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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1_창세기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창세기 제37장_요셉과 형제들 그리고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다

by 적아소심 2025. 9. 29.

창세기 37:1~36

 

요셉과 형제들 (1-11)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채색옷을 입는 요셉

 

1절에서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라는 말씀은 야곱이 이제 아버지 이삭이 살던 땅에 들어가 가나안에서 족장 시대의 순례자 생활을 이어갔음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순례 생활의 최절정은 요셉의 생애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이 기이하고도 파란만장한 인생은 그의 17세의 나이에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서두에서 그의 나이에 대한 언급은 이 이야기의 주요 주제, 즉 요셉이 팔려 가는 사건과 관련하여 시작됩니다. 요셉이 팔려 간 사건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따라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의 미래 역사에 관한 계시의 말씀이 성취되는 길을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5:13). 그는 형제들과 함께 양 떼를 쳤습니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양 떼를 치던 중, 그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아버지에게 전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하란을 떠나기 약 7년 전에 태어났고,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데 아마도 2년이 걸렸을 것이므로, 이삭의 이웃에서 7~8년 동안 살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이 17세일 때 베냐민은 네 살쯤 되었습니다. 이삭은 168, 야곱은 108세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엄청난 수의 가축들이 차지한 넓은 땅에 흩어져서 양들을 쳤을 것입니다. 요셉은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홉 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의 여종 빌하의 천막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어려서부터 당연히 빌하의 아들들뿐 아니라, 실바의 아들들과도 함께 양떼를 치기 위해 들판에 갔을 것입니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은 요셉을 팔아 넘긴 사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지만, 형제들의 총애는 받지 못했습니다. 17살의 요셉은 아주 순진하였던지, 철이 없었던지, 아니면 죄에 대해 엄격한 신앙을 가졌든지, 형들의 악행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아버지 야곱에게 고백합니다. 형제들의 악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의 성인이 된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죄의 유혹에 쉽게 굴복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가문이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죄악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편애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만은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채색옷은 손발까지 내려오는 옷으로, 일반적으로 육체노동에 크게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아마 채색옷은 베틀이나 바늘로 색깔별로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4b절의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를 영어로 보면, they hated him, and could not speak peaceably unto him.편안하게영어로 peaceably, 히브리어로 לְשָׁלֹם 샬롬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평화로이 말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편애가 명백하게 드러났기에 형들의 분노를 샀고, 형들은 그에게 평화적이고 호의적인 표현으로 인사를 건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 홀맨 성경 삽화 중에서 [Joseph’s Dream (adapted). Illustrators of the 1890 Holman Bible]
수잔 고바토스, 요셉의 꿈들 (Joseph's Dreams by Susan Govatos)
쇼샨나 브롬바허, 요셉의 꿈들 (Joseph's Dreams by Shoshannah Brombacher)
안토니오 템페스타, 요셉이 형들에게 그의 꿈을 설명하다 (Joseph Explaining His Dream to His Brothers, Antonio Tempesta, ca.1600 )
제임스 티소, 요셉의 형들에게 꿈을 말하다 (Joseph Reveals His Dream unto His Brethren by James Tissot)
렘브란트, 요셉이 그의 부모와 형들에게 꿈을 이야기하다, 1633년 작품 (Rembrandt, Joseph tells his dreams to his parents and brothers, 1633, Rijksmuseum, Amsterdam, Netherlands)
렘브란트, 요셉이 그의 꿈들을 이야기하다, 1638년 작품 [Rembrandt (Rembrandt van Rijn) (Dutch, Leiden 1606–1669 Amsterdam), Joseph Telling His Dreams, 1638]

 

요셉은 꿈을 꾸었습니다(5). 아마도 처음에는 그 꿈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주 순진하게 형들에게 그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그가 꿈을 이해했다면, 분명 형들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들이 그 꿈을 악하게 해석하고 이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는 요셉에게 꿈을 주고 그 꿈을 계시하게 하신 데에 나타났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들이 의미하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 이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꾸었다는 것은 그의 삶이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경건하고 헌신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였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요셉에게 임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시작하셨습니다. 요셉이 앞으로 많은 고난을 겪을 것이었기에, 하나님은 크신 은혜로 요셉에게 아주 강렬하고 선명한 꿈을 미리 허락하시고, 그를 지지하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요셉의 꿈은 형들의 질투를 불러일으켰습니다(5). 형들에게 꿈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요셉의 모습은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보여주며, 꿈에 본 환상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꿈은 모든 형들이 그에게 겸손하게 복종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데, 형들은 그 의미를 정확히 해석합니다.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8). 요셉의 꿈의 의미가 이미 충분히 기분 나빴지만, 요셉이 그 꿈을 이야기하자 더욱 형들의 마음은 불편해졌습니다.

