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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9_사무엘상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사무엘상 제8장_백성이 왕을 요구하다

by 적아소심 2023. 12. 27.

사무엘상 8

 

백성이 왕을 요구하다 (1-9)

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사무엘의 경고 (10-18)

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하나님 왕을 허락하시다 (19-22)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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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8~10장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정치, 사회 시스템이 가나안에서 정착한 이후 350여 년간 유지되어 오던 사사제도(지파 분권, 신정체제)에서 중앙 집권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왕정 체제로 대전환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정을 요구한 표면적인 이유는 사사로 임명된 사무엘의 두 아들의 부정부패에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늙자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하여 사사직을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들은 청렴결백한 아버지와는 다르게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등 부패하였습니다(1-3). 이스라엘 백성들과 장로들은 예전에 엘리의 아들들의 부패와 그로 인한 고통을 충분히 경험하였기에 사무엘에게 나아가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4-5).

 

그러나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정을 요구한 데에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주변 국가들과의 정치, 외교 관계에서 대등하거나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지파 동맹 체제인 사사제도로는 주변 열강들에게 정치, 외교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주변 열강과 대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체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무엘 아들들의 부패를 기회로 사무엘에게 왕정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둘째는, 국가의 국방과 안보체제를 다른 나라처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사제도 하에서 이스라엘 지파가 연합동맹하는 체제로는 주변 국가로부터 침략을 당할 때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동안에는 전쟁의 위기 순간마다 사사들이 일어나 나라를 구하였지만 백성들은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나라가 이방의 침입을 받지 않는 강력한 국가가 되기를 희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왕정제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19-20). 그래서 그들은 왕정 제도가 그들에게 무거운 굴레를 지워줄 것이라는 경고(10-18)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하게 왕정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 장로들의 왕정 요구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또한 민족을 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미 모세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17:14-1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장로들의 왕정 요구는 표면적으로 보아서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오히려 시기적으로 적절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요구한 이면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신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정 요구와 관련하여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8:7).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신정 국가였습니다. 350년 동안 이스라엘은 비록 왕이 없었지만 창조주요 만왕의 왕으로서 온 세상 만물과 인간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진정한 왕으로서 다스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민족의 침입이나 국가의 쇠락이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보호하시지 못한다는 불신에 빠져 하나님 없이 정치체제라는 겉모습만 바꾸어 다른 나라들과 같은 인본주의 국가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때마침 사무엘의 두 아들의 부정부패는 그들에게 좋은 동기부여를 제공해 준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정 요구에 대하여 이스라엘에 왕정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세 차례나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7,9,22). 더욱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를 직접 택하시고 사무엘에게 기름을 붓게 하는 등 백성들의 왕정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동기를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이스라엘의 왕정 요구는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그 자체는 악할지라도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는 하나님이 이미 작정하신 것이므로 백성들의 요구를 기점으로 하여 허락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신 이유는 그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유 의지(free will)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부여하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요구 동기가 비록 악할지라도 그들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여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가 허랑방탕한 아들에게 유산을 내어 준 것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 의지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자기 결정권에는 당연히 자기 책임이 따르지요. 우리 인간은 자기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들이 왕정제도를 요구한 결과로 그들이 겪어야 할 노역과 고통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 솔로몬, 르호보암 그리고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서의 왕들의 죄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들의 죄와 잘못된 통치로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참혹한 결과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또한 일반 역사에서도 개인적 선택이든 공동체적 선택이든 국가적 선택이든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얼마나 신중한 선택과 결정이 요구되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무엘과 두 아들, 제임스 티소 (Samuel and His Two Sons by James Tissot)

사무엘과 두 아들이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는데, 두 아들은 아버지 사무엘로부터 심한 책망을 받은 표정이고, 사무엘의 표정은 밝지가 않아보입니다. 오늘 심각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분위기 입니다. 

 

