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3:1-20
① 야곱이 에서를 만나다 (1-17)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20여 년간의 노고 끝에 야곱은 마침내 라반에게서 벗어났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라반의 분노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라반과의 관계가 정리됩니다. 야곱은 마지막 마무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야곱은 자기 나름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라반과의 반목과 대립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중재로 야곱은 외삼촌과 평화 가운데 헤어집니다.
하지만 야곱을 여전히 괴롭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분노한 외삼촌은 이제 뒤에 남겨져 있었지만, 형 에서와의 문제는 여전히 그의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방금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왔지만, 에서의 문제로 인해 다시 더 뜨거운 불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에서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에서를 피해 어머니 리브가의 고향으로 도망쳤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창27:44-45). 며칠이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전갈(傳喝)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를 금방 다시 만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에서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야곱을 부추겨서 에서의 장자권을 옳지 못한 방법으로 얻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 사건의 결과, 이후 야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순간의 선택이 인생에 얼마나 큰 슬픔과 비극을 초래하는 것인지 배우게 됩니다. 인간적인 욕심과 방법으로 이룬 결과들은 결국 다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형의 마음이 누그러졌기를 바라며 야곱은 에서에게 먼저 사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자들은 불길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창32:6). 야곱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에서가 무장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자신을 죽이러 오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죄와 실수를 마주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의 죄와 잘못된 결정은 깨진 관계와 감정적 혼란, 고통을 남깁니다. 보통 우리도 야곱처럼 행동합니다.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고,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나의 욕심으로 인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들이 나에게 불리하게 나타나면 문제들로부터 도망치며 그것들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나로 인해 생긴 상처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아물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세월의 망각이나 사건의 시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우리가 용서받아야 한다는 죄의식이 희석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의 굴레(수레바퀴)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과거와 마주하게 합니다. 때로는 문제와 죄의식이 더 가중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방치와 외면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야곱이 부모를 떠날 때는 오직에서 한 사람만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아오는 길목에서 그는 에서와 무장한 사백 명의 사람들을 마주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실수할 때, 바로바로 회개하고 고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죄를 짓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즉시 회개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실수했을 때는 그것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잘못한 것이 있을 때 즉시 사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마태복음 5:23-26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지만 우리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상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옛 뱀 사탄인 대적은 우리 각자를 상대로 끊임없이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의 임무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기록하고 하나님의 법정에 우리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는 뇌물을 받지도 않고 결코 잊지도 않습니다. 사탄은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도 기억합니다. 그는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주장과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고발에 의해 우리는 결국 사형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이 결국 에서를 마주해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결국 사탄의 고발에 답해야 합니다.
-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 모두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4절에서 에서의 적극적인 환영의 행동으로 이야기는 화해의 절정으로 향합니다. 에서와의 만남은 야곱이 예상 뒤엎고 극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에서의 환대를 강조하는 일련의 동사들로 미루어 볼 때, 에서의 환대는 그 이상입니다.
-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 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4)"
야곱과 에서의 행동은 주어(主語)인 에서와 수동 목적어인 야곱, 모두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 사건의 직접 당사자로서 직접 일대일(1:1)로 만나서 과거의 묵은 감정을 해소합니다. 그것을 먼저 호탕하고 쾌활한 형 에서가 풀어냅니다. 에서는 야곱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 중 가장 감정 표현이 풍부한 인물입니다. 창27:34절에서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아버지에게 축복을 간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 에서는 경쾌하고 호탕하게 야곱에게 달려가 그를 맞이합니다. 이 모습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들을 손님으로 환대하는 모습(창18:2), 또한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리브가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모습(창24:17)과 동일한 환대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는 당시 매우 따뜻하고 간절한 환대의 표시였습니다.
에서는 달려가서 야곱을 껴안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가족 구성원으로 따뜻하게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야곱의 목을 어긋 맞추어 입을 맞추었습니다. 목을 어긋 맞추는 장면은 창세기에서 두 번 나오는데, 둘 다 요셉이 가족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나타납니다. 즉 요셉이 베냐민을 만났을 때(창45:14)와 요셉이 야곱을 만났을 때(창46:29)입니다.
그리고 에서는 야곱에게 입맞춤을 합니다. 이는 형제들의 재회(출4:27)를 포함한 가족과의 관계에서 가장 자주 행해집니다. 이 입맞춤은 에서의 환대를 나타내지만, 한편으로는 창27:27절에서 야곱이 아버지에게 했던 기만적인 입맞춤을 떠올리게 하면서 그것마저 포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에서의 적극적인 환대가 쏟아진 후에야 야곱도 응답합니다. 4절에서 다른 모든 동사는 에서를 주어로 한 단수형이지만, 서로 "울었다"라는 동사에서 드디어 복수형으로 쓰였습니다. 에서의 따뜻한 환대에 드디어 야곱도 마음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야곱과 에서의 화해 역시 라반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결과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불편한 인간관계나 해결하기 어려운 관계의 문제도 가장 원만하고 화복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5절에서 호방한 에서답게 먼저 야곱의 딸린 가족들에 대해 묻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야곱은 조심스럽게 절제하며 대답합니다. 야곱은 주인 앞에서 종의 태도를 취합니다. 그런 다음 야곱은 에서에게 공식적으로 가족을 소개합니다. 먼저 첩들의 자녀들, 그다음 레아의 자녀들, 마지막으로 라헬과 요셉의 순으로 합니다.
