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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1_창세기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창세기 제39장_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by 적아소심 2025. 10. 14.

창세기 39:1~23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1-12)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노예 시장의 요셉
보디발에게 팔린 요셉

 

보디발(Potiphar)은 온(On) 또는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지역의 신인 "태양에 헌신한(devoted to the sun)" 사람을 의미하며, 그래서 아마 그의 거주지는 가나안과 접한 이집트 지역인 델타 지역으로 보입니다. 보디발은 친위대장(prince of the Pharoah, captain of the guard)이라고 하는데, 경비대 대장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히브리 노예로 곧 시장에서 팔려 나갈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곧 보디발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요셉은 고위 관리의 집에서 미래 경력에 있어서 유용하고 중요한 실용적인 지혜의 교훈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중요한 일을 하실 때, 항상 그것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한 적합한 자들을 예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형통하게 하셨습니다(39:1~2).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And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he was a prosperous man; and he was in the house of his master the Egyptian.]

 

2절을 직역해 보면, "그리고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그는 형통한(prosperous)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 있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가 형통하게 되었고, 특별히 이집트의 고위 관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요셉의 형통한 삶은 보디발이 보기에도 명백하였기에, 보디발은 요셉을 집안의 관리인으로 임명한 것입니다(3-6).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보았습니다(3).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인간사에 대한 주권적인 섭리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광스럽게 여기지는 않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요셉에게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사업이 번영했고 요셉이 이 번영을 여호와의 특별한 축복에 돌렸다는 것을 증명했기에, 그는 여호와께서 요셉 때문에 자신을 축복하셨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소유의 모든 것을 감독하게 했고,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겼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이집트어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의심할 여지 없이 요셉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 언어를 배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특히 고대 이집트어와 히브리어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통하심은 그를 더욱 총명하게 하였기에 곧 그 언어를 습득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한 번에 크게 발전해서 보디발의 눈에 띄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단계적으로,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성장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에 사람이 쉽게 다듬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평소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보디발의 직책과 지위를 고려할 때,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의 충실함과 그토록 큰 책임을 감당할 능력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그를 그렇게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결국 하나님의 돌보심과 형통하게 하심으로 요셉은 곧 보디발의 눈에 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국 그 성품과 행실로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드러내게 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감독자가 된 이후 주님께서는 요셉을 위해 그 집을 축복하셨습니다(5). 아마도 하나님께서 요셉의 삶을 보시고 실제로 축복하지 않으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히브리 노예로서 모든 상황이 불리하고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충실하고 열심히 섬겼던 한 젊은이에게 특별하고 기적적인 축복이 부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축복도 보통 평범한 일들 속에서 뒤따른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세속적이고 이익을 원칙으로 하는 주인조차도 신앙과 양심의 원칙, 그리고 신실한 삶으로 뒷받침되는 요셉의 믿음의 삶을 볼 때 요셉을 등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어떤 자격으로 보디발의 시중을 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예리한 관찰의 눈으로 요셉의 뛰어난 성품과 자질을 곧 알아채고 그를 자기 집안의 신뢰할 만한 총무로 삼았습니다(6:7; 3:23 비교). 요셉의 이러한 놀라운 승진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역사였지만, 보디발이 요셉의 맡은 모든 일에서 놀라운 형통(번영)을 목격한 결과이기도 하였습니다. 보디발은 본인이 직접 먹는 음식 외에는 모든 가정 내의 일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6).

Potiphar's wife sees Joseph among the men

 

문제는 요셉의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고, 보디발의 아내가 바람기가 많은 여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눈짓을 하고 동침하기를 요구하였습니다(7). 당시 애굽(이집트)의 여성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동양 국가들처럼 고립되고 억압된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문명화된 민족에 걸맞은 대우를 받았으며, 실제로 국내외에서 많은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는 끊임없이 요셉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대 애굽 여성들은 도덕적으로 매우 방종했습니다. 음모와 방종은 그들 사이에 매우 만연한 악덕이었으며, 역사적 사료들이 이러한 방종을 너무나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아마도 같은 계급이나 비슷한 계층의 많은 사람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평범한(?) 여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요셉에게 한 저속한 접근은 그녀의 우월한 지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얼굴도 붉히지 않고 뻔뻔스러운 태도로 신호와 암시를 주고, 아마도 이전에 그런 뉘앙스의 표현을 많이 흘렸을 것입니다.