1절에서 사무엘이 늙어서 아들들을 사사로 삼았습니다. 사무엘의 생애에 대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엘리가 죽는 큰 재앙이 일어났을 때 이 젊은 선지자는 겨우 서른 살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의 궤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20년 동안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영적 타락을 책망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많은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에벤에셀에서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했을 때 사무엘의 나이는 거의 50세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에벤에셀에서 블레셋의 멍에를 벗어던진 날과 8장에서 길게 언급된 사건들, 즉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사건 사이에는 또 다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블레셋이 에벤에셀에서의 패배의 후유증을 회복하고 적어도 가나안의 남부 지역에서 다시 영향력을 구축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히브리 주석가는 당시 사무엘의 나이가 70세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1절 하반절에서 사무엘은 그 두 아들을 사사(judges; 재판관)로 임명하여 그들도 함께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시대까지 사사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무엘은 엘리의 영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들들을 사사로 임명하여 브엘세바에서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의 사례를 통해 아들들에게 결코 세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년의 연약함이 그의 고단한 삶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들면서, 그래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것은 아들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늙은 사무엘이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들들을 정식 사사는 아니지만 자신의 업무를 보조하는 정도로 권한위임을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리고 결국 부정부패를 함으로써,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되고, 이것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정을 요구하는 명분상의 계기(실질적 동기는 다르겠지만)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사무엘도 여느 아버지처럼 두 아들이 믿음의 아들이요 영적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뜻대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자식입니다. 사무엘이 두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아들에 대한 사무엘의 비전과 소망을 알 수 있습니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이라는 뜻이고, 아비아는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두 아들은 그의 뜻대로 성장하지 못하였습니다. 엘리의 아들보다는 덜 했겠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재판을 굽게 하였고, 그것이 백성의 원성을 쌓았습니다.

 

2절 원어에서 보면 사무엘의 두 아들은 브엘세바 안에서 사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שֹׁפְטִ֖ים בִּבְאֵ֥ר שָֽׁבַע׃; 쇼페팀 삐브엘 쉐바" "they were judges in Beersheba." , 그들은 이스라엘 전역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사무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브엘세바에서만 사사의 직분을 감당한 것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임명하시는 사사의 직분을 본인이 임명하는 월권행위를 한 것은 확실합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의 세습행위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대해 특별히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신 것을 보면 사무엘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두 아들 중 한 명은 브엘세바에 남았지만, 다른 한 명은 북쪽 땅에서 '심판'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성경 기록을 보충합니다.

제임스 티소(1836-1902), 라마에서의 사무엘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하다(Israel Demands a King)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

 

4,5절에서 드디어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모여 사무엘이 있는 라마까지 찾아가서 사무엘에게 왕을 요청합니다. 5절의 원문을 보면, (וַיֹּאמְר֣וּ אֵלָ֗יו הִנֵּה֙ אַתָּ֣ה זָקַ֔נְתָּ וּבָנֶ֕יךָ לֹ֥א הָלְכ֖וּ בִּדְרָכֶ֑יךָ עַתָּ֗ה שִֽׂימָה־ לָּ֥נוּ מֶ֛לֶךְ לְשָׁפְטֵ֖נוּ כְּכָל־ הַגּוֹיִֽם׃) - “and said to him, “Behold, you are old and your sons do not walk in your ways; now appoint for us a king to govern us like all the nations.”입니다. 좀 더 원문에 맞게 직역하면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이제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히브리어 원문에 있는 '이제'라는 뜻의 '앗타(עַתָּ֗ה)'는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확실하게 번역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단어는 앞에 나온 '보소서'로 번역된 감탄사 '힌네(הִנֵּה֙)'와 더불어 이제 왕을 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더 이상 왕의 선출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며 강권하는 어조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5절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한 사람의 반대 없이!) 왕정을 요구한 이유가 "모든 나라와 같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답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행동의 근거를 찾기보다는 무작정 이방인들의 정치 체제를 모델로 삼았던 것입니다. 특히 원문으로 볼 때 모든 나라와 같이에 해당하는 "케콜 학고임"(כְּכָל־ הַגּוֹיִֽם׃)5절 마지막에 위치하여 한층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장로들의 요구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사가 아닌 다른 모든 나라들과 같은 왕을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소원이 담고 있는 것은 정치적인 안정이었는데, 그들은 지금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강한 왕이 나타나 강력한 러더십으로 자신들을 이끌 때 더욱더 효과적으로 나라가 번영하고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장로들의 말과 달랐습니다.

 

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말하며 왕을 임명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구는 정당하게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들의 부정부패와 독재로 인해 많이 지쳤을 것이고, 또한 당시 근동에서 유일하게 신정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이스라엘이 너무 뒤떨어진 제도 때문에 개혁을 하지 못하여 주변국들보다 약하여 늘 침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들이 왕을 요구하는 이유가 일견 그럴듯한 명분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6절에서 장로들의 말과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무엘은 이 문제에 대해 주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7-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사무엘은 고별 연설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책망했습니다.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삼상12:17)"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상12:19에서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라고 응답하였습니다.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젠가 왕을 구할 것이라고 신명기 17:14~15절에서 예언하셨습니다.