 

두 번째 꿈은 창세기 41:32에서 꿈의 확실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꿈은 두 번째 꿈을 해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곡식단은 그것을 묶은 형들과 연결되어 있어, 그 형들의 운명을 암시합니다. 열한 별은 그와 그렇게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요셉은 비유 없이 직접 소개되며, 첫 번째 꿈의 11 곡식단과 함께 11이라는 숫자가 등장하여 형들에게 적용되는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해와 달은 분명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그 어머니가 떠난 라헬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아직 살아 있을 레아를 의미하는지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레아조차도 창세기 49:31에 나오는 이 예언적 꿈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꿈은 형들의 증오심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지만, 아버지는 그의 말을 꾸짖으면서도 그 말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꾸짖음은 아버지가 꿈, 혹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린 요셉의 가슴속에 혹여 자만심이나 야심이 숨어 있을 것에 대한 노파심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두 가지의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직감하고, 그 꿈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다 (12-30)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요셉의 형들이 그를 죽여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 르우벤이 개입하여 요셉을 구덩이에 가두라고 제안했습니다. 열일곱 살이었던 요셉은 그 무섭고 어두운 구덩이에서 외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시련에 직면할 때 요셉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찰스 에드먼드 브록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졌다』 (They Dunn Him into a Pit)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
콘스탄틴 플라비트스키, 형들이 동생 요셉을 팔다, 1855 (Children of Jacob sell their brother Joseph, by Konstantin Flavitsky, 1855)
프리드리히 오베르벡,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려가다 [Friedrich Overbeck (1789-1869), Joseph is sold by his brothers]
아드리앤 반 니유란트 더 영거,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리다, 1658 [Attributed to Adriaen van Nieulandt the younger (circa 1586–1658) Joseph sold by his brothers, 1658]
다미아노 마스카니, 요셉이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다 [Damiano Mascagni (1579-1636), Joseph sold into slavery by his brothers, 1602]
구스타보 도레, 형들에 의해 팔려가는 요셉 [Gravure illustration Gustave Doré, la Bible Ancien Testament, Joseph vendu par ses frères]

 

15~17절에서,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안부(שׁלום shālom "평화")를 묻기 위해 헤브론에서 세겜, 그리고 도단까지 갑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직선거리는 77km이며 양떼를 몰고 갈 거리라면 120~150km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세겜은 야곱이 밧단아람(하란)에서 외삼촌 라반에게 20년을 봉사하고, 다시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중에 잠시 정착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세겜의 족장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몹쓸 짓을 한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그 결과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 남자 모두를 살해한 곳이기도 합니다(34:1-31).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는 했으나 세겜 지역 주민들에게 야곱 가문에 대한 분노의 마음이 남아 있을 수 있어서 아들들이 이곳에 양 떼를 몰고 갔다는 것은 야곱을 근심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보내 그들의 안부(샬롬)을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젊은 요셉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재빨리 세겜으로 갔고, 그곳에서 그들이 세겜에서 다시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도단이라는 마을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다시 그 먼 길을 재촉하며 갑니다. 형들을 염려하는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잘 알았기에 요셉은 쉬지 않고 도단으로 갔을 것입니다.

 

18~20, 형들은 요셉을 보자 그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보자마자 흥분해서, 또는 갑작스러운 도발에 의해서도 그에게 해코지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평소 가지고 있었던 악의적인 의도와 냉혹한 행동으로 요셉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19b~20)

영어로 보면 좀 더 리얼합니다. "Behold, this dreamer comes. Come now therefore, and let us slay him, and cast him into some pit, and we will say, Some evil beast has devoured him: and we shall see what will become of his dreams."

원문에 가깝게 직역하면, "보라! 여기 꿈의 주인[this baal(lord) of dream]이 오는구나. 자 이제 우리가 가서 그를 죽여서 그를 한 물웅덩이에 던지자! 그래서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고 말하고, 또 그의 꿈들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 입니다.

 

형들은 시기와 악의로 동생의 목숨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고, 마침내 아버지에게까지 거짓말을 꾸몄습니다!

 

21절에서 르우벤은 형제들의 모의내용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형제들 가운데서 그래도 요셉에게 호의적인 형들을 남겨두셨습니다. 모든 형제 가운데 르우벤이 가장 요셉을 경계하고 질투할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장자로서 야곱이 요셉에게 베푼 특별한 그 사랑을 자신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곱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 같습니다. 르우벤의 성격은 온화하였지만, 분명하지 못하여 부정한 죄에 빠졌습니다. 반면 그다음 두 형제인 시므온과 레위는 격렬하여 무자비한 살인의 죄에 빠졌는데, 르우벤은 이 죄를 생각만 해도 깜짝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르우벤은 요셉을 질투하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요셉을 다른 형제들의 손에서 구해내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와의 관계도 되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에 대한 특별한 계획과 경륜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을 향한 형제들의 악한 모의와 실행을 어느 정도 용인하셨습니다.

