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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1_창세기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창세기 12장_여호와께서 아브람(아브라함)을 부르시다, 아브람(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다

by 적아소심 2023. 3. 9.

창세기 제 12장


▣ 1-9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아브라함 당시의 근동지역
Abraham's Journey to Canaan, Pieter Lastman, 가나안을 향한 아브라함의 여정, 피터 라스트만 작품
Abraham Journeying into the Land of Canaan, Gustave Dore, 가나안을 향한 아브라함의 여정, 구스타브 도레 작품

아브람의 이름이 아브라함으로 바뀌기 전,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가 만연한 갈대아 우르에 있는 그의 고향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아브람은 참 하나님이나 자신을 위해 특별한 백성을 선택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으며, 세상의 구세주가 자신의 후손 가운데 계실 것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창세기12:1-2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까요?

 

첫째, 아브라함에게서 나올 민족, 즉 이스라엘 민족과 궁극적으로는 온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도 아브라함이 약속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준비가 되었을 때 같은 약속이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해치려는 것을 막으시고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17절)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롬 3:2) 즉,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위임(신탁)에는 하나님의 율법과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 메시아를 위한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22:1-18). 이 구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언급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생의 기회를 얻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성도들에게 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갈라아서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셋째, 그의 믿음을 우리에게 본보기로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히브리서11:8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우리는 세상의 추구와 안락함을 떠나도록 부름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신실한 순종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상속자로서 우리는 그의 모범을 바라보고 미래를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우리 삶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약속을 찾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단순하고 온전히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3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믿음은 아브라함의 믿음,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우리 앞에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인내하며,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끝까지 인내하기로 결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이런 말씀은 정말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지만, 이런 자세로 살아야 하나님의 예배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 주님, 제게 이런 믿음을 주옵소서!!!)

Abram and Lot Depart Out of Haran, as in Genesis 12:4-5; illustration from the 1728 Figures de la Bible; illustrated by Gerard Hoet (1648–1733) and others, and published by P. de Hondt in The Hague; 창세기 12:4-5에 나오는 아브람과 롯이 하란을 떠나는 모습, 1728년 성경의 삽화; 제라드 호엣 (1648-1733) 과 다른 사람들이 삽화를 그렸고 , 네덜란드 헤이그의 P. 드 혼트가 출판함
Jozsef Molnar(1821-1899), Abraham's Journey from Ur to Canaan, 1850, Hungarian National Gallery 요제프 몰나르(1821-1899),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떠나는 아브라함의 여정, 1850, 헝가리 국립 미술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결단하여 떠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의 여정길은 지금과 달라서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고, 또한 멀기도 하셨습니다.

 

창11: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11: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에서 한 사람의 일생을 기술하는 방법을 보면 한 사람의 일생을 정리하고 다음 사건을 기록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25:7절에서 ”아브라함의 향년이 175세라”고 아브라함의 일생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사건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이삭이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기까지 살아있고 이후 야곱과 한 장막에 15년을 거하게 됩니다(히11:8-9).

 

창세기 11장에서는 데라의 일생이 205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먼저 표현하고, 이후 아브람은 75세때, 즉 데라 나이 145세 때 하란을 떠났고, 데라는 그 후 60년 째 되는 때인 205세에 죽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은 후에 고향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 데라가 아주 정정할 때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모든 인간적인 관계를 정리하고 고향 친척과 아버지를 떠난다는 것은 모든 삶의 기반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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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라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에게 있어 ‘라아(보다, 바라보다, 조사하다, 숙고하다, 관찰하다, 발견하다, 나타나다)’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보고 순종함으로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보게 하실 것이다)의 고백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라아’동사가 6번 반복되어 나옵니다(1, 7(2번), 12, 14, 15절). 이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라아) 땅으로 가라

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라아)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라아)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12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라아)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4절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라아)

15절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라아)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 ‘라아’동사는 창세기 13장에서 롯과 아브람이 무엇을 보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창세기 22장에서 마침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보고 순종함으로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라아), 여호와께서 보게 하실 것이다)’의 고백으로 완성됩니다.

