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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9_사무엘상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사무엘상 제4장(上)_언약궤를 빼앗기다

by 적아소심 2023. 5. 11.

사무엘상 제4장 (1)

 

블레셋에게 패하다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이스라엘 언약궤를 부적처럼 이용하다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언약궤를 빼앗기다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루돌프 폰 엠스: 세계 연대기. 보헤미아 (프라하), 14세기 3/4 분기. 대학 및 주립 도서관 풀다, Aa 88. 마틴 롤랜드 이후의 그림 설명. fol. 209r, 미니어처 129 블레셋과의 전투 / 미니어처 130 언약궤를 때앗기다. (Rudolf von Ems: Weltchronik. Böhmen (Prag), 3. Viertel 14. Jahrhundert. Hochschul- und Landesbibliothek Fulda, Aa 88. Bildbeschreibung nach Martin Roland. fol. 209r , Miniatur 129 Schlacht gegen die Philister / Miniatur 130 Die Bundeslade wird geraubt)
벤자민 웨스트, 요단강을 건너는 여호수아 (Benjamin West, ‘Joshua Passing the Jordan’)

벤자민 웨스트, 요단강을 건너는 여호수아, 디테일 (Benjamin West, ‘Joshua Passing the Jordan’, in detail)

율리우스 쉬노르 폰 카롤스펠트(1794-1872), 여리고 전투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1794-1872), The Battle of Jericho)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아벡 전투"에서 패하여 4천 명 정도의 전사자를 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패배의 원인을 여호와께 돌립니다(2-3절). 그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은 무기나 전력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불신앙에 있었습니다.
 
아이성 패배 앞에서 여호수아 군대가 회개하던 것과 달리(수7:6,9),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은 채 언약궤를 가져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은 그래도 귀로 들은 것은 있어서 여호수가가 언약궤를 앞세우고 요단강을 건너고 언약궤가 앞장 서서 여리고 성을 7일동안 돌고 난 후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적 사건의 형식은 그대로 따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백성들의 믿음과 순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보다 언약궤를 이용하여 승리하려 하였습니다. 언약궤를 믿음과 순종의 상징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승리를 가져다 주는 부적 정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청종할 마음은 없고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할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아쉬울 때만 찾는 편의적인 대상이고, 인간적인 방식에서 이용당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만든 헛된 우상, 헛된 신학일 뿐입니다. 

게릿 블레커, 1610-1656년경,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다“, 1640, 사무엘상4:10-11 (Gerrit Bleker, c.1610–1656, Hofni and Pinehas are killed, the Ark is captured by the Philistines. “Hofni and Pinehas are killed, the Ark is captured by the Philistines” 1640, 1Samuel4:10–11)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다, 듀라 유로포스 회당의 프레스코화 (Fresco of the Philistine captivity of the ark, in the Dura-Europos synagogue)
율리우스 쉬노르 폰 카롤스펠트(1794-1872), 여리고 전투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1794-1872), The Battle of Jericho)
 

위 그림에서 날카로운 창에 찔리는 사람은 아마 홉니 또는 비느하스인 것 같습니다. 또한 왼쪽으로 언약궤를 빼앗기는 모습도 보입니다. 치열하게 대치하여 싸우는 장면에서 블레셋 군대쪽이 창이 길고 전술나 무기가 더 우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5-9절에서 언약궤를 본 이스라엘은 사기가 충만한 반면, 블레셋은 애굽인들을 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올리며 두려워합니다. 이 강한 신의 손에서 자신들을 건질 자가 없다고 생각한 블레셋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대장부가 되라고 서로 용기를 북돋는 일뿐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빼앗기고 블레셋 앞에서 참패하고 맙니다. 우리도 믿음과 상관 없는 자기 확신으로 하나님의 먼저 앞서시고 인도하심을 기다리지 못하고 주님보다 앞설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나름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결론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집요할 정도로 하나님께 묻고 또 물어 하나님의 때에 따라 가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말처럼 "Never run before God's guidance!"가 나의 삶의 pattern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0,11절에서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앞세웠지만 처참하게 패하고 제사장의 두 아들은 죽었습니다. 언약궤가 없을 때는 4천명을 잃었는데 함께할 때는 3만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이 공격한 것은 블레셋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블레셋(7절)보다도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대적이었습니다. 경외심을 잃고 하나님마저 내 욕구를 채워주는 배달부 취급하는 시대에 이스라엘의 참패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떠는 마음을 회복하라는 경종입니다. 

 

언약궤, 언약귀 덮개 부분 그룹 천사가 마주보고 있는 부분이 지성소입니다.

언약궤의 위쪽 덮개, 즉 지성소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죄를 속죄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그들에게서 떠나셨습니다. 언약궤가 탈취 당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지켜만 보시고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25:8,22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3) when it cometh among us, it may save us out of the hand of our enemies 원뜻을 보면 "그것은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는 장로들의 근거 없는 희망,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분의 임재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상징(언약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망상이었습니다. 썩어 없어지는 나무와 금속으로 된 궤는 이 성스러운 언약궤를 덮는 빛나는 자리, 즉 영광의 환상에 대한 수많은 거룩한 기억이 모인 빛나는 자비의 자리(속죄소, 또는 지성소)라고 불렸던 그 빛나는 자리에 새겨진 생명 없는 황금 천사(그룹)들에 의해 가려져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후계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인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열정적으로 촉구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예레미야7:4-7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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