 

여기서 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셨지만,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그분을 품에서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악한 음모가 그분을 해치려 하였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백성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은 상속자니, , 그를 죽이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실 수 있었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22절에서, 르우벤은 도단의 작은 골짜기를 둘러싼 황량한 지역에 있는 어떤 웅덩이를 적시한 것 같습니다. 42:21에서 우리는 요셉이 자비를 간절히 구하고 그토록 고통스러운 죽음을 면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의 형제들이 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요셉을 만나는 과정에서 요셉의 일로 인해 얼마나 큰 회한과 죄의식에 빠져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성경에서 요셉이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직접적으로 묘사된 적은 없지만, 구약 성경 전체는 복음서 이야기에 다시 등장하는 사건과 역사로 가득 차 있어서 교부 신학자들은 무고하게 죽음에 넘겨졌다가 다시 영광으로 부활한 요셉을 우리 주님을 특별히 예표하는 인물로 여기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파스칼(Pensées, 2:9.2)은 요셉과 그리스도의 유사점을 요약합니다. 요셉의 아버지가 요셉을 사랑한 것, 요셉이 형제들의 평화를 위해 파견된 것, 형들이 요셉을 대적하여 음모를 꾸민 것, 요셉이 은화 20닢에 팔린 것, 요셉이 굴욕에서 일어나 자신을 해친 자들의 주님이자 구원자가 된 것, 그리고 요셉이 형들과 함께 세상의 구원자가 된 것, 또한 요셉이 두 명의 범죄자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것처럼, 우리 주님은 두 도둑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중 한 명은 구원받고 한 명은 정죄를 받은 것처럼,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을 구출했지만 빵 굽는 관원장은 처벌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생애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관계는 놀랍도록 유사점이 많습니다. 요셉은 결백하고 삶에서 순수했지만, 계속해서 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과 시련은 그의 긴 여정에서 한걸음에 불과했습니다. 모든 위대한 삶의 역사처럼, 요셉의 여정은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되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보존을 위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형성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당시 상황을 추론하면, 이스라엘은 오직 애굽에서만 하나님의 율법을 보관하고 하나님의 씨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 형성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28절에서 요셉이 다가오자, 형들은 요셉을 잡아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그를 구덩이에 넣고, 천연덕스럽게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 족속의 상인들이 오자 그에게 은 20에 팔아넘기고 맙니다. 이러한 일들은 르우벤이 없는 동안 벌어졌고, 그 와중에서 유다가 요셉의 목숨을 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서 미디안인과 이스마엘 상인이 요셉을 샀다고 하는데, 두 집단은 사실 서로 다른 족속입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통해 낳은 아들이고, 이스마엘은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입니다. 조상이 다른 족속인데, 동시에 요셉을 샀다고 합니다. 36절을 보면, 미디안인이 요셉을 사서 그를 애굽의 보디발에게 팔았다고 증언합니다.

 

29절에서, 르우벤이 돌아와 보니, 요셉은 이미 다른 형제들에 의해 팔려 가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29절을 직역하면, "그런데 보라! 요셉이 없다(and behold, Joseph was not)"입니다. 르우벤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구덩이에 요셉이 없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요셉을 구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르우벤은 구덩이에 요셉이 없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즉시 옷을 찢고 찢었습니다.

30, 르우벤은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말합니다.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영어로 보면 주어가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The child is not; and I, whither shall I go?" ,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나는 갈까?" 아버지를 대신하는 맏형으로서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동생을 판 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으로 인하여 애통하다 (31~36)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섀도우 빌헬름,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 (Schadow Wilhelm von Story of Jacob and Joseph)
디에고 벨라즈꾸에즈, 요셉의 피묻은 옷을 야곱에게 주다, 1630년 (Joseph's Bloody Coat Brought to Jacob by Diego Velázquez, 1630)

 

32절에서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보내어는 강조능동형(Piel)을 사용합니다. 형들은 요셉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채색옷을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도착하여 야곱에게 그것을 발견하게 된 경위를 설명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요셉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교묘하게 속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은폐하려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의 말에 속아넘어가 요셉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33,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야곱은 요셉을 '내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야곱에게 있어서 요셉은 품 안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요셉을 멀리 있는 형들에게 보낸 것을 자책하며 슬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야곱의 모든 자녀(아들들과 딸들)가 일어났습니다(직역). 야곱이 오랜 시간 자책하며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자 자식들이 일어나 야곱을 위로한 것입니다. 요셉을 판 형들이 야곱을 위로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야곱이 요셉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렸습니까? 14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난 그 아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야곱은 삶의 의미를 잃을 만큼 슬프고 충격이 컸을 것입니다.

