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8:1~30 (역대상 2:3-12)
① 유다와 다말 (1-26)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중 하나는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다말과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창녀인 척하며 시아버지와 동침한 한 여인이 유다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자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는 충격적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이 이야기는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고대 문화권의 관습법은 계대결혼(Levirate Marriage)이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에는 ‘고엘’ 사상에 기초하여 계대결혼이 이루어졌습니다. 여성이 결혼했는데 남편이 아들을 낳기 전에 죽으면, 남편의 가족은 그녀에게 다른 남편을 주어 아들을 상속자로 삼아야 했습니다. 아들 없이 죽는 것은 끔찍한 저주였기 때문입니다. 상속자를 가족에 남기기 위해 보통 남자의 형제 중 한 명이 선택되었지만, 일부 고대 문서에 따르면 시아버지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의 남편이자 유다의 맏아들인 엘이 죽자, 가족은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 오난은 아들이 엘의 재산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다말의 임신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다말이 자식 없이 죽으면 오난이 그 재산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의 불순종과 탐욕은 하나님을 분노하게 했고, 하나님은 그를 죽이셨습니다.
유다는 오난이 죽은 후, 다말에게 막내 아들 셀라를 남편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두 아들이 죽은 후 다말이 ‘불운(unlucky)’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다는 다말에 대한 의무를 무시함으로써 다말을 자식 없이 과부로 만들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다말은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막내가 후계자 없이 죽으면 자신의 계보 전체가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후손까지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다말은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고대 저자의 도덕적 해석에 따르면 그녀는 절박한 상황에 대한 명예로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다말이 유다를 속여 자신과 아이를 낳게 했을 때, 그녀는 유다 가문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유다에게 계대(levirate) 남편이 되도록 일을 꾸몄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용인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다말이 포기하고 유다 가문에 후사가 없었다면, 메시아 가문은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말의 과감한 도전 덕분에 그녀는 메시아 탄생으로 이어질 가문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유다 지파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킨 대담한 책략으로 믿음의 여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당시의 도덕이나 율법을 존중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기 수백 년 전, 그리스도가 오시기 수천 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와는 매우 다른 문화적, 도덕적 세상에서 다말이 보여준 인내와 용기는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그림 설명] 아렌트 드 헬더는 다른 어떤 렘브란트 제자보다도 스승과 마찬가지로 성경 이야기 속 인간적인 측면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드 헬더의 역사화는 대부분 서사적 표현보다는 심리적 관계를 강조하는 몇몇 대형 인물들의 사적인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춥니다. 드 헬더는 성경 속 가족의 다정한 온기를 그림에 반복적으로 묘사했지만, 성경 속 인물들의 행동을 뒷받침하고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간적인 연약함에도 매료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유다와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 사이의 이성적(異性的) 교류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는 관람하는 관객을 이 통속적 만남에 가까이 끌어들여 두 사람 관계의 육체적 강렬함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기독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두 사람 사이의 “부정한 관계(지금의 도덕적 관점으로 본 관계)”로 인해 베레스가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마태 1:3(누가 3:33 참조)에 따르면, 베레스는 다윗의 조상이자 그리스도의 조상입니다. 따라서 다말은 족보에서 다윗과 솔로몬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태어난 왕가 계보에서 당당히 조상으로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다말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교부 문학과 이후 성경 주석에서 그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주석을 통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다말은 족장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 쌍둥이를 낳아준 교회(에클레시아)와 동일시됩니다. 다른 해석에서는 유다가 자신의 지팡이와 인장을 다말에게 넘겨준 것이 교회에 자신의 보물, 즉 십자가에 대한 믿음과 신앙의 인장을 주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미술에서 유다와 다말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심지어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대의 판화 시리즈에서도 교활한 여인들에게 희생된 남성들을 중심으로 묘사된 작품(물론 유다도 그중 하나였을 것입니다)에도 이 부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라이덴(Leiden) 컬렉션에 있는 바로 위 버전은 두 사람의 접근 방식이 덜 극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버전들과 주제를 달리합니다. 유다가 다말을 껴안고 서로의 턱을 만지는 장면, 유다의 다리 사이에 보이는 지팡이의 남근 모양 등 여러 모티프가 이 장면의 성적인 성격을 분명히 암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 헬더는 이 작품에서 다른 버전들보다 더욱 절제되고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작품의 연대는 킹스턴의 애그네스 에더링턴 아트 센터에 있는 버전보다 덜 두드러져 보이는데, 이 버전은 1681년으로 추정되며 "불평등한 연인들"이라는 측면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불평등한 부부"라는 주제가 16세기 이후 문학과 예술에서 확고한 주제로 자리 잡으며 도덕과 조롱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갈색, 녹색, 붉은색 톤이 주를 이루는 색채 구성과 양식적 측면에서 볼 때, 이 그림은 1680년대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말은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시아버지 유다의 말을 믿고 친정에 가서 수절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시아버지 유다의 의도적인 지체 또는 무반응(?)