Abraham departs out of Haran, by Francesco Bassano; 하란을 떠나는 아브라함, 프란체스코 밧사노 작품

이미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 머물 때,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 본토, 친척 집을 떠났었습니다(창11:31, 행7:2-4). 이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던 아브람 일행이 하란에 머물러 더 이상 가나안 땅으로 가지 않고 있을 때,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명령은 다시 임한 것입니다(창12:1).

 

영광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아브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비 데라가 갈대아 우르와 비슷한 환경에서 우상 장사를 하며 살 수 있었기에, 더 이상 가나안 땅으로 가려 하지 않고 하란에 머물려고 할 때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명령은 다시 아브람에게 임하게 되는데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것은 갈대아 우르에서 임했던 명령에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명령이 첨가된 것입니다. (행7:3, 창12:1)

 

이렇게 보면 아브람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는 두 번입니다. 처음 명령은 갈대아 우르에서 받은 고향, 친척 집을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아마도 이 명령에 육신의 아버지 데라를 떠나야 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 아버지를 떠날 수 없었던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여정을 출발하였고, 그것이 이루어 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육신의 아버지 데라는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여정 가운데 하란에 머물며 포기하게 됨으로, 자신의 신앙여정에도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아버지를 갈대아 우르에 두고 떠났다면 아마도 동생 나홀을 통해 보살피게 할 수 있었을 것인데, 자신과 함께 떠나도록 함으로서 이제는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란에서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것은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유일신 하나님의 신앙과 육신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의 갈등은 결국 아브람의 신앙의 승리로 나타납니다. 그는 하란에 머물고 있는 아비가 살아 있음에도 그를 떠나 가나안으로의 신앙여정을 떠납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이며 아내 사래와 조카 롯, 하란에서 얻은 많은 재물과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성경은 하란을 떠나는 아브람의 장면, 곧 창세기 12장의 기록부터 아브람의 주도하에 신앙여정을 하는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창12:2)”는 계시를 하란에 있기 전 갈대아 우르에서도 말씀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물던 아브람이 다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할 때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때문에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는 아브람과 사래의 나이로 인한 육신의 한계성, 또한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미래에 일어난다는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인간의 연약함이 먼저 앞선 듯합니다.

 

그렇기에 아브람은 자신에게 나타나 계시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났지만, 전능하시고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인간의 한계성을 극복케 하기 위해, 많은 시련과 연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역사는 아브람을 택하시고, 아브람이 인간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아담 이후 인류에 대한 구원계획을 진행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Abraham Journeying to the Land of Canaan, Giovanni Benedetto Castiglione; 가나안 땅으로 떠나는 아브라함, 지오반니 베네데토 가스틸로네 작품

란에서 모은 많은 재물과 사람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섬겼던 달 신 난나(Nanna) 또는 신(Sin)

하란 지역은 지금의 시리아 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란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결과 과거에 매우 발달된 문명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수메르보다 몇 백년 앞선 문명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나온 기록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그 문명을 세웠던 나라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에블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에블라 문명'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발굴된 점토판에 새겨진 기록을 분석한 결과 에블라 문명을 세운 왕의 이름이 '에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이 믿던 신의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그 이름은 '야'였습니다. 아마도 '야훼'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하란 시의 일부 이미지 -하란의 일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이 도시의 집들은 매우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진흙 벽돌로 만들어졌고 집의 지붕은 벌집 모양입니다. 이 집들은 "쿰베"라고 불립니다. 쿰베 집을 짓는 관습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쿰베는 매우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조는 진흙, 벽돌과, 벌집모양의 지붕으로 집을 짓습니다. 모든 쿰벳 집에는 지붕 꼭대기에 열린 구멍이 있어 집안으로 빛이 들어오고 굴뚝 역할을 합니다.

