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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09_사무엘상_성화와 함께 읽기(Visio Divina)

사무엘상 18장_다윗이 사울을 시기하다

by 적아소심 2024. 12. 24.

사무엘상 18:1-30

 

요나단이 다윗을 친구삼다 (1-5)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골리앗을 죽인 후 다윗을 맞이하는 요나단, 18세기 고트프리트 베른하르트 괴츠의 삽화 (Jonathan greeting David after killing Goliath, 18th century illustration by Gottfried Bernhard Göz)
제임스 티소,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 (Friendship of Jonathan and David, by James Tissot)

1절에서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라는 표현에서 하나가 되어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니크쉐라”(נִקְשְׁרָ֖ה)인데, 동사 "카솨르"(קָשַׁר)의 니팔(nifal; 수동재귀) 완료형 3인칭 여성단수입니다. ‘카솨르는 주로 끈이나 밧줄을 묶듯이 물리적으로 묶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은유적으로 동맹이나 음모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여, 종종 음모나 계략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공통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묶는 것(biding; knitting)을 나타냅니다. 문화적, 역사적으로 고대 근동 문화권에서 묶는 것은 일상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맥락에서도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묶는 행위는 계약이나 합의, 그리고 물리적 또는 은유적 제지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음모의 맥락에서 "카솨르"는 권력과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동맹과 음모가 일반적이었던 고대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역학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1절을 문법적,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And it comes to pass, when he finishes to speak to Saul, that the soul(nepesh) of Jonathan has been bound to the soul(nepesh) of David, and Jonathan loves him as his own soul(nepesh).”
  •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영혼(네페쉬)이 다윗의 영혼(네페쉬)과 결속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영혼(네페쉬)처럼 사랑하니라.” (Literal Standard Version)

요나단에게 다윗은 자기 왕권을 물려받는 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의 영혼(네페쉬)처럼 사랑하였다는 말은 단순히 정신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온 마음과 온몸을 합하여 전인격적으로(네페쉬) 사랑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사랑하니라”라는 동사는 능동형 미완료시제를 사용하여, 현재만이 아닌 미래에도 계속 사랑한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이런 사랑은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대하는 태도와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우정과 사랑은 성경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 있게 됩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인생들에 대한 사랑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다 (6-16)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니콜라스 푸생, 다윗의 승리, 1628-1631 (Nicolas Poussin(1594–1665), The Triumph of David, 1628-1631)

프랑스 예술가 니콜라 푸생(1594-1665)의 초기 걸작 중 하나인 이 그림은 블레셋의 챔피언 골리앗을 물리친 후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한 다윗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의 구약성서 사무엘서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어린 양치기 소년 다윗은 거의 3m에 달하는 거인 골리앗의 이마를 겨냥한 돌을 물맷돌(sling)로 잘 조준하여 맞혀 그를 죽였습니다. 다윗이 돌아오자 그를 맞이하는 군중의 환호 소리는 그림을 보는 관중의 귀에 들릴 정도로 크고, 예술가에게는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 몸짓의 영상적 언어를 탐구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기에는 노인의 엄숙한 감사와 팔을 높이 든 젊은 여성의 모습, 어머니의 팔에 안겨서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놀고 있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 등이 보입니다.

니콜라스 푸생, 다윗의 승리, 1630년 (Nicolas Poussin(1594–1665), The Triumph of David, circa 1630)
마테오 로셀리(1578-1650), 다윗의 승리, 1620년 (Matteo Rosselli (1578–1650), The Triumph of David, 1620)
마테오 로셀리(1578-1650), 다윗의 승리, 1630년 (Matteo Rosselli (1578–1650), The Triumph of David, 1630)
제임스 티소,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다 (David takes the head of Goliath to Jerusalem by J James Tissot)
피터 브루헬 엘 요벤(1564-1637)과 아드리안 반 스탈벤트(1580-1662),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 1618-1619년 (Pieter Brueghel el Joven(Pieter Brueghel the Younger; 1564-1637) and Adriaen van Stalbent(Adriaan van Stalbempt; 1580-1662), The Triumph of David over Goliath, 1618-1619)