으로 인해 셀라는 형제의 후손을 이어야 하는 대리자(고엘)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소멸하는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유다 가문에서 다말과 동침할 수 있는 사람(고엘)은 계대결혼의 순서상 셀라 다음으로 시아버지 유다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유다는 너무나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의 동침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는 사건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우리가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와의 동침 기회를 찾는 것은 당시 계대결혼의 순서에 따라 합법적으로 유다가 대리자(고엘)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유다가 다말이 창녀인 줄 알고 동침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유다가 다말에게 고엘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이 하나님의 구속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였다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족보까지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다말이 유다에게 동침 유혹을 한 것은, 그녀의 부정한 정욕에 기초한 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대결혼 제도 안에서 고엘의 의무를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유다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26절에서 유다는 다말이 제시한 증거를 보자마자 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26)"
지금까지 유다는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의 조상에 준하는 사람으로서 떳떳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의 삶은 집 나간 탕자와 같았습니다.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고, 또한 아들을 낳고 결혼시킬 때까지도 믿음의 삶을 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다말에게 한 것을 보면 정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를 통해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줍니다. 유다의 위대한 점 하나가 있다면 바로 자기의 잘못을 즉시 인정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창세기 44장에서 유다가 총리가 된 요셉 앞에서 (아직 요셉이 동생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베냐민을 위해 변호하는 장면은 히브리 문학의 정수라고 할 만큼 감동적입니다. 회개한 유다가 아버지 야곱에 대해 말하며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동생 베냐민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고자 하는 모습은 장엄하고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직접 대면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장면을 대할 때마다 눈물샘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유다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존재감 없이 살아온 유다의 회개와 화해와 사랑, 그리고 희생의 결단이 우리 주님께도 감동적이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유다를 통한 그리스도의 계보가 아닐까 합니다.


②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남 (27~39)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창세기 38장은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갑자기 중간에 유다와 며느리 다말이 동침한 사건을 콕 집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다말의 동침으로 메시아의 계보를 잇는 후손(특히 베레스)이 태어났다는 기사를 말미에 붙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창세기에서 요셉의 이야기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어, 요셉이 창세기 후반부에서 주인공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계보가 요셉이 아닌 유다를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기 위해 요셉의 이야기 중간에 갑자기 훅 들어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의 동침은 단순한 성윤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의 도덕 윤리에 의하면 이는 부끄럽고 비난받을 수 있지만, 고대사회 당시의 상황에서는 계대결혼 제도가 일반적이어서 다른 형제가 아니라면 시아버지도 계대결혼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에 지금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계대결혼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자의 후손을 잇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자의 재산(특히 토지)을 유지하고 유족의 삶을 유지해 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후에도 구약성경에서 계대결혼의 사례를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다말은 이방 여인입니다. 다말이 당한 일은 불의의 사고였습니다. 그녀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그녀의 첫 두 남편인 엘과 오난의 죽음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 존중과 적절한 보살핌을 베푸는 대신, 셋째 아들을 놔두고 그녀를 내쫓았습니다. 유다는 시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고 다말의 삶과 미래를 사실상 박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말이 이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성품을 변화시키는 데에도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유다는 다말에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의 죄에 직면했을 때 며느리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명예를 희생했습니다. 이는 유다가 나중에 동생 베냐민과 아버지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가기로 동의했을 때(창세기 44장) 치르는 희생과, 흠 없는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치르셨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치르시는 희생의 모습을 보여줍니다(마태 27장).
유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길을 잃었으나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을 선택했고, 그의 아버지 야곱, 그리고 그의 장래 고손자인 다윗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로 인해 우리의 죄의 현실을 깨달았을 때, 옛 방식대로 살지 않기로 결단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다말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유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다말이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과정을 통해서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결단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돌이킴을 기뻐 받으시고 모든 상황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다말 입장에서 궁극적으로 가계를 이어갈 책임이 있었지만, 두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가 막내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다말의 꿈은 산산조각났습니다. 그녀는 가문을 이어갈 후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명예와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그녀의 계획은 위험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위험을 복으로 바꾸셨습니다. 그 결과는 다말을 통해 위대한 메시아의 혈통이 이루어져 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말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당당하게 올리신 것입니다. 이는 다말이 믿음으로 행하였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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