 

"동침하기를 청하니"(7b). 영어로 보면, "and she said, Lie with me."  즉, "나와 함께 자자. 지금 당장." 이러한 여주인의 요구는 혼자 사는 젊은 청년에게 매우 큰 유혹이면서 위협적이었습니다. 여주인은 그가 동의하면 그와 관계를 가지며 각종 편의를 봐줄 것이고, 거부하면 파멸시킬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17–1682),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1640~1645년 [Bartolomé Esteban Murillo (1617–1682), Joseph and Potiphar's Wife, between 1640 and 1645]
파올로 도메니코 피놀리아(1590–1645),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1622~1623년 또는 1640년경 [Paolo Domenico Finoglia (1590–1645), Joseph and Potiphar's Wife, between 1622 and 1623 or possibly circa 1640]
귀도 레니(1575-1642),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Joseph and Potiphars' Wife by Guido Reni (1575-1642)]
귀도 레니,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1630년 [Joseph and Potiphar's Wife, by Guido Reni 1630]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도망치다 (Joseph runs away from Potiphar's wife)

 

용모의 아름다움은 종종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 올무가 됩니다. 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교만을 금하며, 아름다움에 따르는 유혹에 끊임없이 경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눈이 마음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눈과 언약을 맺어야 합니다. 정욕이 힘을 얻으면 품위와 명예, 양심이 모두 희생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악을 행하기로 마음을 굳게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마귀는 세상의 고난과 시련으로 요셉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쾌락을 통해서 그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유혹을 물리치고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여인의 유혹은 요셉을 가장 쉽게 괴롭힐 수 있는 죄였습니다. 유혹하는 자가 다름 아닌 그의 여주인이었고, 그녀의 은총을 받으면 보디발의 신뢰뿐 아니라 집안 전체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녀를 무시하고 적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그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시간과 장소가 유혹에 유리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강하고 반복적인 요구가 있었습니다.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8-9)

 

요셉이 여인의 공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그의 주인께 마땅히 드려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강조합니다. 요셉은 아무리 은밀하게 행해지더라도 자신을 신뢰하는 주인과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요셉은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 즉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은 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둘째, 자신이 받은 유혹이 어떤 죄인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불륜을 사소한 일로 여길지 모르지만, 요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은밀한 불륜이 죄를 부르고, 결국 그것이 모든 관계를 파괴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셋째로, 그는 그 유혹을 하나님에 대한 죄로 여겼습니다. 그는 죄가 결국 하나님께 반하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9b)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유혹은 강하고 끈질겼습니다. 그녀는 날마다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여주인을 화나게 하면 위험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요구하면 눈 질끈 감고 그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요셉은 다가올 심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부인했고, 잠시뿐인 죄악의 쾌락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파멸에 빠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녀와 함께 있기조차 거부했습니다. 요셉은 여주인의 후안무치의 성품을 충분히 이해하였기 때문에 어떡하든 그녀와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아무도 없을 때 그녀가 요셉을 붙잡자, 그는 옷을 그녀의 손에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요셉은 유혹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유혹은 맞서 싸울만한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마치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사람처럼 극심한 두려움으로 도망쳤습니다.

 

요셉은 죄를 미워하고 피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은 유혹을 피하고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불의를 행하지 않기 위해 새가 올무에서 벗어나듯, 노루가 사냥꾼에게서 벗어나듯 도망갔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히다 (13~23)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렘브란트(1606-1669), “보디발의 아내에게 고발당하는 요셉”(시리즈)의 일부, 1655년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a Part of “Joseph accused by Potiphar's wife” (series), 1655]
렘브란트, 보디발의 아내에게 고발당하는 요셉, 1655년 (Rembrandt's Joseph Accused By Potiphar's Wife in 1655)
Jan Pynas(1581/1582-1631), 보디발의 아내에게 고발당하는 요셉, 1629, Alfred와 Isabel Bader 소장, Milwaukee [Jan Pynas(1581/1582-1631), Joseph Accused by Potiphar's Wife, 1629, Collection of Alfred and Isabel Bader, Milwaukee]
가족 소장품, 샤를 앙투안 쿠아펠, 파리 1694 – 1752, 보티파르의 아내에게 고발당한 요셉 (Property from a Family Collection, Charles-Antoine Coypel, Paris 1694 – 1752, Joseph Accused by Potiphar's Wife)
윌리암 블레이크,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Joseph and Potiphar's Wife is a painting by William Blake)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14-16)

 