그런 다음 에서는 야곱이 왜 그 모든 선물을 자기에게 보냈는지 묻습니다. 20여 년만에 만난 동생을 빈손으로 만나는 것보다 낫겠지만 그래도 예(禮)의 형식을 갖춥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큰 선물을 준비했지만 에서는 당황하여 거절했습니다. 9절에서 에서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진술에서 과거의 형제 간의 경쟁을 상기시켜 줍니다. 아마 야곱은 형 에서가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네가 많은 것을 뺏어갔어도 나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들리지 않았을까요?
에서는 마지못해 야곱의 선물을 받고, 야곱과 과거의 오랜 감정의 응어리들을 풀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같이 동행하자고 제안합니다. 또 아버지 이삭이 아직 살아 있으니 함께 아버지를 보는 것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야곱은 에서의 제안을 극구 사양합니다. 아마도 아직 형 에서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거나, 두려움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에서는 세일로 다시 돌아가고, 야곱은 숙곳으로 갑니다.
② 야곱에 세겜에 정착하다 (18-20)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6-17절에서, 에서는 세일(에돔)로 돌아가지만, 야곱은 하류로 내려가 요단 계곡 아래에 숙곳('초막'이라는 뜻)에 가축을 위한 초막을 짓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세겜에 도착합니다(창12:6-7 참조). 그곳에서 그는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무덤 땅을 사서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는 제단을 세웁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출애굽할 때에 시신으로 돌아와 이 무덤에 묻힙니다(여호수아 24:32 참조). 요셉의 무덤은 오늘날에도 세겜(지금의 나블루스)에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 야곱이 에서를 다시 속였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에서는 야곱을 따라오라고 설득하려 하지만, 야곱은 에서가 먼저 가라고 하고, 가족과 가축에게 더 알맞은 속도로 천천히 따라가겠다고 말합니다. 에서는 먼저 가지만, 야곱은 그를 따라가는 대신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숙곳('초막'이라는 뜻)이라는 지역으로 가서 천막을 칩니다.
숙곳은 '초막'을 의미합니다(여호수아 13:27, 사사기 8:5-16). 숙곳은 요단 강 동쪽, 아마도 얍복 강 북쪽에 있었던 평야에 양 떼를 위한 목초지가 있었고, 양 떼가 힘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쉴 수 있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이 초막들은 아마도 갈대 풀로 만든 초막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형을 불신했을 뿐만 아니라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약속된 만남의 장소인 세일로 향하는 대신, 그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에서가 예상치 못한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께서 형의 분노를 영원히 가라앉히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숙곳은 에서가 사는 세일의 반대 방향에 있습니다. 본문에는 야곱이 그렇게 이동한 이유가 나와 있지 않지만,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먼저, 야곱은 아버지를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메소포타미아로 떠난 이후 아버지를 평생 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야곱에게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트라우마가 그만큼 컸던 것 같습니다. 또한 야곱은 에서와 가까이 지내는 데 그다지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야곱은 다시 돌아오면 벧엘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벧엘에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창28:22). 그런데도 그는 벧엘로 가지 않고 숙곳에 머물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아마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숙곳이 위치한 요단 계곡의 목초지가 훨씬 더 좋았던 반면, 벧엘은 산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숙곳은 흔한 지명이었기 때문에 그곳이 어디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브니엘에서 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아마도 에서에게 많은 가축을 주면서 심하게 줄어든 가축 떼를 보충하기 위해 한두 계절 동안 그곳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세겜으로 가서 땅을 사서 정착합니다. (지도 참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두 계절쯤 지난 후, 야곱은 마침내 요단 강을 건넜습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머문 곳이었습니다(창12:6).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한 세겜은 성경 기록에서 중요한 곳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신 때부터 시작됩니다. 후에 야곱은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와 곧 정착했습니다. 열두 지파는 이 두 언덕에 모여 하나님의 율법과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축복과 저주를 낭송했습니다. 야곱은 세겜에 있는 땅을 샀고, 죽자 아들 요셉에게 물려주었습니다(창48:22). 요셉은 자기의 뼈를 약속의 땅에 묻어 달라고 요청했기에, 그의 시신은 세겜으로 옮겨져 장례를 치렀습니다.
19절에서, 야곱은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가족에게서 은 백 개를 주고 자신이 장막을 친 땅을 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언젠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야곱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야곱의 우물이 바로 그 지역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4:6절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20절). 이는 "강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5, 11절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여겼고, 특히 자신의 이름을 바뀐 것을 언급하며 제단을 쌓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이렇게 부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와 선하심으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시고, 지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에서를 피해 가나안 땅을 떠나 메소포타미아에서의 20여 년간의 객지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야곱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서원하였던 베델로 곧장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형과 아버지를 더 이상 보지도 않습니다(이삭이 죽은 후에야 야곱은 에서와 함께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 창35:29). 야곱의 내면성은 한 민족의 조상이 되기 위해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야곱이 모든 민족을 품을 수 있는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은 연단이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새로운 연단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으시는데 대충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연단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시간(세월)입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서 그 안에서 겪어야 하는 연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연단을 통해 다윗은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시119:71). 연단의 시간(세월)을 통해 하나님 말씀의 무게를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야곱은 평생의 연단의 분량을 모두 감당한 후에야, 130여년의 시간을 "험악한 세월"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창47:9).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되는 것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 인간의 본성,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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