위 작품은 사무엘기에서 서술된 성경적 에피소드인 골리앗을 물리친 후 다윗과 이스라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귀환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두 화가가 1년 간격으로 서명하고 날짜를 적었습니다. 풍경화는 아마도 브뤼겔이 먼저 완성했고 인물은 1년 후에 반 스탈벤트가 보완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피터 브루헬 엘 요벤(1564-1637)과 아드리안 반 스탈벤트(1580-1662),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1618-1619년)”의 상세 그림-01(왼쪽 부분)
피터 브루헬 엘 요벤(1564-1637)과 아드리안 반 스탈벤트(1580-1662),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승리(1618-1619년)”의 상세 그림-02(오른쪽 부분)
사울이 다윗의 성공을 시기하다 (Saul became jealous of David’s success)

6절에 보면;

  •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히브리어 성경에서 6절은 와예히”(וַיְהִ֣י)로 시작하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And it comes to pass” ,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로 번역합니다. 즉 다윗과 골리앗의 영웅적인 결투 사건 이후에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사울과 다윗이 함께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여하여 대승을 거두고 개선하는 장면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사울을 선두로 이스라엘 군대가 돌아오고 있는데, 여인들이 탬버린과 3현 악기를 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개선하는 군대를 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부른 노래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7절)

이 말은 곧, "사울은 수천 명을 쳐부수었고 다윗은 수만 명을 쳐부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사울이 이를 듣고 화가 나고 불쾌하게 생각하였습니다.(8) 8절을 직역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러나 이것은 사울을 매우 화나게 하였고(וַיִּ֨חַר; was hot), 또 이 일이 그의 눈에 악한 일이었고(וַיֵּ֤רַע; be evil) 또 그는 말했다. “그들이 다윗에서는 수만을 돌리고(ascribed), 나에게는 수천을 돌리면(ascribed) 그러면 참으로 그에게 왕국까지 돌리지 않겠는가?”

사울이 불편했다는 말은 사울의 입장에서 여인들의 노래 내용이 악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히브리어 동사 רָעַע”(라아)에서 온 말입니다. , 사울은 여인들의 노래의 내용을 악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왕국 유지를 해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라아”(רָעַע)는 주로 악하다또는 사악한 일을 하다는 뜻입니다. 도덕적으로 잘못되었거나 해로운 행동, 행동 또는 조건을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용어는 또한 물리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해를 끼치거나 무언가를 부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맥락에서 종종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반하는 행동을 나타내며, 도덕적, 영적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와 문화에서 악의 개념은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에 대한 불순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도록 부름을 받았고,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악으로 여겨졌습니다. ‘라아라는 용어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개인, 국가,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섰을 때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용어를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면 언약의 충실성과 도덕적 실패의 결과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관점이 아닌, 자신의 왕국 유지질서의 입장에서 노래의 내용을 문제시하였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제대로 이겨본 적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 군대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와 같았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다윗으로 말미암아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어서 블레셋 군대까지 크게 무찔렀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요, 다윗에게는 큰 상을 내려야 하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그에게 다윗은 더 이상 충성스러운 부하 장수가 아닌 왕권 경쟁의 대상자로 보았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모지리 같은 생각일까요? 사람이 비교하고 시기하기 시작하면 미움이 생기고, 결국 원수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지 못할 때, 주변의 사람도 얻지 못하고, 모두 원수를 만들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할 때, 리더는 더 이상 그 조직을 이끌어 갈 수 없습니다. 리더는 의()와 인()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운영에 있어서는 공의는 조금 부족하고, ()은 조금 과한 것이 좋습니다.

 

그날 이후로 사울은 다윗을 주목했습니다. (9)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And Saul is eyeing David from that day and from then on.”의 개념으로 번역을 하였는데, 주목하다는 말인 히브리어 "아본"(עָוֹן)은 주로 불의나 죄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법의 도덕적 왜곡과 왜곡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종종 죄책감과 죄악적인 행동에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생각을 전달합니다. "아본"은 또한 불의에서 비롯되는 처벌이나 심판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 집단적 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며, 내재적인 부패와 의로움으로부터의 이탈을 강조합니다. 이 의미를 강조하여 번역한다면,

“And Saul will be wrong with David from that day and forward.” (Smith's Literal Translation) 즉 사울은 그날부터 다윗에게 잘못된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한번 다른 사람에게 악한 감정을 갖게 되면 그 행하는 태도 역시 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못마땅하고, 미워지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며, 사랑하려고 애쓰지 못하면, 시기와 질투, 그리고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 하나님의 일을 망칠 수 있습니다.

