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14~30
② 달란트 비유(눅 19:11-27)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달란트’는 영어로 ‘Talent’입니다. 본문에서 달란트는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고, 다른 뜻으로 재능, 능력, 소질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예수님께서 일반 사람에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그만큼 제자들의 삶에 중요한 원리가 되는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1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영어 성경(KJV)에서는,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s a man travelling into a far country, who called his own servants, and delivered unto them his goods. RSV 또는 ESV 영어 성경에서는 For it will be as when a man going on a journey called his servants and entrusted to them his property;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밑줄 친 이탤릭체는 원래 헬라어 성경에는 없는 단어인데 문법적 해석이 쉽도록 추가된 것입니다. 이를 앞 문단과 연결하여 원어적으로 해석하면, "왜냐하면 (천국은) 먼 나라로 여행하는 사람(앞 단락에서의 ‘인자’)이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가 다시 재림하시기 전까지 우리의 삶의 열매를 기다리시는 오래 참으심을 암시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종들(his own servants)’을 부르셨습니다. 원어에서 τοὺς ἰδίους δούλους(투스 이이우스 둘루스)인데 굳이 ‘자신의(own, personal, private)’라는 단어를 쓴 것은 주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시고, 그분 자신의 섭리로 그들을 보존하였으며, 그분 자신의 피로 그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분 자신의 소유를 주셨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유일한 소유자이십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대충 또는 무작위로 소유를 나눠준 것이 아니라, “각각 그 재능대로” 주었습니다(15a).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다른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금 한 달란트는 25.8kg입니다. 25년 10월 첫째 주의 금 시세가 약 163,900,000원/kg이기 때문에 금 한 달란트는 약 약 42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같은 계산으로 다섯 달란트는 210억 원, 두 달란트는 84억 원으로 엄청난 금액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이보다 훨씬 가치가 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인이 각각의 종에게 준 가치는 큰 금액이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재능(능력)이란 "ἑκάστῳ κατὰ τὴν ἰδίαν δύναμιν; 즉, to each (man) aaccording to his(own) ability"로써, 각자 “자신의 능력”을 말합니다. 주님의 “자신의(own) 종”과 종들의 “자신의(own) 능력”이라는 표현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재능, 또는 능력은 영적인 목적을 위해 부여된 은사나 자질, 또는 신체적, 정신적 능력, 선천적 및 후천적 능력, 건강, 힘, 수명, 이해력, 판단력, 기억력, 학식, 지식, 웅변, 영향력, 타인에 대한 권위, 부, 특권 또는 공직(시민적이든 종교적이든), 그리고 실제로 선용되거나 악용될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각 사람에게는 그의 여러 가지 능력에 따라 달란트(재능)가 주어졌습니다. 즉 각자에게 그의 개인적 또는 각각의 능력, 즉 주님께서 주신 소유물(달란트)을 관리하고 경영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곧바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무역, 사업)하였습니다. 그 종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주님이 없는 동안 어떻게 처신했는지, 그리고 그에게 부여된 은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 한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큰 은사를 가진 그리스도의 종들에 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갔습니다. 이것은 사업에 대한 즉각적인 적용을 나타내며, 그러한 종들이 그들의 사명에 따라 가서 자신의 직무와 사명을 집행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달란트를 받자마자 곧바로 갔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과 명예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어려움이나 낙담에도 굴하지 않았고, 용기와 담대함으로 많은 곤란을 이겨냈습니다.
그들은 결국 두 배씩 이익을 남겼습니다. 원금만큼의 이익을 남긴 것은 사업을 아주 잘 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원금의 2배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을까요? 이익이 그 정도라면 전체 매출 또는 사업(장사)의 규모는 10배 이상 컸을 것입니다.


19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여기에서도 앞선 비유에서처럼,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긴 지연이 있을 것이라는 복선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늦더라도 주인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결산합니다.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에 대한 21, 23절의 칭찬은 동일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주인의 평가는 결과로 나타난 액수나 양(量)이 아니라 종의 자세와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 종이 최선을 다하였다면, 손해가 났어도 주인은 관대하게 용서하였을 것입니다.