요셉을 유혹하려던 것이 실패하자, 보디발의 아내는 모든 것을 요셉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요셉이 자신의 정숙함을 공격했다고 비난하며 고소합니다. 그녀는 하인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보라, 그가 우리에게 히브리 남자를 데려와 우리를 희롱하게 하였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데려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단순히 ”he“라고 언급합니다. 그만큼 여인은 남편 보디발을 평소에 별로 존경하지 않았고, 무시하는 마음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륜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요셉이 옷을 버려두고 도망간 것은 외부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서 도망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다급히 옷을 챙겨서 도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옷은 여주인의 손에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은 조금만 추리력을 발휘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노예에 대한 처우가 대체로 무척 온건합니다(20). 본문을 단편적으로 이해할 때, 보디발이 아내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보디발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심히 노하였던(enraged) 것입니다. 대부분 남편이라면 아마 분기탱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내용을 세심하게 살펴보면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셉과 보디발은 주인과 노예 사이였지만 사이의 깊은 신뢰 관계가 있었습니다. 또한, 보디발이 요셉을 가둔 감옥은 정치범과 "왕의 죄수"(20)로 분류된 사람들을 수용하는 왕립 교도소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설은 사기범, 폭력범 또는 경제사범 등을 수용하는 일반 감옥과는 거리가 멉니다.

 

고려해야 할 역사적 고증도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법에 따르면, 기혼 여성에 대한 강간은 "거세"로 처벌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토록 원했던 합의 간통에 대해서는 남성에게 천 대를 때리고 여성의 코를 자르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요셉에게는 이 두 가지 처벌이 모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보디발은 보디발의 아내가 원했던 것을 요셉에게 직접적으로 형벌을 내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유일한 의문은 왜냐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부끄러운 소문(scandal)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결정은 보디발 자신뿐 아니라 그의 아내, 그리고 요셉 모두에게 명예로운 결정이며, 또한 요셉의 정직성을 지켜주는 결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보디발이 요셉의 죄를 완전히 믿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가 요셉에게 모든 집안일을 맡기면, 아내를 폭행하는 것은 그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또한 보디발이 아내가 다른 부정 행위에도 책임이 있다고 의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보디발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당장 해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요셉을 감옥에 보내게 됩니다. 그의 선택은 요셉에게 인간적으로 가능한 한 가벼운 형량을 선고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요셉의 정직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도 보디발의 마음을 붙드시고 요셉을 보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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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고난을 겪어 보았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낯설지 않습니다. 고난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질병, 가난, 고통, 재난, 슬픔, 죽음, 환란 등고난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우리의 순례길에서 늘 함께합니다.

  •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우리는 고난이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고난이 과연 선물일 수도 있을까요? 아마도 그런 선물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중시하고, 우리의 육신은 평범한 일상을 위협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육신 안에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성령을 주셨습니다(14:2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유익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는 고난의 시간을 선하신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로 여길 것입니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 가운데, 만물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것이라!”라고 부르지 않으시는 곳은 단 한 뼘도 없습니다."

 

이 말은 고난이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원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가운데 버리셨고 우리만 홀로 있다고 믿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원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믿음으로써 원수와 싸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주와 우리의 삶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압니다(47:8).

 

어떤 것도, 심지어 우리의 고난조차도 그분의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애가 3:38"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라고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이 고난을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고난을 주시는지 살펴보십시오.

  • 이사야 30: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이 급진적인 말씀 선포 앞의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자비를 베푸시기를 간절히 바라심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그들이 어떻게 회개로 인도될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고난 속에서 우리의 본이 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엄청난 고난을 겪으신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그분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1:27), 우리는 고난 속에서 그분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면서도 아버지를 신뢰하셨습니다.

  • 베드로전서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홀로 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굶주림의 고통을 겪으셨을 때, 원수는 그를 조롱하며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의 검으로 마귀와 싸우셨습니다(4:1-4). 우리도 진리로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장 약할 때 공격하기를 좋아하는 원수와의 싸움에서 강력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고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의 충분하심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 고린도후서 12:9-10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데이비드 플랫은 래디컬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통해 어떻게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능함을 높이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분은 의도적으로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 그분은 영광을 받으시고, 고난 속에서 우리는 가장 궁핍해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진정한 소망을 내면으로부터 키워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고난이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 야고보서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다시 말해, 하나님은 고난을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를 더욱 굳건하고 온전하고 완전하게 만드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8:29).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고난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고난의 또 다른 유익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위로를 베푸시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 1:3-5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기 위해 자녀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 에베소서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고난은 힘들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변화의 과정에서 사용하시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그리스도처럼 만드시는 하나님의 과정의 일부입니다. 실망, 좌절, 또는 다른 고통스러운 고난으로 고통받든, 우리는 로마서 8:28-29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로마서 8:28에 따르면, 하나님은 항상 그분 백성의 선을 위해 일하시며, 로마서 8:29에 따르면 이 선한 목적은 우리를 그리스도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고난은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를 주님께 더 가까이 데려갑니다. 그렇다고 고난이 쉽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은 고통스럽습니다. 어떤 고난은 우리의 죄 때문에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난을 우리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난이라는 선물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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