이반 트보로쯔니코프, 사울 앞에서 연주하는 다윗 (Ivan Tvorozhnikov, David Playing The Harp Before Saul)
렘브란트의 사울과 다윗의 초기 작품 (An earlier version of Saul and David by Rembrandt)

다윗은 미술계에서 인기 있는 주제였습니다.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삶과 경험이 성경에 자세히 묘사되어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예술계에서 인기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살아가면서 수행한 다양한 감정과 역할입니다. 그이 삶은 파란만장하였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미래 왕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죽임으로써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직후, 그는 사울 왕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위대한 하프 연주자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시기로 인해 살해 위협을 받게 되고 이를 피해 10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이후에 간통과 살인에 연루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아들에 의해 잠시 왕위를 빼앗기고 도망가기도 하였지만, 다시 왕권을 회복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삶은 우리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위대한 왕이라 할지라도 그의 삶에는 많은 허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사울과 다윗, 1651-1658년 (Saul and David by Rembrandt (Mauritshuis), Between 1651 and 1658)

왼쪽에는 사울 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왼손에 커튼을, 오른손에 창을 들고 있습니다. 사울은 우울한 기분을 겪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어린 다윗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사울보다 조금 낮은 자세로 앉아 있고, 사울이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하프를 연주합니다. 다윗은 하프 연주에 열중하고 사울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커튼으로 왼쪽 눈의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른쪽 눈으로는 다윗을 강렬하게 바라보며 그를 죽일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다윗이 우울증에 빠진 사울 왕을 위해 하프를 연주하는 장면을 어떻게 상상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림 속 대부분 요소는 17세기 성경 번역본에서 직접 가져왔지만, 렘브란트는 커튼을 추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울의 두 가지 다른 감정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 때문에 왼쪽 눈에 눈물이 나고, 다른 눈에는 다윗의 인기가 커지면서 분노와 질투가 납니다. 렘브란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이 실제로 다윗에게 창을 던질 것이라는 이야기의 미래를 암시합니다.

구스타브 도레,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다 (Gustav Dore, Saul tried to kill David)
율리우스 쉬노르 폰 카롤스펠트,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다 (Saul Tries to Kill David by Julius Schnorr von Karolsfeld(1794-1872))
제임스 티소, 시기심으로 미친 사울 왕이 창으로 다윗을 죽이려 하다, 1836-1902 (Mad with jealousy, King Saul endeavors to pierce David with his javelin. Painting by James Tissot, 1836-1902)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면 결국 재앙에 노출됩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그분께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백성들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사울의 첫 충성은 하나님께 드렸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의 인기를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도 사울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에 대한 사울의 질투심은 사울이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에게 주신 것을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우리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 자신의 특정한 사명을 위해 사용하는 대신 그들이 가진 것을 비교하며 그것까지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는 방향과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의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지 않고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그것까지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뜻을 저버리는 교만이자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적당히 변명하며 부분적인 순종이 아닌 완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라고 명령하셨을 때, 사울은 그들의 왕과 몇몇 좋은 동물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사무엘에게 거짓말을 하며 가축이 제사에 쓰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깊은 속을 드러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시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깊은 속을 아십니다. 그것은 죄이며, 결국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10절에 보면;

  •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이 구절을 히브리어 원어에서 바로 직역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리고 그다음 날이 되었고, 그때에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한(רַע) 영이 사울에게 들어갔고, 또 그는 집안에서 스스로 예언을 했었으며, 또 다윗도 매일 같이 그날도 그의 손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울의 손에는 창이 있었다.“

악한 영에서 악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단어 ""(רַע)에서 온 말인데, 이는 구약성경 전체에서 도덕적, 윤리적 또는 신체적으로 부정적인 것을 설명해 주는 많은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본성과 계명에 반하는 행동, 생각, 의도 또는 조건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형용사로는 무언가를 사악하거나 사악한 것으로 설명하는 반면, 명사로는 사악함이나 악 자체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רַע)"의 개념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와 관련하여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서 벗어난 모든 것은 ""(רַע)"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변 국가와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으므로 모든 형태의 ""(רַע)"를 피해야 했습니다. 이 용어는 또한 도덕적 악과 신체적 악이 종종 얽혀 있는 더 광범위한 고대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결국 사울은 시기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악한 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왕에 오른 사울의 비극적인 종말이 벌써 사울의 삶에 어두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는 악령으로 인하여 정신없이 떠들어댔다는 말은 원어적 표현으로 예언하였다는 것인데, 이는 정상적인 예언이라기보다는 악령이 주는 저주의 예언, 또는 의미 없는 중언부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사위가 되다 (17-39)