창세기 10:21절에 보면 하란에 있었던 에블라의 대문명을 암시하는 족보가 있습니다. 여기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인'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요? 어떤 잘못된 견해로 이집트에서 나온 문자를 토대로 '하비루'라는 노예에서 왔다고 하는데, 사실은 이 '에벨'이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 '히브리'입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결국 노아의 아들 셈, 셈의 아들 아르박삿, 그 아들 셀라의 아들인 '에벨'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이 에벨이 큰 문명국가를 이루었고, 에블라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정통 셈족의 국가인데, 어떤 원인에 의해 수메르인에게 멸망당하게 됩니다. 강 아래쪽의 더 강성한 국가 수메르의 사르곤 왕이 에블라를 멸망시킨 뒤 아브라함의 조상들도 끌고 갔는데, 이들이 그곳에서 우상이나 만들면서 비참하게 살다가 하나님이 영적 분별력을 주셔서 새로운 땅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데라는 가다 말고 자기 조상 에벨이 세웠던 찬란했던 나라 '에블라'의 고토 하란 땅에 머무르다가 안주하고 말았습니다. 그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침내 가나안까지 들어갔습니다. 에벨 시절에 번성하던 에블라는 수메르인들이 강해지면서 망하게 되었고, 니므롯의 제국 때 바벨탑을 세우다가 세상이 나누이게 되었는데, 그때가 벨렉의 시대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10-20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가다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Abraham's Counsel to Sarai, watercolor c. 1896–1902 by James Tissot; 사라에게 조언하는 아브라함, 제임스 티쏘 작품

아내 사래를 누이동생이라고 하자고 서로 말을 맞추는 장면입니다. 믿음의 세계에서 인간적인 지혜나 꾀는 일시적이어서 결국은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믿음으로 할 때에 처음에는 난관이 있어도 나중에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Egyptians Admire Sarai's Beauty (watercolor circa 1896–1902 by James Tissot); 애굽인들 사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제임스 티쏘의 1896~1902년경 수채화)
궁전으로 끌려간 사래, 제임스 티쏘 작품
Abraham and Sarah in the Court of Pharaoh, Giovanni Muzzioli (1854-1894), Museo Civico, Modena, Italy 파라오 궁정의 아브라함과 사라 , 지오바니 무촐리 (1854-1894), 이탈리아 모데나 시비코 박물관

아브람이 사래를 애굽의 파라오에게 빼앗긴 후 몰래 사래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목숨의 위협 때문에 사래를 바로에게 바쳤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끊을 수 없었기에 사래를 몰래 만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으로 왔지만, 거기에서 너무 지나쳐 애굽에까지 가게 되어 위험을 자초하게 되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람도 똑 같은 실수를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하게 되는데,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관심갖고 인도하십니다. 이런 아브람의 인간적인 연약한 모습이 우리에게는 한편으로 소망을 보게 됩니다.

The Caravan of Abram (watercolor circa 1896–1902 by James Tissot), 아브람의 카라반 행렬, 제임스 티쏘 작품

아브라함의 이동 행렬은 당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11대손으로 75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노아 ㅡ 셈 ㅡ 아르박삿 ㅡ 셀라 ㅡ 에벨 ㅡ 벨렉 ㅡ 르우 ㅡ 스룩 ㅡ 나홀 ㅡ 데라 족보 순서대로 노아, 벨렉, 나홀 외에는 모두가 생존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당시에도 근동 지역에서 무시할 수 없는 명문가로서의 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행렬은 결코 그 규모가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때로 성화(聖畵) 또는 성서화(聖書畵)는 우리의 믿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화가의 눈을 통해 다시 발견하게 되어 본문 묵상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적절하게 사용하면 Visio Dinina를 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림를 통해서 화가가 그리고자 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찾아보면 그 당시의 삶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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