말씀에서 주인이 충성된 종에게 주는 세 가지 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상은 주인의 인정과 칭찬입니다. Well done!, you good and faithful servant! 잘했어. 아주 훌륭해! 착하고 충성된 종아! '충성된'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faithful로, ‘신실하다’, ‘성실하다’라는 뜻입니다. 주인의 다섯 달랄트, 두 달란트를 받아 투자하여 장사한 그들의 행동이 충성스러웠다, 신실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상은 주인은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적은 일에 충실할 때 얻는 보상은 더 큰 책임을 맡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이 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이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세 번째 상은, 가장 중요한 상으로,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는 약속입니다. 그냥 막연한 기쁨이 아니라, 주인의 그 기쁨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원문에는 정관사 "the"가 있는데, 이는 특별하고 유일무이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실 때, 그 기쁨은 완벽하고 온전하며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목사이자 설교자였던 알렉산더 맥라렌(1826~1910)이 말했습니다. “종의 가장 큰 품삯은 주인의 인정과 칭찬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난 후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기쁘고 행복합니다. 게다가 인정과 칭찬뿐 아니라 그 뒤에 상도 크다면 기쁨은 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주신 약속을 주목하십시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I will set you over many things." "I will" "내가 많은 것을 내게 맡기리라"라는 예언적 약속에는 미래의 큰 보상과 기쁨이 포함됩니다. 시편 16:11에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주님 안에 있으면 기쁨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는 종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24-25절,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an hard man)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reaping where thou hast not sown, and gathering where thou hast not strawed)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굳은”이라는 단어는 σκληρός(hard, harsh, difficult, severe)로써, 경직된 성격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19: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에서 “엄한”은 αὐστηρὸς(austere, stern)로써 가혹함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변명은 원래 가지고 있던 주인에 대한 이미지였을까요? 아니면 결산하면서 핑계로 갑자기 생각해 낸 것이었을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일상의 삶을 충실하지 않고 소홀히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불충실한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지금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은 처음부터 주인에 대한 인식은 그 마음에 간직해 온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에 대한 그의 인식이 그의 소홀함의 근원이었습니다. 육신의 눈은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인을 신뢰하지 못한 그는 주인에게서 관대한 사랑이나 보상에 있어서 공평과 정의를 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4:36~38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그는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요 4:37)라는 말씀을 세속적인 측면으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자기는 심기만 하고 주인이 그것을 거두어 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독단적이고 보복적이며 무자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선한 생각을 마비시킵니다. 그는 이미 던져진(사탄이 심은) 생각에 따라, 시기와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주인이 자신을 오직 도구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얕잡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평소 자기 생각(변명)이 타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종은 주인의 돈을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계산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의 주인에 대한 변명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재산을 낭비하지 않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며, 주일을 더럽히지 않았고, 말씀을 잘 듣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경을 경멸하지 않았고, 믿음의 삶을 조롱하지도 않았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료를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 자신과 비교하며 비방하거나 핍박하지도 않았습니다. 술이나 담배도 하지 않았고, 제 인생을 낭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주님과의 관계 외에 더 중요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기도하고 간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위로요 소망입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말합니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25b)" [ἴδε ἔχεις τὸ σόν(behold! you have yours)] "보소서, 당신은 당신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는 주인과 아무 관계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가 주인에게 선심 쓰듯 말합니다. "보십시오. 난 떳떳하게 손도 안 대었습니다. 당신 것이니 당신이 알아서 가져가십시오." 주인의 입장에서는 굉장이 무례하고 냉소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주인이 맡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과 관계없는 자기 일만 하였습니다. 주인의 일에 게을렀습니다. 아니 주인과 주인의 일을 무시하였습니다. 그의 삶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그를 심하게 책망하시고 쫓아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크고 작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맡은 일을 예수님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부족함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큰 결과를 보는 것도 보람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작은 결과라도 신실하게 하였다면, 그것을 하나님은 “Well done! 잘하였도다”라고 칭찬하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는 일반 보통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세상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온 때에, 복음에 합당한 삶을 통해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삶의 모습과 그가 당한 결말을 보았습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자로서의 행위와 삶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삶의 열매를 강조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특별히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 하나만 예로 들어봅니다.
마태복음 7:19~21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나무를 열매로 판단하듯이, 사람은 그 삶으로 즉, 행위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하든지 삶으로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잘 사용하면서 삶과 신앙이 같이 갈 수 있을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예수)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뿐만 아니라, 깨어 있든지 잠자든지, 또는 살든지 죽든지,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이 안 됩니다. 능력도 안 되고, 성품도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끝내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끝까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산다"에서 ‘함께’는 원어로 σύν(쉰)인데, 단순히 영어로 with를 말하는 ‘함께’가 아니라 완전히 합성되어 동일체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영어로 synthetic, synchronize 등 동사 접두어 ‘syn-’이 이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말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친밀하게 교제하며 산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아주 친밀하게 완전히 서로 합성되어서 아무도 구별할 수 없고,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교제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우리 지식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 삶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삶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렇게 연합하여 살 때,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지요.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열매를 맺으려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처럼 살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됩니다. 주인이 멀리 출장을 가서 나를 감독하는 사람이 없어도 주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성실하게 내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의식하면, 함부로 말하지 않고,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의식하며 살 때, 내 삶이 변하고, 열매가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우리 삶에 100배, 60배, 30배 많은 열매가 맺게 됩니다.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되어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의식하고 예수님과 함께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야 일상의 작은 일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상의 작은 일에 충성할 때,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며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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