1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18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버지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19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20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린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21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 22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명령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 23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의 귀에 전하매 다윗이 이르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한지라 24 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더이다 하니 25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26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에게 아뢰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결혼할 날이 차기 전에 27 다윗이 일어나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28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29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30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그들이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제임스 티소, 창문에서 다윗을 바라보는 미갈 (Michal Watching David from a Window, 1896 –1902, by James Tissot )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과 결혼했습니다. 다윗을 사랑한 미갈은 아버지의 공격으로부터 다윗을 구해냈을 때 아버지보다 남편에게 충성심을 보였습니다. 미드라쉬(Midrash)에서 미갈은 남편에게 충성심이 강하고 아버지의 권위를 거부한 것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미갈이 다윗을 공개적으로 무시했을 때 그녀는 죽을 때까지 자식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을 받고 형벌을 받았습니다. 아가다(Aggadah)에서는 미갈이 죽은 날 아들을 낳았다고 전합니다. 그녀의 언니 메랍이 죽었을 때 미갈은 그녀의 다섯 자녀를 친자식처럼 키웠다고 합니다.

금속판화, 사울이 다윗에게 자기 딸 미갈을 소개시켜 주다, 1686년 (Engraving from 1868 showing Saul presenting his daughter Michal to David as told in the Bible)

사울은 창으로 다윗을 죽이는 것을 실패하자 정략적 결혼을 미끼로 다윗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는 큰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는 조건으로 블레셋과 싸워 이기도록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좋은 조건일지라도 조급하게 함부로 덤비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은 비천하여 감히 왕의 사위가 될 수 없다고 겸손히 사양합니다. 사울은 메랍을 다윗에게 주기로 하였지만 정작 때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버립니다.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은 바실래의 아들로 유력한 가문의 아들로 추정되며, 사울에게는 또 다른 정략적 결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 나름대로 삶을 살게 되자, 그는 세속적이고, 정치적이고 음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사울이 자기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함을 알게 되고, 주변에서 자꾸 매파를 보내자 다시 한번 다윗을 제거할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미갈을 다윗과 결혼시키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자신의 사위가 될 것을 정식으로 제의하고(21), 신하들에게는 다윗이 사울의 사위가 될 것을 부추기도록 하였습니다(22).

 

그러나 다윗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 다윗이 이르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한지라. (23절)

이를 원문에 가깝게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윗이 말했다. ”너희 눈에는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벼운 일이냐? 나는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이로다.“ (David says, “Is it a light thing in your eyes to be son-in-law of the king—and I a poor man, and lightly esteemed?”)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바로 사울의 사위가 되어 권력의 맛을 누리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넘은 제안을 덥석 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자 애썼습니다. 그러자 애가 닳은 사울은 다윗에게 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결혼 지참금 대신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일백을 요구하였습니다. 전공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사위가 되는 것이므로 다윗은 이 제안을 타당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진정한 의도는 다윗이 강력한 블레셋 군대를 상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사하도록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한이 이르기 전에 사울의 요구보다 2배나 더 많이 블레셋 사람 포피 이백을 사울에게 가져갔습니다. 결국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었고,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고 미갈마저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는 더욱 다윗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는 방법을 통해 이미 다윗을 왕으로 만들어가심을 이미 우리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미 자신의 사위가 되었음에도 다윗을 더욱 경계하였습니다. 부모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의 찐한 맛을 알아버린 사울은 다윗을 평생의 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 때마다 어떤 군대 장수들보다 더 잘 싸워 그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이후 다시 돌이켜 회개하지 않을 때, 그의 삶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았습니다.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獲罪於天(획죄어천)이면 無所禱也(무소기야)니라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당시 정치적인 이야기를 빗대어 말하는 내용이었으나,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는 말은 사울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돌이키지 않으면 그 종말은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진정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가 하나님의 기념책(기억의 책; the book of remembrance)에 기록될 것입니다. (말라기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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