 

야곱은 많은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아들들은 일찍부터 아버지의 품을 떠나 멀리까지 가서 양들을 치느라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아들들은 빨리 철들지 않았고, 죄의 유혹에 약하여 성장하면서 그 죄들이 누적되고 급기야 형제간에 비극이 터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울부짖으며 울었던 장면은 없었습니다. 야곱은 강한 의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모 드보라가 죽었을 때, '알론바굿(곡함의 상수리)'이라는 이름을 지은 장면이 있지만(35:8) 이처럼 처절하고 슬프게 울었던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이러한 인생의 처절한 슬픔과 절망은 이제 하나둘씩 그의 인생에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찢어지는 아픔과 영혼의 고통을 통하여 그동안 세상에서 악착같이 살아오며 내면에 형성되었던 그의 인간적이고 세상에 대한 욕망은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절 36절에서 그 미디안 사람들은 요셉을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다고 코멘트합니다. 기사에서 보디발의 신분이 바로의 신하이며, 친위대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 보디발의 신분과 직책이 요셉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복선을 깔아주고 있습니다.

폰토르모(1494~1557), 요셉이 보디발에게 팔리다 [Pontormo (1494~1557), Joseph Being Sold to Potiphar, 1515~1518]
보디발에게 팔린 요셉

 

시편 105:17~19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He sent a man before them, even Joseph, who was sold for a servant: Whose feet they hurt with fetters: he was laid in iron: Until the time that his word came: the word of the LORD tried him.

 

직역하면, 그러나 주께서 그들 앞서 한 사람을 보내셨으니, 종으로 팔린 요셉이었다. 요셉은 그의 발이 족쇄에 상하고 그의 목이 철(장)에 메였으며,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이며, 여호와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족들보다 앞서 한 사람을 보냈는데,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으로 팔려 갔을 때는 열일곱 살의 소년이었지만, 바로 앞에 서서 다가올 풍요와 기근에 대한 그의 꿈을 해석하고, 풍년 동안 기근에 대비하여 저장/보관하라고 조언했을 때는 이미 장성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내려가기 전에 그를 애굽으로 보내어 그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기근 때 그들을 부양하고,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다고 하지만, 그 실상은 그의 형제들이 시기심에 그를 팔았습니다. 이 문제에는 분명한 섭리의 손길이 있었고, 요셉 자신도 이를 거듭거듭 인정했습니다(창세기 45:5-8). 요셉은 그에 의해 모든 양식이 준비되고, 그 양식이 그의 백성에게 전달되도록 한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종으로 팔린 요셉: 요셉은 은화 스무 개에 팔렸는데, 그의 원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은화 서른 개에 팔리셨습니다. 이는 종의 값이었습니다(37:28; 11:13; 21:32).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종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충실하고 의로운 종이었으며, 그의 백성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중상모략으로 감옥에 갇혔을 뿐만 아니라 족쇄를 찼습니다. 그의 발은 족쇄로 단단히 묶인 것 같습니다. 족쇄는 너무 꽉 조여져 무거워서 그를 옥죄고 쓰라리게 하며 상처를 주었습니다. 창세기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사실이었습니다(39:20 참조).

 

그의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는 말은 다른 성경에서는 "쇠사슬이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갔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쇠사슬은 요셉의 육신뿐 아니라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그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모습에서도 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영혼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아프고 슬펐습니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대제사장에게 끌려가 저주받은 나무에 묶이고 못으로 찔렸으며, 더욱이 그분의 백성의 죄를 지고 무덤의 감옥에 갇히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무덤에서 완전히 땅에서 끊어져 모든 사람의 형벌을 온전히 받으신 것입니다(53:8).

 

여호와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술 맡은 자와 빵 굽는 자의 꿈을 해석한 요셉의 말씀이 성취될 때까지, 즉 시리아어 번역에서는 "그의 말씀이 그 사건으로 증명될 ​​때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또는 그 명성과 소문이 파라오의 귀에 들릴 때까지(41:13, 14), 또는 그의 승진과 승격에 관한 주님의 말씀이 꿈으로 그에게 나타났을 때까지(37:7-10) 고난과 시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그 말씀이 성취되기 전에 그의 믿음과 인내를 시험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성취되자, 용광로 속의 금과 은처럼 그를 정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했으며, 보디발의 아내의 비난과 중상모략에서 그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바로의 눈에도 그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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