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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9_사무엘상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사무엘상 2장(下)_엘리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심판

by 적아소심 2023. 3. 25.

사무엘상 2장 (22-36)

 

엘리와 그의 아들들(아들의 악행에 눈감은 엘리) (22-26)

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엘리와 그의 아들들

엘리의 아들들이 어떤 점에서 하나님의 가혹한 저주와 벌을 받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의 아들들을 심판하신 이유는 사무엘상3:13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무엘상3: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For I have told him that I will judge his house forever for the iniquity which he knows, because his sons made themselves vile, and he did not restrain them. (KJV)

 

For I have told him that I am going to judge his house forever for the wrongdoing that he knew, because his sons were bringing a curse on themselves and he did not rebuke them. (NASB)

 

For I told him that I would judge his family forever because of the sin he knew about; his sons blasphemed God, and he failed to restrain them. (NIV)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모독하였으나 엘리는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도 바로잡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삼상3:13).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탈취하고, 성전에서 여인과 동침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였는데도 엘리는 아버지이자 제사장으로서 마땅히 했어야 할 대로 그들을 바로잡거나 충고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KJV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벨리알의 아들들"(삼상2:12)로 묘사됩니다. 헬라어로 "벨리알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전염병의 아들들, 질병의 아들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양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전체 번제단에서 지방이 타는 동안 그들은 제사장의 특권으로 남은 고기, 즉 앞다리, 턱, 위와 같은 특정 부위를 멀리했습니다. 엘리 아들들의 두 가지 잘못은 첫째, 고기가 지방질에서 분리되기 전, 즉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기 전에 고기를 취했다는 점과 둘째, 제사에 관한 규칙(삼상2:12-17)에 언급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남은 고기를 취했다는 점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죄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권리를 스스로 빼앗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권을 함부로 사용함으로써 경건하지 않음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멸해서든, 탐욕에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고, 사람들에게 불쾌하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12)"라고 말하였지만, 히브리어로 말하면 (בְּנֵ֣י בְלִיָּ֑עַל / ḇə·lî·ya·‘al  bə·nê) "버네 벨리얄" 즉, "벨리알의 아들" (삼상 2:12)로 묘사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에 있었고 게다가 엘리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내적인 교제를 나누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했다면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는 문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알다"는 히브리어로 "야다(יָדַע)"인데, 이는 부부가 서로 잘 아는 관계를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안면이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인격적으로 깊이 아는 관계입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망으로만 가득 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실수(error) 끔찍한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합당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적절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삶에 위험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영적 실수는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영적 실수는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사야 28: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기본적으로 순종해야 하지만, 말씀을 자세히 듣고 말씀에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대로 순종하는 것은 결국 자행자지(自行自止)에 불과합니다. 결국 사람이 보기에(자신을 포함해서) 옳은 것 같지만 결국은 멸망의 길입니다.

두 아들에게 좋게 타이르는 엘리, 그러나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입니다.

 

엘리의 집에 내린 저주(27-36)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36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사사이면서 제사장인 엘리

하나님은 문제의 더 깊은 측면을 보셨지만 우리는 표면만 보고 그 아래는 보지 못합니다. 그는 선지자를 통해 엘리에게 아들들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알려주었습니다. 선지자가 한 말 중 하나는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삼상 2:29)라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엘리는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더 심각하게 깊어졌습니다. 엘리는 아들들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말을 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실수 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그의 명백한 경건함에도 불구하고 형벌은 가혹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행동뿐만 아니라 영적인 자녀와 교회의 영적 지도자의 행동도 조명해 줍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 자녀의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에게 콤플렉스를 주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하거나 자녀의 삶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상기시키지 않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녀의 영원한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자녀가 죄를 짓고 불경건하게 행동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 관심이없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녀를 훈련시키지 않는 그러한 부모를 성 요한 크리소스톰(St John Chrysostom)은 유아 살해라고 불렀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할 수 있도록 부모에게 보내주신 귀한 손님과도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엘리처럼 행동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도 자녀를 화나게 하지 않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험에 앞둔 아이가 학원에 가야 한다거나, 또는 쉬어야 한다는 구실로 깨우지 않고 그냥 잠을 자도록 합니다. 또는 밖이 춥고 건강이 나빠질 것이라는 구실로 자녀를 깨우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아이들이 교회에 가서 온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합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교회에 가고 싶어도 교회 예배에 가지 못하게 합니다. 

물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 때문에 부모가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형상이 되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 이상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영적 발돋움(Reaching out : The Three Movement of Spiritual Life)>에서 나오는 자녀에 대한 통찰력 있는 글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소유하여 지배하는 소유물이 아니라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선물입니다. 자녀는 우리 가정으로 들어와서 조심스러운 관심을 요구하고 얼마동안 머물다가 때가 되면 자기 나름의 길을 찾아 떠나는 가장 소중한 손님입니다. 자녀는 우리가 알아가야 하는 낯선 사람인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이 발전하고 성숙하여 결국은 그들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서로가 동료 인간임을 발견하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행로(하나님께서 뜻 두신 행로)가 있는 손님이며, 우리가 그들의 행로를 알 수도 없고 지시할 수도 없다는 점을 계속 되새기며 때가 되면, 평안한 마음과 축복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보낸 가장 귀한 손님이 제 때에 제대로 길을 떠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던 그 말씀들을 충분히 자녀에게 전해 주고 그에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은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소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삶에서 살아내며 말씀이 실제 삶에서 드러나게 하면서 권면할 때,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그리고 자립적으로 인생의 여정을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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