 

신17:14-1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다른 구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언젠가 왕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36:31, 49:10, 민수기24:7-9, 신명기28:36에서도 미래의 왕에 대한 비슷한 언급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왕을 구하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는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백성들을 인도하셨고,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 세워진 제사장과 사사들을 통해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사무엘의 아들들이 주님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다음 지도자가 누가 될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의 왕에 대한 요구는 자신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을 요청한 것이 잘못된 또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되기 위해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한 민족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지도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원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택하심과 구별된 삶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님이요 왕이 되셔야 하는데, 그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왕을 세워 다른 신과 우상을 섬기는 세상 나라들을 부러워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은 노예 생활에서 구출해 주시고, 광야에서 먹여 주시고, 적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심판하고, 자신들보다 앞서서 싸우고, 자신들과 싸워줄 왕을 요구했습니다(삼상8:20).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거부한 왕은 그들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셨던 유일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재판관이 되셨고(32:36), 그들보다 앞서 나가셨으며(13:21), 그들을 앞서 전쟁을 치르셨습니다(14:14). 이를 보면 “Familiarity breeds contempt(익숙함이 경멸을 낳는다)”라는 말이 새삼 와닿습니다. 사람이 익숙해지면 경외감도, 감사함도 사라지고, 무덤덤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호의가 호구가 되는 것이지요.

 

그들은 "다른 모든 나라들과 같은" 왕을 원했습니다(삼상8:5). 그들은 진정한 왕이신 하늘과 땅의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시고 그들의 욕망을 들어주셨지만, 경고 없이 허락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그들에게도 왕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기적이고 억압적이며 무자비한 왕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 것을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생각하여 믿음의 공동체나, 신앙생활에서의 일정 거리를 두는 경향이 많습니다. 내 삶이 구속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내가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못할 것 같은 걱정과 염려가 자꾸 괴롭혀서 무얼해도 갈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속임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정 하나님 안에 있지 아니하면 역으로 세상에 묶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장자(莊子)는 인간의 죽음을 현해(縣解)라고 하였습니다. 즉, 죽어야만 세상으로부터의 매임에서 자유로와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면 삶 자체가 사물에 얽매여서 거꾸로 매달린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사람이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이 그것을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而不能自解者 物有結之 且夫物 不勝天 久矣 吾又何惡焉).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는 세상에서 놓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10-18절에서 하나님은 왕정 제도로 인한 백성들의 받아야 할 고통에 대해 경고를 하십니다.

젊은 남녀는 징집되어 나라의 공적 목적뿐 아니라 왕 개인의 사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노동력 착취당함(11-13)

신하들에게 월봉을 주기 위해 백성들에게서 토지와 토지의 소산물을 세금으로 징수(14-15)

노비와 가축도 세금으로 거두어감(16-17)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왕의 종이 될 것임(17)

 

그리고 왕의 폭정으로 인해 부르짖어도 여호와께서 응답지 않으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왕을 요구하였습니다. (19-20)

모건 그림 성경, 1250년경 (The Morgan Picture Bible, c.1250)

왼쪽 그림에서 노쇠한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네 명의 장로가 찾아와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처럼 강대국이 될 수 있도록 왕에게 기름을 부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사무엘은 그들에게 왕이 이스라엘 백성의 자유에 미칠 위험에 대해 경고합니다. (사무엘상 8: 4-22). 오른쪽 그림은 사울에게 기름부어 그를 왕으로 삼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백성들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었습니다(21). 이 말씀을 원어에서 직역하면 "사무엘은 그 백성의 모든 말들을 다 들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두 귀에 그것들을 말했다"입니다. 이는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은 모든 말을 그대로 하나님께 말했는데, 마치 하나님의 두 귀에 대고 자세히 말하듯이 기도한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의 '배째라'식의 마구잡이식 요구에 심한 모욕감과 불괘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장으로 보면서 심한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정적으로 논쟁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상황을 아룀으로써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였습니다. 21절 말씀에서 그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품에 안겨 그 귀에 속삭이며 말하는 듯한 모습을 상상하게 합니다. 믿음의 사람 사무엘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어떠한 순간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비록 자식 교육에는 실패하고, 왕정체제에로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알아주셨고, 또한 그의 삶을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무엘을 하나님은 이런 사무엘을 지지해 주시고, 그를 존중해 주셨습니다.

 

시편 145:18-19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우리는 여기서 리더는 다툼과 논쟁의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리더는 겸손하며, 모든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와 존중은 겸손히 들을 때에 발현됩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무엘의 이런 모습을 배우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2:24-25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마지막으로 2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막무가내 요구를 마지못해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주권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요구에 좌지우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요구를 수용하시되 인간의 생각에 끌려가거나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역사를 경영하십니다. 하나님은 이후에 사울의 실패도 있었지만, 다윗을 통하여 신본적 왕정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또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모형에 대한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부활하셔서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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