풍의 신 신전에서 발견된 비문에서 팰리스틴의 타이타라는 이름이 밝혀졌습니다. 이제 이스켄데룬 해안뿐만 아니라 오론테스 계곡의 다른 세 곳의 비문에서도 팔리스틴이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새롭고 흥미로운 발견은 "해양 민족"이 처음에는 레반트 북부에 정착했다가 이집트가 가나안에 대한 지배권을 점차 상실한 후에야 팔레스타인으로 진출했음을 시사합니다.

 

생활 방식

고고학 유적에서 재구성 된 블레셋의 생활 경제는 양, 염소, 소 및 돼지로 구성된 농업 및 목축 기반 생활을 보여줍니다. 돼지는 레반트 남부의 후기 청동기 시대 초기 유적지에서는 흔하지 않고 새로운 블레셋 정착지에서만 높은 빈도로 나타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최근 철기 시대 초기 레반트 남부에서 발견된 고대 돼지 뼈의 DNA를 연구한 결과, 돼지가 유럽인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돼지가 "해양 민족"에 의해 레반트에 함께 유입되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기술

블레셋 사람들은 이주 과정에서 이전에는 레반트 남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과 기술을 가져왔습니다. 점토로 만든 베틀 추는 혁신적인 직물 생산 방법을, 직사각형 난로는 새로운 난방 및 요리 기술을 증명합니다. 성경은 이들이 전문 야금기술자였음을 암시하지만(특히 삼상 12:19-22 참조), 텔 에스 사피(고대 "가드")의 유적은 청동과 철 도구를 만드는 금속 공방의 존재를 증명하지만 고고학적 기록에 의해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결론

블레셋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블레셋의 고고학적 조사에 비추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에게해의 이민자라는 것은 비교적 확실해 보이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레반트 해안에 정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세부 사항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 수수께끼 같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비밀이 밝혀질 것입니다.

(cf. 고고학적 설명에 대해서는 로잔 대학교 신학부의 셜리 벤-도르 에비앙 박사의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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